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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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梁氏 |
영어의미역 | Jeju Y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난화마을 |
집필자 | 김준옥 |
세거지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난화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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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
입향시기/연도 | 임진왜란 때 |
성씨시조 | 양을나(良乙那) |
입향시조 | 양하용(梁河容) |
[정의]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하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탐라(耽羅) 삼성혈(三姓穴) 설화의 주인공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하는 혈족이다. 처음에는 성으로 양(良)을 쓰다가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559년(진흥왕 20)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입조하나 진흥왕이 많은 상을 내리고 성을 양(梁)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양탕의 후손으로 양순(梁洵)이 한라군(漢拏君)에 봉해져서 제주로 관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제주양씨의 세계가 실전되어 대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6개 파로 크게 나뉘어 양보숭(梁保崇)·양중덕(梁仲德)·양유침(梁有琛)·양홍(梁鴻)·양희(梁羲)를 각각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입향경위]
제주양씨 여수 입향조는 양하용(梁河容)이다. 양하용은 성균관대사성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요, 홍문관교리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였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가 진주에서 의병 활동하다 죽은 후 여수로 입향했다. 양보숭의 14세손 양신용(梁信容)은 1797년(정조 21) 화순에서 순천을 거쳐 율촌면 가장리 난화마을에 세거지를 마련하였다.
[현황]
입향조 후손 양승교(梁昇敎)는 1880년대에 선원동 무선마을에, 양원묵(梁元黙)은 적량동 하적마을에서 살았다. 양하용의 묘소는 삼일동 신덕에 있으며 현재도 둔덕동에서 후손들이 살고 있다. 양신용의 후손들은 율촌면 가장리에서 대를 잇고 있다. 율촌면 가장리 난화마을에도 몇 세대가 대를 잇고 있다.
[관련유적]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난화마을에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영모재는 인동부사 양신용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7년에 문중에서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