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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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岩洞堂內晩耕- |
영어의미역 | Farmer's Music and Dance of Dangnae Village, Sangam-dong |
이칭/별칭 | 호무질친다,호무골푼다,중벌,맹경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상암동 당내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상암동 당내마을에서 마지막 논매기를 끝내고 벌인 굿.
[개설]
여수시 상암동 당내마을에서는 마지막 논매기를 ‘맹경’이라 했다. 맹경을 할 때는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면서 공동으로 논매기를 한다. 하지를 전후해서 모를 심고, 한달 정도 뒤부터 논을 매는데, 상암동에서는 3~4 차례에 걸쳐 논을 맸다. 흔히 그것을 초벌, 재벌, 중벌, 맘논으로 부르는데, 상암동에서는 ‘호무질친다’, ‘호무골푼다’, ‘중벌’, ‘맹경’ 등으로 불렀다.
중벌까지의 논매기와 만경은 형태가 전혀 다른 것이다. 중벌까지는 개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품앗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루 한 사람의 일의 양을 한 마지기로 보아, 예를 들어 5마지기 논을 매려면 다섯 사람의 노동력이 필요한데 그만큼을 품앗이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런데 만경은 자기 논, 남의 논을 구분하지 않고 전체 마을의 논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마을 사람 전부가 나와 논매기를 하였다. 일종의 두레 방식으로 일을 했던 셈이다. ‘만경꾼’, 즉 두레꾼의 구성원들은 각 집의 장정 한 사람씩으로 이루어졌다. 당내마을의 50가구라면 50명 정도의 두레꾼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만경에는 공동노동, 공동식사, 공동분배 방식이 적용되었다. 공동으로 일을 하고 함께 식사하며 수익금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쓰였던 것이다.
[연원]
‘호무질’이란 호미를 가지고 논의 지심을 매는 것을 말한다. 호무질을 하는 시기는 모를 심은 후 한 달쯤 후이다. ‘호무골푼다’는 것은 초벌 때 호미질로 흙이 뭉쳐 있는 것을 손으로 이겨 푸는 것을 말한다. 호미질 후 1주일이 지나면 한다. 중벌은 호무골을 푼 후 자란 풀을 재차 매주는 것을 말한다. 호무골을 푼 후 1주일이 지나면 한다.
맹경은 마지막 논매기다. 중벌 후 한 달쯤 후에 하는데, 이때는 나락이 피기 1주일쯤 전이다. 맹경을 하는 것은 풀을 매는 것 자체보다는 무성히 자란 나락에 바람이 통하도록 하기 위해 논에 골을 파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꽃 털어준다고 해서 나락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역시 위와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놀이방법]
아침 일찍 마을회관 앞에서 꽹과리를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든다. 각 집에서 장정 한 사람씩 나오는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거에 모여 깃발을 들고 풍물을 치면서 논으로 향한다. 깃발은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쓰인 농기와 영기 등을 가지고 간다. 이때 풍물패들은 농기를 들고 영기를 세우고 풍물을 울린다. 영기를 세우는 것을 ‘문잡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영기를 세워놓으면 소동패놀이에서와 마찬가지로 함부로 그곳을 지나다니지 못한다.
‘맘논’의 목적이 풀을 매는 것보다는 논에 골을 파는 것에 있으므로, 작업 진척은 빨리 이루어졌다. 수십 명이 한 줄로 늘어서서 지심을 맺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흡을 맞춰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휘자가 필요했다. 지휘하는 사람이 긴 대작대기를 들고 서서 먼저 앞에 삐져나온 사람의 ‘머리를 때려’ 논매기 속도를 맞췄다. 논매기를 할 때는 풍물을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했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상사소리」나 「에야디야」 같은 들노래였다.
1. 「상사소리」
"어여루 상사뒤여/어여루 상사뒤여/이농사를 지어다가 어디다 쓸 것이냐, 우리 선인들 전부다 자시고 놀아봅시다/어여루 상사뒤여"
2. 「에야디야」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말어라. 아까운 청춘이 다 늙는다/에야 디야 나헤헤헤에야 에야 디어라 내가 돌아간다/가면 가고 말면은 말았지 너 잡놈 따라서 내가 돌아갈거나/에야 디야 나헤헤에야 에야 디어라 내가 돌아간다"
일을 하다가 새참 때가 되면 새참을 먹었다. 그리고 계속 일을 하다가 점심때에도 역시 들판에서 공동으로 식사를 하였다. 새참이나 점심은 농사 많은 사람 곧, 논이 많은 집에서 내왔다. 해거름이 되면 작업이 끝났는데 작업이 끝나면 아침에 들판에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농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면서 마을로 돌아온다. 마을 앞에 도착하면 농기는 그대로 세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이 되면 꽹과리 소리나 징소리를 신호로 만경꾼들이 모여 어제와 마찬가지로 논으로 일을 나간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만경꾼마다 보유하고 있는 논이 다르기 때문에 만경을 하면 논이 적은 사람이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마을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논이 많은 사람들은 일정한 품삯을 더 내거나 새참이나 밥을 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만경을 통해서 걷어진 돈은 공동기금으로 적립되어 마을회관을 짓거나 풍물을 새로 구입하는 일 등에 지출했다.
만경놀이는 공동노동과 공동놀이가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과 놀이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며 일을 하는 일터에서 즐겁고 흥겨운 한판의 축제를 만들어내던 놀이였던 것이다.
[현황]
이렇게 논매기를 마친 후 음력으로 9월 중순경이 되면 ‘맹경잔치’라고 해서 동네 잔치를 벌였다. 동네 돈이 있을 때는 그 돈으로 잔치상을 장만했으며 돈이 없을 때에는 각 가정에서 상을 차려가지고 나와 마을 잔치를 열었다. 이때에는 마을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풍물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놀았다. 상암동 당내 만경놀이는 40여 년 전까지도 활발하게 전승되던 것이었는데 화학비료의 보급과 세태의 영향 등으로 지금은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