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유송리 함구미마을에서 순천 송광사의 비사리구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금오도 함구미 비사리구시 전설」은 유송리 함구미마을 뒷산의 비사리나무를 순천 송광사로 가져가 구시[구유]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세울 때 유송리[금오도] 함구미마을 소나무를 가져가서 목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즈음 금오도 송광사 터 부근에...
-
전라남도 여수시 미평동 소정마을에 있는 미륵암 비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미평동 소정마을은 원래 쇠징이, 소징이로 부르던 곳이다. 산자락이 가늘게 끝을 이룬 곳, 작은 길목에 있어 소정이라 이름하였다. 「소정리 미륵암」은 소정마을에 영광정씨 정영민이 입향하면서 세운 미륵암에 대한 이야기이다....
-
1919년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확대될 당시 여수 지역에도 「독립선언서」가 순천을 통해 율촌면과 여수읍 내로 전달되었다. 이후 4월 1일 쌍봉면·소라면·율촌면의 3개 면에서 산발적인 소규모의 만세 운동이 일어났고, 또 그날 밤 돌산면·화정면·남면·삼산면 등 4개 면에서도 일부 어민들이 산발적인 시위 운동을 벌였다고는 하나 본격적...
-
유승비를 시조로 하고 유세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강릉유씨는 고려 문종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지금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 정착한 한나라 유방(劉邦)의 40세손 유전(劉筌)을 도시조(都始祖)로 한다. 유전의 큰아들로 대사헌을 지낸 유견규(劉堅規)가 거창군에 봉해져서 거창유씨의 세계(世系)를 이었으나, 문희공(文僖公) 유창이 조선 개국 이등공신에 책록되어 옥천...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대기 중에 포함된 수분이 액체 또는 고체로 되어 지상에 내리는 현상. 전라남도 여수시는 완도군. 장흥군, 해남군, 고흥군과 함께 남해안형 기후구에 속한다. 최근 40년간[1980년~2019년] 연평균강수량은 1,457㎜로 다른 기후구보다 많으며, 최습월[7월] 강수량은 289㎜, 최건월[12월] 강수량은 22.7㎜ 정도이다. 강수일수는 103.3일로, 다른...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물의 생산과 직...
-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윤강·김수은·김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경주김씨는 서기 65년에 금궤에서 나왔다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17대 내물이사금 이후로 경주김씨 자손들이 대대로 신라왕이 되었으나, 56대 경순왕 대에 이르러 왕건에게 나라를 내주게 되어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金鳴鐘)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태주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경주정씨는 신라 초기 6부 가운데 본피부(本彼部) 촌장이던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받든다. 중시조는 고려 때 평장사를 지낸 정진후(鄭珍厚)로 시조의 40세손이다. 이후 문헌공파(文獻公派)·양경공파(良景公派)·월성위파(月城尉派)·평장공파(平章公派) 등 크게 네 파로 갈라졌다. 문헌공의 후손 노송정 정지년(鄭知...
-
선사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여수 지역에는 삼한시대 마한연맹체의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백제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에 위치한 여러 소국들은 백제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여러 소국들을 곧바로 군현(郡縣)으로 편제하거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소국의 족장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
936년 후백제 멸망 이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개성 지역의 호족 세력으로 발전한 왕건(王建)은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935년 신라의 투항을 받아들인 후, 936년 후백제를 멸망시켜 후삼국을 완전히 통합하였다.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 구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개편하였다. 이에 통일신라시대에 해...
-
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풍경·풍습·문물 따위를 유람하는 일. 「관광진흥법」에 의한 관광 사업은 관광객을 위하여 운송·숙박·음식·운동·오락·휴양 또는 용역을 제공하거나 그 밖에 관광에 딸린 시설을 갖추어 이를 이용하게 하는 업(業)을 말한다. 여행업은 여행자 또는 운송 시설, 숙박 시설, 그 밖에 여행에 딸리는 시설의 경영자 등을 위하여 그 시설 이용 알선이나 계약 체결의 대리,...
-
전라남도 여수시와 광양시 사이에 있는 내해. 여수반도 동북단인 낙포동과 섬진강 하구를 잇는 서쪽 바다가 광양만에 해당된다. 광양만 입구는 동쪽 남해와 연결되며, 광양만 내(內)의 중앙에 묘도(猫島)가 있으며, 서쪽에 송도(松島)와 장도(獐島) 등의 섬이 있다. 섬진강 하구에는 태인도[현재는 광양제철소 부지로 매립]가 있었으며, 율촌면 동쪽 해안을 따라 넓은 개펄이 펼쳐져 있다. 자...
