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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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順培 |
영어음역 | Gim Sunb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순배는 전라남도 광주(光州)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여수읍(麗水邑)교회 신도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시킨 인물이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전라남도 광주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는 천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김순배를 필두로 한 기독교인과 숭일학교 및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光州川)을 타고 내려왔고, 북문 쪽으로는 농업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 들었으며, 서문으로도 많은 시민들이 몰려 들어왔다.
당시 숭일학교 학생이었던 이달근(李達根) 등은 최병준(崔丙俊) 등으로부터 받은 독립 선언서와 ‘경고아이천만동포(警告我二千萬同胞)’라고 쓴 경고문을 1,000여 명의 시위 군중들에게 배포하였다. 여기서 김순배는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 군중을 주도해 갔다.
이 사건으로 일본 경찰과 헌병에 의해 현장에서 피체되었으며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여수읍교회 목사로 재직하던 1939년 3월에는 일제의 식민 정치의 종말을 말세론에 견주어 설교하는 등 교인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다가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42년 9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