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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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牛鶴里敎會 |
영어의미역 | Woohak-ri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우실안길 6[우학리 22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석봉 |
성격 |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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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06년 4월 5일 |
설립자 | 김문옥 외 10명 |
전화 | 061-665-9521 |
홈페이지 | 우학리교회(http://woohakch.ijesus.net)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우학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설립목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교 단체로서 신·구약 성서를 교회법에 따라 신봉하며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파의 규율 원리에 따른 예배와 선교, 교육과 봉사를 시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변천]
1906년 4월 5일 여수군 남면 우학리 냉수동 322번지에서 안돌영·김문옥의 두 가정이 모여 가정 예배를 본 것을 시작으로 우학리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우학리교회는 순수하게 이 지역 유지들의 힘으로 설립된 교회이다. 초대 전도인인 최진막 조사가 우학리에 파송되어 본격적으로 기독교 교리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최진막 조사의 인도하에 1908년 4월 5일에 설립 예배로써 본격적인 신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처음에는 목포 주재 맹혈리 선교사가 목회활동을 하였으며 1913년 순천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설치되면서 그곳 소속인 변요한 선교사가 우학리교회의 초대 당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교세를 확장하게 됨에 따라 1915년 4월 66m² 규모의 예배당을 마련하고 2대 교역자로 강병담 조사를 청빙하였다. 강병담 조사는 이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1925년 3월 중국 건축 기술자를 고용하여 적벽돌로 된 건평 99m²의 변식 스타일로 지어진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1932년 5월 김문옥이 초대 장로로 장립되어 초대 당회가 조직된다. 1938년 1월 이기풍 목사가 5대 교역자로 자청하여 부임하였다. 1938년 9월에 열린 제27회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였지만 우학리교회는 이기풍 목사를 중심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하였다.
194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60년대 초 사이에는 장년자의 출석수가 35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부흥하였으며 주변의 수많은 교회들을 낳는 산파 역할을 하였다. 1970년 4월 제1차 예배당 증축 공사를 하였고, 1976년 12월 제2차 증축을 통해 연건평 528m²의 2층 건물로 완공하였다. 2001년 7월 예배당 외벽을 적벽돌로 치장하여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사업과 업무]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투옥되고 고문당한 끝에 숨진 이기풍 목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기풍 목사 순교기념관’을 2010년 5월에 개관하였고, 기념관 뒤에는 장미공원을 조성하였다. 주위 여러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교회 건립을 도와주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활동사항]
1952년 4월 이광식 목사를 우학리교회 전도목사로 청빙하여 안도교회에 파송하였고, 1958년 5월 김경남 전도사를 유포교회에 파송하였다. 1972년 7월 원학교회, 1978년 4월 두모교회, 1981년 3월 심미교회를 각각 분립하거나 개척하였다. 2006년 4월 4일 설립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를 거행했다.
[현황]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장로 4명, 안수집사 2명, 서리집사 63명을 포함하여, 약 100여 명의 성도가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