-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는 광주지방법원 산하 순천지원 여수시법원. 1948년 5월 4일 「군정법령」이 제192호로 제정되고 1948년 6월 1일부터 시행된 「법원조직법」에 의해 사법권과 행정권이 동등한 지위를 구축하였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헌법」이 제정되고 1949년 9월 26일 법률 제51호 「법원조직법」이 제정된 데 이어 여러 실정법과 절차법의 시행으로 현대적인...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사회 개조의 수단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육은 내부의 자연적 성장의 힘과 외부 영향력과의 합력(合力)에 의하여 성립되는 인간 형성의 작용을 의미하며,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참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
-
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운송 도구를 이용하여 사람이나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 여수시는 서쪽으로 고흥군, 북쪽은 순천시와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경상남도 남해군과 인접해 있는 전라남도 동부권의 중심도시이다. 역사적으로는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문화, 정치, 경제의 구심지이며, 남~북 방향으로 여수~용인간의 국도 17호선이 지나고 있다. 동~서 방향으로는 부산~여수~인천간의 국도 7...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취적리에 있는 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뤄졌으며, 율촌면 중앙에 솟은 높이 292.9m의 산이다. 경위도상의 위치는 북위 34°51′15″, 동경 127°34′41″에 해당된다. 북동사면은 경사가 급하나 남동사면은 완만하다. 국사봉에서 발원한 수계의 물이 산 동쪽에 위치한 취적저수지로 유입되어 취적리 일대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산정...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돌산 지역은 조선수군진의 하나로 방답첨사진이 자리하였는데, 진영이 석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지금도 그 흔적을 마을 곳곳에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전기 중종 때 쌓아진 성의 기록을 보면 주위가 2,182척(尺)(661m), 높이가 13척(3.9m)의 사각형 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랜 역사를 안은 마을답게 땅이름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은 지...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는 357.5㏊의 면적에 537세대 1,415명[남자 715, 여자 700]의 주민이 살고 있는 돌산읍에서 가장 큰 법정리 마을로 돌산읍사무소 소재지이다. 군내리라는 마을 이름은 1896년 돌산도를 중심으로 한 도서 지역이 돌산군이 되면서 ‘군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지어졌다. 돌산이 군이 되었던 것은 당시 완도의 고금도와 흥양(...
-
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흔과 유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기계유씨는 신라 때 아찬을 역임한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받든다. 그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은 신라가 망했는데도 고려에 불복하므로 태조가 기계호장(杞溪戶長)을 삼았다. 이에 따라 유의신의 후손들은 기계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유의신의 종파인 동정공파(同正公派)를 비롯하여 월성군파(月城君派)·장사...
-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대기 온도. 기온은 보통 지면으로부터 1.5m 높이의 백엽상 속에 놓인 온도계로 잰 온도를 이른다. 최근 40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기온은 14.6℃이며, 가장 무더운 달인 8월은 22.2℃, 5월은 17.4℃, 10월은 14.4℃, 가장 추운 달인 1월은 -1℃이다[40년 이상 연속 관측한 1980년~2019년 평년값 기준]. 여수시는 전라남도의 완도·장흥·...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일 년을 주기로 되풀이되는 기온·비·눈·바람 따위의 평균 상태. 기후는 일정 장소에서 약 30년간의 기상 상황을 종합하여 그 평균 상태를 기록한 자료이다. 호남 지방은 쾨펜(Köppen)의 분류로는 대부분 온대 동계 건조 기후대[Cwa]로 구분되고, 맥큔(McCune)의 분류로는 남부 지방형과 남부 해안 지방형으로 구분된다. 1963년 우리 나라 지리학자들과...
-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향토 사학자. 김계유(金鷄有)는 1925년 8월 15일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세포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여수리 소라면 가사리 농곡마을로 이주하였다. 19세에 일본 오사카의 송전중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때인 1944년 여천군청 공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보성군청을 거쳐 1969년 퇴직하였다. 광복 전 김계유는 일본인 편강의가 쓴...
-
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광옥과 김응달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김녕김씨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김알지의 35세손이며, 신라 56대 경순왕 김부(金傅)의 넷째 아들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의 증손인 김렴(金濂)의 6세손이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묘청의 난을 토평하였고, 명종 때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에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으로 봉해졌다. 이로 인해 후손...
-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대인의 가계와 생몰 연대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순천 별량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김대인은 어려서 지리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기예가 남달랐던 탓에 산에서 생활하면서 검술을 익혔다. 환속해서 여수 지역을 찾은 김대인은 지금의 석창 지역인 석보촌에서 살았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
-
여말 선초에 여수에서 무인으로 활동했던 인물. 김승주의 처음 이름은 을보(乙寶)요, 호는 월담(月潭)이며 시호는 양경(襄景)이다. 여말 흥위위별장(興威衛別將)에 임명됨으로써 벼슬길로 나아가 왜구를 무찌르는 공을 세웠고 변방을 지키는 데 주도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여수인(麗水人)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순천김씨 가문에서 편찬한 『순천김씨세적총...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한 아동문학가. 1973년 광주 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초도초등학교, 율촌초등학교, 북초등학교, 구봉초둥학교, 자산초등학교, 경호초등학교 등 주로 여수의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990년 이후 여수 여도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1952년 전남 순천시 생목동에서 아버지 김찬수씨와 어머니 이덕순 여사의 둘째로 태어나 순천에서 성장하였고, 고등학교까지 순천에서 다녔...
