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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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純信 |
영어음역 | Yi Sunsin |
이칭/별칭 | 입부,무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입부(立夫). 태종(太宗)의 아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진(李眞)이고, 어머니는 복주김씨(福州金氏)이다.
[활동사항]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판관(義州判官), 혜산진첨절제사(惠山鎭僉節制使), 강진현감(康津縣監)을 거쳐 온성도호판관(穩城都護判官)이 되었다. 이순신이 여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92년(선조 25) 방답진첨절제사(防踏鎭僉節制使)로 서용되면서부터이다.
이순신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옥포(玉浦)와 고성(固城) 앞바다를 지나면서 세 번 싸워 모두 이겼다. 연이어 당포(唐浦), 견내량(見乃梁), 안골포(安骨浦) 등지에서도 큰 공을 세워 충청수군절도사(忠淸水軍節度使)가 되었다. 그 뒤, 고령진첨절제사(高嶺鎭僉節制使), 유도방호대장(留都防護大將)을 거쳐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가 되자 다시 중위장으로 참전했다.
1598년(선조 31)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곧바로 군사를 수습하여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좌수영으로 개선했다. 이로 인해 효충장의선무공신(效忠仗義宣武功臣)의 호를 받고 자헌대부에 올라 완천군(完川君)으로 봉해졌다. 1602년(선조 35) 9월 전라좌수사를 거쳐 지훈련원사, 훈련대장, 도총관에 이르렀다. 1606년(선조 39) 수원부사를 거쳐 1611년(광해군 3)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가 그곳에서 병사했다.
[묘소]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인조 때 좌찬성으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