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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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坡平尹氏 |
영어의미역 | Papyeong Yu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창무마을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창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는 고려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을 지낸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의 5세손 윤관(尹瓘)이 고려 숙종 때 밀직원사로서 병마도총사가 되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영평은 별호임)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파평윤씨는 윤관 이래 수십 파로 분파되었는데, 그 중 판도공파(版圖公派: 윤승례(尹承禮))와 소정공파(昭靖公派)[윤곤(尹坤)]가 대종이다.
[입향경위]
파평윤씨 여수 입향조는 윤창리(尹昌离)이다. 윤창리는 조선 초기 영상(領相)을 지냈던 윤필상(尹弼商)[1427~1504]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군수를 역임했다. 현종 때 경기도 고양에서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창무마을로 입향했다. 숙종 때, 윤명우(尹明祐)는 경기도 포천에서 여수시 오천동으로, 소정공 윤곤의 후손 윤경인(尹敬仁)은 순천에서 화양면 용주리 용주마을로 이거했다.
[현황]
파평윤씨 여수 입향조 윤창리의 후손들은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호두마을과 창무마을을 비롯하여 삼일동 평여마을과 신흥마을, 낙포동 하촌마을, 중흥동 용성마을 등에 분산 이주하여 일가를 이루어 왔다. 화양면 용주리 창무마을을 제외하고는 세거지가 여수국가산업단지로 수용됨에 따라 후손들은 신도시 등지로 옮겨 살고 있다. 윤명우의 후손들은 오천동에 살고 있으며, 윤경인의 후손들은 화양면 용주리 용주마을과 낙포동 하촌마을 등에서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