-
조선 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으로 전라좌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무신. 1891년 부호군으로 있다가 1894년(고종 31) 전라좌수영의 마지막 수군절도사로 부임했다. 이때 동학군들이 여수·순천·광양 등에 이르러 형세가 매우 위태로웠으나 선방하여 좌수영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관할 하에 있던 하동·광양·순천·보성·장흥·흥양을 평정하는 데도 일조하였다. 기적비(紀績碑)가 세워졌다....
-
남북국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김총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을 도와 관직이 인가별감에 이르렀으며, 여수 지역 사람들은 그를 성황신으로 받들고 있다. 1686년(숙종 12) 여산[여수 돌산] 군수였던 김총의 32대손 김노득(金魯得)은 『순천김씨가덕록평양군가찬』에서 신라의 종성인 자신의 선조가 신라의 반역자를 섬길 수 있는가 반문하며 김총이 견훤을 섬긴 것을 부인하고...
-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은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을 시조로 받든다. 김해 이후 분관된 사례가 없으나 다만 인도 공주 출신인 수로왕의 비 허황옥(許黃玉)의 간곡한 요청으로 두 아들은 모성을 따라 허씨가 되었다. 김해김씨의 파계는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여 분파되었는데, 그 중 김유신 직계인 시조의 51세손 김목경(金牧卿)을 파조로...
-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나대용은 전라좌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왜적 침입에 대비하여 병선 제작을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종제인 나치용과 함께 고향인 순천에서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 지역으로 내려왔다. 나대용은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전라좌수영 수군의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군관으로 임명을 받고 선소에서 전선을 제작하게 된다. 선소는 전라좌수영 본영...
-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성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남원양씨는 제주 삼성혈(三姓穴)에서 나와 탐라국을 세운 양을나를 시조로 받든다. 양탕(良宕)의 후손 양우량(梁友諒)이 신라에서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졌으므로 제주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남원으로 하였다. 병부공파(兵部公派)와 용성군파(龍城君派)가 있다. 남원양씨 최초 입향자는 양성호(梁聖浩)이다. 그는...
-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는 남해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지역 주간 신문. 2004년 『새여수신문』으로 창간하였고, 3주년을 맞아 2007년 『남해안신문』으로 제2 창간을 하였다. 2000년 이후 여수 지역에서 발간되던 『진남신문』(1999~2000), 『여수투데이』(2000~2002), 『여수신문』 등이 폐간과 창간을 거듭하였다. 당시 지역 신문들의 경영 상태는 좋지 못했고, 다매체...
-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던 수군기지. 1396년 진례만호진이 설립되어 28년간 계속되어 왔으나 1423년(세종 5) 1월 전라감사가 “도내 진례량의 병선을 내례량으로 옮겨 경상도 우수영[거제도]의 서편을 관장하는 남해도, 평산포만호진의 병선과 마주 대하여 봉화로 서로 연락하는 방어선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 는 장계를 조정에 올려 세종이 이를 윤허함으로써 진례만호진...
-
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득선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달성서씨는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고 달성군(達成君)에 봉해지고 서씨 성을 받은 서진(徐晋)을 시조로 한다. 서진의 후손은 7세손 때 서제(徐濟)를 파조로 하는 현감공파(縣監公派), 서도(徐渡)를 파조로 하는 학유공파(學諭公派), 서섭(徐涉)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判書公派), 서근중(徐近中)을...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서 돼지 곱창과 갖은 야채를 넣어 볶은 향토음식. 곱창이 언제부터 조리되어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문헌상으로는 조선 순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徐有榘)가 만년에 저술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와 1938년 발간된 『조선요리법』에 등장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안주를 하든지 밥을 말아먹든지 다 좋다”라고 두 문헌은 소...
-
덕양역 앞에 너른 광장과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덕양장터이다. 오일장의 기능이 사라진 지가 10여 년이 되서 그런지 시장터의 흔적이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장터에 있는 식당 간판들은 밝고 활기차 보이고, 식당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식당 입구에는 큰 고무통 안에 돼지 곱창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종업들이 물로 씻고 있는 모습...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곱창전골 거리. 1917년 여수-순천 간 신작로가 완공되면서 세동[현 소라면 덕양리]에 우시장인 덕양장이 개설되면서 음식점도 함께 번성했는데 그중에서 주종을 이룬 것이 바로 곱창전골 식당이었다. 이후 2017년 7월 20일 화양면 나진리 소장마을에서 굴구지마을 간 도로를 확포장하여 교통이 원활해졌으며, 2019년 나진-안포 간 도로 신설, 20...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던 전통 재래 시장. 덕양역 인근에 형성된 덕양장은 주로 농수축산물을 거래하는 시장이었으며, 3일·8일·13일·18일·23일·28일에 장이 섰다.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오일장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덕양장, 서시장, 동시장이 만들어졌다. 덕양장은 여수 지역 중 북부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동시장은 여수 지역 동부권과 서시장은 여수 지역 중부...
