항목 ID | GC01301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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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隱寂寺七星圖外佛畵 |
영어의미역 | Buddhist Paintings of Eunjeogam Temple |
이칭/별칭 | 은적사 칠성탱화 외 불화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4[돌산로 1168-5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최석 |
성격 | 불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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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칠성탱화, 산신탱화: 1918년|독성탱화: 1986년 11월 |
제작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작가 | 독성탱화: 나익수 |
소장처 | 은적사 |
소장처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4[돌산로 1168-58] |
소유자 | 은적사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은적사 칠성각 내에 있는 칠성탱화 등의 불화.
[개설]
칠성각은 극락전의 향우측 약간 높은 석축 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태로 주심포 양식을 따르고 있다. 칠성각 내 중앙에 「칠성탱화」가 있다. 향좌측에 「산신탱화」, 그리고 그 향좌에 「독성탱화」가 있다. 출입문 바로 오른쪽으로 칠성각의 향좌측벽 위쪽에는 「은적암 칠성각·산제각 중수기」가 있다. 그 아래쪽에 「승평여수방답진동 은적암 칠성각·산제각 중건상량축사」가 걸려 있다.
원래 불교에서는 칠성신을 신중의 하나로 보고 신중탱화(神衆幀畫) 속에서만 묘사하였다. 그러나 칠성에 대한 신앙적 기능이 조선 초기부터 강화되면서 독립된 신앙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중탱화에서 분화된 별개의 칠성탱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칠성 신앙의 대상은 칠여래(七如來)의 화현(化現)인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칠여래의 증명을 거친 칠성신이다. 따라서 칠성탱화를 그릴 때에는 칠여래와 함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반드시 묘사하게 된다.
여러 유형의 탱화 중 칠여래와 칠성을 각각 별개의 그림으로 도설하는 경우인데 탱화를 각각 도설하게 되는 것은 칠성에 대한 신앙적인 기능이 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칠성탱화가 널리 봉안된 것은 칠성의 주불(主佛)인 치성광여래가 약사여래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자식이 없는 부인이나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부인, 자식의 수명을 비는 신도들에게서 큰 인기를 모았다.
[형태 및 구성]
「칠성탱화」에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시립하고 있으며, 칠성여래를 비롯한 여러 성중이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탱화의 구도는 화면을 세로로 3등분하여 맨 하단에 칠원성군을 배치하였다. 칠성탱화에서 가장 일반적인 배치구도이다. 칠여래와 칠원성군만을 도설하는 형이다. 이와 같은 유형은 중앙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두고 일광보살(日光菩薩)·월광보살(月光菩薩) 그리고 상단 에 칠여래, 하단에 칠원성군을 도설하는 구도를 보인다. 크기는 110×120㎝이다.
「독성탱화」의 경우 흰 수염의 늙은 나반존자가 홀로 기암 괴석과 폭포가 어우러진 산속에 소나무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형태를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1986년 11월에 나익수가 조성했다. 지본 채색으로, 크기는 78×120㎝이다.
「산신탱화」는 중앙 상단부가 심하게 훼손되어 윤곽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중앙 하단에는 호랑이가 크게 그려져 있고, 호랑이 등 위에 산신이 탄 채 오른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2010년 10월 초1일 주지 종효가 봉안하였다. 탱화는 견본 채색이며, 크기는 75×91㎝이다.
[의의와 평가]
은적사는 돌산읍 군내리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불사한 사찰이다. 아직도 이곳 주민들은 ‘우리 절’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민간신앙의 영향을 받은 칠성각 내에 봉안된 탱화들은 이 지역 주민들의 민간신앙과 많은 관련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