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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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麗水長川敎會 |
영어의미역 | Yeosu Jangcheo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139[동산개길 4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12월 31일 - 여수 장천교회 국가등록문화재 제11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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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여수 장천교회 국가등록문화재 재지정 |
성격 | 근대건축 |
양식 | 서양풍 |
건립시기/연도 | 1924년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139[동산개길 42] |
소유자 | 여수 장천교회 |
문화재 지정번호 | 국가등록문화재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기독교 교회.
[건립경위]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우리 군대를 해산시키고 경찰권을 빼앗아 가는 등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율촌면 조화리 지역의 선각자들은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직 기독교를 통한 민중 계몽 운동밖에 없다는 자각을 하고 교회를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05년 10월 15일 율촌면 여흥리에 초가 약 37㎡ 규모의 장천예배당이 건립되었는데, 여수 장천교회는 이 장천예배당에서 출발하게 된다. 1912년 부속 교육 기관으로 장천예배당 내에 사설 여흥학교(麗興學校)를 세우고 관내 주민을 위한 근대 교육을 시작하였다.
신도와 비신도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일본어, 산술, 이과, 지리, 창가 등의 신학문을 가르쳤다. 이런 연유로 여수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화한 곳이 율촌이고 그간 배출된 지역의 인물들 대부분은 여흥학교 출신이었다. 1924년 본당이 2층의 석조 건물로 증축되었는데, 이것이 현재 장천유아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여흥학교는 개교한 지 23년째 되는 1935년, 국어 폐지와 신사 참배 강요 정책을 수용할 수 없어 자진 폐교하였다.
[형태]
여수 장천교회는 건물 벽체, 지붕만 남기고 내부와 전면의 계단부는 원래의 모습에서 전면 개수되었다. 벽체는 화강석으로 쌓고 목조 트러스로 지붕틀을 구성하였다. 전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스러운 구성이다. 1층은 부속실이고 2층은 예배실이다. 1층에는 측면 가운데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외부에서 2층 예배실로 바로 오르는 계단이 정면 좌우측에 대칭으로 널찍하게 설치되어 있다. 여수 장천교회 정면 중앙에는 탑이 설치되어 있고, 탑 중앙에는 큼지막한 원형 창문을 내었다.
건물 외부는 단순하고 소박한 반면, 내부는 정교한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2층 좌우측 출입구 지붕의 기둥 부분 장식은 전통 목조 건축의 공포 형태를 따르고 있어 이채롭다. 석조로 된 2층 건물인 점과 2층 예배실에 직접 이를 수 있는 외부 계단을 설치한 점은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있는 여수애양교회의 건립 초기 형태와 닮은 점이다.
[현황]
1973년 인접 부지에 또 하나의 석조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본당의 역할은 신축 건물로 이관되었고, 기존 건물 1층은 식당 등 다목적 용도로, 2층은 유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3년 다시 그 옆에 철근 콘크리트조의 현대적인 예배당이 건립되었다.
하나의 부지에 세 채의 교회당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모습은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변화하는 교회 건축의 전개 양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여수 장천교회는 여수시 율촌면소재지 한가운데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여수-순천 간 국도 17호선에서 여수 장천교회 전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2004년 12월 3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수 장천교회는 전라남도 동부권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로, 창립 초기부터 인근 지역의 교회 설립을 적극 지원하여 지역의 모교회(母敎會)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여수 장천교회는 여수 지역 근대 교회의 성립 및 건축 양식을 온전히 전해 주는 문화유산으로 문화사적,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