-
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도로는 관리 주체 및 기능에 따라 고속도로, 전용도로, 일반국도, 지방도, 시·군도, 농·어촌도로 등으로 구분되며, 도로는 사회간접자본(SOC)의 대표적인 시설로써 방문객과 여행객에게 교통의 편리를 제공함은 물론 여수 시민에게도 쾌적하고 깨끗한 교통 문화를 정립하는 매체가 되고 있다. 또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물동...
-
오늘날 도시에서 생활하는 나이 드신 분들은 옛 정취를 느낄 수 없다고 한다. 도심은 삭막하고 농어촌 지역은 옛 정취를 느낄 수는 있지만 적막하다고 한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나이든 사람들이 삶의 질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덕양과 돌산읍 군내리를 예로 많이 든다. 그래서인지 덕양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자식들을 따라 여수나...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화산에 있는 봉수 터. 봉수란 봉(峰)과 수(燧)로 급보를 전하던 고대의 통신 방법으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불빛과 연기로 신호를 전달하던 것인데, 야간에는 횃불이 잘 보이지만 주간에는 잘 보이지 않아 대신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대략 10리마다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었다. 돌산도 봉수는 서쪽으로는 백야곶 봉수에 응하고, 북쪽으로 진례산 봉...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 동인회. 수필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지역 수필 문학의 저변확대와 질적 수준 향상을 통한 창작력 제고 및 동호인 간 교류와 우호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전라남도 여수시 공화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의 아버지와 성령을 믿는 이들이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표지(標識)인 교회의 본질을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30년대 여수시에는 천주교 신자가 이동관[다테오]과 아들 이남수[요한, 1906년] 및 그의 가족, 여수항과 철도를 건설하기...
-
조선시대에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는 금오도와 마찬가지로 왜구가 침입해 왔던 길목 또는 그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실록(明宗實錄)』을 보면, 1546년(명종 1) 9월 25일 기사에 전라도수사 김세한(金世澣)의 계본(啓本)을 정원에 내리면서 전교한 내용이 적혀 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 조개·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하거나 국가의 각급 제사에 쓰는...
-
1894년(고종 31)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동학은 심화되고 있던 봉건 체제의 모순과 열강의 침략 위기 속에서 1860년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시되었다. 동학은 인내천 사상을 내세웠으며, 유·불·선은 물론 민간 신앙과 천주교를 포용한 당시 사회사상의 합성체로 평민은 물론이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동학의 교리에는 개벽과 평등의 반봉건 사상...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둔덕동의 명칭은 둔덕재라 하던 고개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 좌수영으로부터 십리 거리에 있어 왕십리라고 하던 지역을 중심으로 문치리와 신죽리 일부를 통합하여 1953년에 생겨난 행정지명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왕십리라 칭하였으며, 195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둔덕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87년 제3토지 구획정...
-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의 치소가 그 지역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행정의 치소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게 마련이다. 1897년 5월 여수군이 설군되었을 당시에는 면 소재지가 덕양에서 남쪽 방향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는 지금의 관기리에 소재하고 있었다. 설군 당시 면 소재지였던 관기리에서 떨어져 있었던 지금의 덕양 일대에는...
-
장빈을 시조로 하고 장관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목천장씨의 시조는 고려조에서 공을 세워 목천군(木川君)에 봉해진 장빈(張彬)이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들은 장지(張池)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목천(木川)을 본관으로 하였다 1790년대에 장관조(張寬祖)가 순천에서 옮겨 와 여수시 삼일동 상적마을에 정착했다. 장관조는 시조 장빈의 17세손이며 파조...
-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묘도리 유두산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묘도동 산성의 축조에 대한 문헌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체성이 거의 무너져 있어서 성곽의 초축 시기를 알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다. 다만, 출토 유물 가운데 기와류가 고려시대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 산성은 고려시대와 그 이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뿐이다. 이 산성에서는 『일본서기(日本書紀)』신공기 49년조에...
-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전해 내려오는 명나라 장수 진린에 관한 이야기. 묘도는 광양만의 중앙에 자리 잡은 섬으로 정유재란 때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1543~1607]과 관련된 지명과 유적이 남아 있다. 묘도에서 광양항이 바라다보이는 평암산을 배산으로 서북으로 터져 있는 골에 터를 잡은 도독마을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나 『광동진씨족보』에 의하면...
-
전라남도 여수시 선원동에 있는 산. 신선이 춤추는 것 같이 보이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가 되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동쪽은 경사가 가파르나 서쪽은 완만한 편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순천 계족산에서 분기한 여수기맥이 이곳 무선산을 지나 백야곶까지 이어진다. 주요 식생은 동백나무와 소나무 등 혼합림이 분포한다. 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작품을 일컫는다. 여수 문학의 대상 범위는 여수 또는 타지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 여수를 배경으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 여수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여수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여수 문학은 신화, 민...
-
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철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를 식읍으로...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웅도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박씨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의 후손들이다. 밀양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는데, 그는 박혁거세의 30세손이다. 이후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도평의사사사공파(都評議使司使公派)·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판도공파(版圖公派)·좌윤공파(...
-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평중(平仲), 호는 죽파(竹坡). 초기의 이름은 박자방(朴自芳)이었다. 밀양박씨 여수 입향조인 박진현(朴振賢)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무과에 올라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으로 있을 때 박자방을 대동하고 화양에 입향하여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장재(將材)로 소문난 박자방은 정유재란을 당하여 전라좌수영으로 이순...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개인이나 조직이 기계의 도움으로 익명의 집단 혹은 대중에게 음성과 영상을 통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대중매체의 총칭. 방송은 적절한 수신 장치를 갖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동시에 청취하거나 시청할 수 있도록 오락·정보·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방송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2월 일제에 의해 경성방...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에 있는 곶. 백야곶은 호남정맥이 지나는 순천 계족산에서 분기한 여수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곶으로서 예로부터 백야도와 연결되는 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계두수도에 접한 백야곶은 간석지가 넓게 발달하여 오래전부터 꼬막·새조개 등 양식업이 발달하였으며, 백야도와 연결되는 나루에는 도진취락이 발달하였다. 백야곶이 알려지게 된 것은 조선시대 외적 방어를 위해...
-
전라남도 여수시 여서동에 있는 문화재단. 범민(凡民)이란 ‘평범할 범(凡)’, ‘백성 민(民)’의 조합으로 평범한 백성이라는 뜻과 함께 여수 사랑의 정신으로 지역발전에 애썼던 고(故) 박윤수의 호인 범민을 차용한 중의적 뜻을 가진 이름이다. 박윤수는 지역의 인물을 키우기 위해 ‘범민장학회’를 만들어 후학에 힘쓰고, 충무동에 ‘범민교’를 만들어 지역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였으며...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봉강(鳳崗)마을과 계원(溪源)마을을 합하여 봉계동(鳳溪洞)이 되었다. 조선시대 석보창이 있던 지역으로 속칭 석창이라고도 한다. 본래 여천군 쌍봉면(雙鳳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강리(鳳崗里)·월앙리(月仰里)·계원리(溪源里)·대곡리(大谷里)·월산리(月山里)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여천군 쌍봉면 봉계리가 되었다. 1976년 전...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 계원마을 뒷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토축 산성. 봉계동 토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현재 찾을 수 없다. 1986년에 간행된 『문화유적총람』에는 ‘토성 주삼동 봉계리 석창성지 동북쪽 야산에 있음. 기와편·자기편·주초석으로 보이는 돌 등이 있음. 원형을 이루고 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봉계동 토성은 해발 401m의 호랑산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끝자락에 위...
-
불과 연기를 이용한 전통 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봉(烽, 횃불)과 수(燧, 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이다.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일정한 간격의 산을 지정하여 밤에는 불빛으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낸다. 우리나라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도는 기록상 고려 후기인 12세기에 처음으로 보인다. 봉수는 역마(驛馬)나 인편(人便)보다 시간적으로 단축되었으며...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흔히 깨달음의 종교라고 한다. 다른 종교가 사랑·인(仁)·박애 등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에, 불교는 자연과 우주의 보편 원리로서 개개의 존재에 내재하는 본성을 깨달아 실현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교주는 석가모니이며, 깨달음을 위한 수행 방법을 체계화하여 정리한 불경이 있다. 신도로는 깨달음을...
-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와 옥적리 사이에 있는 산. 비봉산에 관한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는 곡화목장의 말들이 서로 지나간다고 하여 마거산이라고 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풍화된 육산으로,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한 편이다. 높이는 310.7m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순천 계족산에서 분기한 여수기맥이 앵무산과 무선산, 안심산을 지...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법에 의한 민사 및 형사 사건의 재판과 그에 관련되는 국가 작용. 일반적으로 사법은 입법, 행정과 함께 국가 통치 작용의 하나이다. 개인 상호간 또는 국가와 개인 간의 법률 관계에 관한 쟁의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무엇이 적법인가를 선언하는 행위로서 그 범위는 국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사법 제도는 좁은 의미로 재판 제도를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는 검...
-
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여수는 전반적으로 오랜 침식을 많이 받은 구릉성 산지가 발달해 있다. 남해안에 발달한 리아스식 해안의 영향으로 곳곳에 반도가 형성되어 있고, 복잡한 해안선과 낮은 해저의 간석지가 많은 지형적인 특징을 띄고 있다. 이곳은 소백산맥의 지리산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곡성과 순천을 지나 여수반도로 뻗어 내려오는 지맥...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있는 앵무산과 율촌천이 있는 주변의 산수가 수려하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며, 금산과 수전마을에서 유래되었다. 가장 북쪽의 행정마을은 본래의 이름이 살구정이었다. 마을 복판에 큰 살구나무가 있어서 살구정이라고 부르다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행정(杏亭)이 된 것이다. 전해지는 입향조는 1480년 경 장흥위씨 위용이 정착하고 그...
-
전라남도 여수현(지금의 여수시)이 세 번 폐현되었다가 네 번째 복현(復縣)을 이룬 것. 1396년(태조 5)에 조정에서 새로운 왕조(王朝)의 건국에 관한 교지(敎旨)를 전국에 내렸는데, 당시 여수의 현령(縣令) 오흔인(吳欣仁)은 태조의 혁명을 단호히 반대하며 사신을 거절하였다. 이로 인해 태조는 대노하여 여수의 폐현을 명하고 순천부에 예속시켰다. 순천에 예속된 여수 백성들은 훗날...
-
1997년 9월 9일 주민 투표에 의해 여수시·여천시·여천군의 3개 행정구역의 통합. 여수 지역 행정구역 통합 논의는 여수상공회의소가 1983년 1월 여수시와 당시 여천지구출장소의 통합 당위성에 대한 용역을 하여 홍보하면서 대두되었다. 그러나 여수시 쪽의 일방적인 처사에 격분한 여천지구출장소 관내 유지들이 통합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94년 2월 14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회의...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봉리는 본래 상여리였는데 1986년 상봉리로 바꾸었다. 상여란 이름이 장례 때 운상을 하는 상여와 발음이 같아 상봉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 마을에 거주한 사람은 경주최씨였다고 하나 후손이 없고 1595년 경 진주강씨 강원이 경상도 창원에서 군수를 지내다 임진왜란을 피해 자리를 잡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17...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의 덕양 시내에는 네 개의 마을이 있는데 이 중 상세동과 하세동이 가장 먼저 형성되었다. 국도 17호선을 따라 여수공항을 거쳐 오른쪽 방향 지방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덕양거리가 나온다. 덕양거리 양쪽에 상가가 연이어 있는데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경계로 오른쪽, 즉 지도상으로 보면 서쪽에 해당되는 곳이 상세동이고 건너편 마을이 하세동이다....
-
박언창을 시조로 하고 박동빈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상주박씨의 시조는 박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朴彦昌)이다. 박언창은 사벌국(沙伐國)을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후백제 견훤의 침입을 받아 전사했다. 박언창의 12세손 박려(朴侶)는 고려 충렬왕 때 삼중대광첨의찬성사(三重大匡僉議贊成事)로 상산부원군에 봉해졌는데, 그 후손들이 박언창을 시조...
-
전라남도 여수시에 서민과 소규모 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고 저축을 증대하기 위하여 설립된 금융 기관. 1972년의 「상호신용금고법」의 제정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지역 금융기관으로 본래의 명칭은 상호신용금고였으나 2001년 3월 「상호신용금고법」이 「상호저축은행법」으로 개정됨과 더불어 2002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업무는 기존 상호신용금고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각각 별도로...
-
1876년 여수를 관할하는 순천부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푼 인물. 서정순의 자는 원중(元仲)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순천부사로 부임하여 그 행정력이 여수까지 미쳐 선정을 베풀었으며, 중앙 정치에 참여해서는 함경도의 방곡령 사건 등 외교문제를 처리했고, 갑오개혁 이후 공무아문 대신과 박정양 내각의 법부대신 겸 고등재판소 재판장을 지냈으며, 만민공동회에 참석...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일제강점기 무선리(舞仙里)와 도원리(桃源里)를 합하여 선원동(仙源洞)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반월리(半月里)·죽점리(竹店里)·도원리·가곡리(佳谷里)·무선리·사벽리(沙碧里)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쌍봉면 선원리가 되었다. 1949년 여수시 승격에 따라 여천군이 신설되어 여천군 쌍봉면 선원리가 되었다. 1976년 전라남도 여천지구...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천주교 교리에 따른 예식이 이루어지는 건물. 천주교 전래 이후 초기에는 천주당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혼용기를 거쳐 성당이란 명칭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공의회 이후부터는 천주교 OOO교회라 불렀으며, 현재는 OOO성당으로 부르고 있다. 주교가 자치권을 행사하는 각 교구에는 주교좌 성당이 있으며, 정식 교계 제도가 설정되지 않은 대목구나 지목구...
-
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산곡마을에 있던 역원. 역원은 삼국시대부터 있던 제도로 공문서의 전달과 여행 중인 관리의 숙박 또는 관물의 운송을 담당하였다. 병조의 소관으로 관할 역에는 찰방이 있고 찰방역에는 몇 개의 역이 소속되어 있다.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는 역원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486년(성종 17)...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혈족 집단. 성씨는 혈연 관계를 나타내 주는 단위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고(高)씨, 백제의 시조 온조의 부여(夫餘)씨, 신라의 박(朴)·석(昔)·김(金)씨 등을 시발로 귀족 계급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성씨가 많이 늘어났고, 조선시대에는 일부 천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와 대포리에 조성된 간척지. 1922년 여수에서 활동한 일본인 소유의 고뢰농장에서 화양면 백초리 소백초마을과 소라면 가사리 사이의 해안을 방파제로 연결하여 그 안쪽 걸망개를 간척지로 조성하였다. 조성 면적이 2.479㎢로 당시 여수에서는 가장 넓은 간척지가 되었다. 1925년 소라면 대포리와 삼일면 화치리[현 여수시 화치동]를 잇는 간척지가 조성됨에 따...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소재지인 덕양에서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 상세동과 하세동 사이의 간선도로를 걸어가면 장터 입구에 허름한 슬라브 2층 건물이 있는데, 소라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막걸리 주조장이다. 아직도 건물에는 지을 당시에 외벽에 붙였던 타일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지을 당시에는 고급스런 건물이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지금은 막걸리가 소주나 맥주에 밀려 있지...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에 있는 황새봉의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화치동을 지나 광양만으로 유입되는 하천. 소라천의 주요 발원지는 황새봉 산록 일대이며, 쌍봉천 수계에 속한다.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 1258번지를 기점으로 유로를 형성하여 여수시 화치동 일대에서 쌍봉천과 합류하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지방 2급 준용하천이다.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하천이 흐...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와 화치동 일대에 있는 평야. 고뢰농장(高瀨農場)이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에 소라면 대포리와 삼일면 화치리[현 화치동]를 잇는 방조제를 막아 조성한 평야이다. 방조제 길이는 약 4㎞에 달하며, 조성된 경작지는 500정보(150만 평, 4,958,677 m²)이다. 고뢰농장은 이 평야를 소작인들에게 분배하여 목화와 쌀을 거두어 갔으며, 수확량을 늘리기...
-
사랑하는 두 아들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두 아들이 총살당한 계기를 제공한 안재선을 아들로 삼겠다는 그 뜨거운 사랑은 손양원 목사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손양원 목사는 안재선을 부산 고려성경고등학교에 수학하도록 하여 전도사로 키웠다. 안재선은 성경학교 졸업 후 잠시 부산의 어느 교회 전도사로 있었고...
-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여수에 집결했던 군인들 중 사회주의 계열 군인 일부가 봉기하였다. 이들은 불과 네 시간 만에 여수 시내 경찰서와 파출소, 군청, 역 등 주요 기관을 장악하고 이어 순천까지도 점령하였다. 이 당시에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손동인과 손동신은 순천사범학교와 순천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 두 형제는 학교 안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
-
1587년(선조 20) 손죽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와 전라좌수군이 벌인 전투. 1587년 1월 말경에 일본 규수의 오도(五島)와 평호도(平戶島) 출신들이 탄 왜선 두어 척이 흥양 녹도진[현재 고흥군 녹동] 앞바다를 침범했다. 보통 때 같으면 동남풍이 부는 4월 이후에 왜선이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예상을 깨고 일찍 침범했다. 녹도 만호 이대원이 경황이 없어 주장에게 보고하지도 않은...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유송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송광사에 얽힌 이야기. 송광사(松廣寺)는 금오도 송고산 남쪽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조국사가 금오도에다 송광사를 세웠다고 하였으나 현존하지 않고 있다. 옛 기록을 보면 “부서(府西)의 송광사만 있으니 이름은 동일하나 이전에 없어진 지 이미 오래이다. 부서의 송광사는 곧 순천 조계산(曺溪山) 송광사의 이름이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에 있는 산.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정부에 있는 투구봉 바위와 관계된 지명으로 추정된다.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르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산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식생은 소나무를 비롯하여 떡갈나무 등 참나무과 나무들이 주로 자라고 있다. 율촌면의 중앙에 있는 산으로, 산의 정상인 투구봉은 임진왜란 당시 죽암산성[투구...
-
백우경을 시조로 하고 백문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수원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이다. 백우경은 당나라에서 신라에 귀화하여 벼슬이 좌복야사공대사도에 이르렀는데, 그의 후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짐으로써 수원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수원백씨의 여수 입향조는 백문익(白文益)이다. 백문익은 정국공신(靖國功臣) 백수장(...
-
1896년 2월 돌산군이 설치되고 1897년 5월 여수군이 설치되었는데, 이 지역은 모두 순천부에 속해 있었다. 순천부에 속해 있을 당시 여수 방면의 도로는 순천부에서 여수 방향 16㎞ 지점에 성생원[율촌면 소재], 24㎞ 지점에 무상원[쌍봉역], 32㎞ 지점에 내례원[국동 지역]이 있었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3개의 역참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여수에는 세 갈래의 간선도로가 있었...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발간되는 시사적인 뉴스나 정보·오락·광고 등을 제공하는 정기 간행물. 신문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광의의 신문과 협의의 신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광의의 신문은 신문사가 정보를 수집·처리·제작하여 신문지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한 대가를 받는 공공성과 기업성을 함께 지닌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며, 협의의 신문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하나인 신문...
-
전라남도 여수시 지역에서 1860년 이래 발생하여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는 형성된 시기로 보면 근대 종교이고, 민족 주체성을 강조한 관점에서는 민족 종교이며, 민중의 계몽을 고양한 관점에서는 민중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신종교는 외세 열강의 침투가 가속화된 상황에서 조선조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가 기능을 잃게 되면서 민중들이 새로운 안식처를 바라는 상황에서 등장하였다....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신산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학용동·안산동·소호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02년 여수면이 쌍봉면으로 개칭되면서 두 지역의 이름 있는 산인 전봉산(戰鳳山)과 비봉산(飛鳳山)의 두 개의 봉(鳳)자를 따 쌍봉면이라 이름 붙였다. 삼국시대에는 감평군[순천] 원촌현과 통일신라시대 승평군 해읍현에 속했으나, 조선시대 1396년(태조 5)에는 순천부 여수현에 속하였다. 1896년(고종 33)에는 순천...
-
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에 있었던 쌍용양회의 시멘트 제조 및 출하 공장. 쌍용양회는 자체 생산한 양질의 시멘트를 바탕으로 전국의 21개 레미콘공장에서 연간 700만㎥ 내외의 레미콘을 생산, 각 건설 현장에 공급하고 있다. 특히 고강도, 초고내구성, 저발열 콘크리트 등 특수콘크리트를 개발함으로써 국내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건설 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62년 5월 쌍...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마을에서 일어났던 학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순사건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8년 4월 제주도에서 단선단정에 반대하는 제주 4·3사태로 무장 봉기가 발생하여 유격전화되자 정부에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제14연대를 급파하기로 했다. 이에 14연대 소속의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1948년 10월 1...
-
광주부 효천면에서 시작된 애양원의 역사는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04년 2월 목포선교부에서 광주선교부를 개설하기로 하고 벨 목사와 오기연 목사를 파송하였다. 1904년 12월 15일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사택 건축이 완료되었고, 1904년 12월 21일에 이사하게 되었다. 1904년 12월 25일 오전 11시 크리스마스...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와 순천시 해룡면 해창리 사이에 있는 산. 율촌면소재지에서 서북쪽에 있는 앵무산은 여수반도의 주맥(主脈)이다. 예부터 영험한 앵무산이 12산하를 거느리고 있다는 ‘앵무산 12머리’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앵무산은 열 두 산하를 거느린다고 한다. 곧, 새머리·구시머리·대초머리·뱀머리·누에머리·말머리·닷머리·봉머리·학머리·여우머리·닭머리·용머리 등인데, 앵...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봉두리와 율촌면 가장리 사이에 있는 산.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의 모양이 황새와 비슷하다 하여 황새봉이라고도 한다. 순천 계족산에서 시작되는 여수기맥이 앵무산을 지나 이곳을 경유해 화양면 백야곶까지 이어진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대포천과 연화천의 발원지이며, 남동쪽에...
-
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김해김씨는 가락국을 세운 수로왕이 시조이다. 김해 이후 분관된 사례가 없으나 다만 수로왕의 비 보주태후 허황옥(許黃玉)의 간곡한 요청으로 두 아들은 모성을 따라 허씨가 되었다. 모성을 이어 받은 두 아들의 후예 허선문(許宣文)은 허황후의 30세손으로 전하며, 지금의 김포 양천에 세거하면서 농사에 힘써 거부가 되...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쓰이는 특이한 단어나 언어적 현상. 지역 언어란 표준어를 기준으로 한 음운, 어휘, 문법에서 크든 작든 차이가 있는 언어를 뜻한다. 언어학에서는 지리적·사회적으로 분화되어 생겨난 분화체로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한 사회 계층에서만 사용되는 음성·음운·문법·어휘의 체계를 방언학이라는 하위개념으로 분류한다. 지역이란 일정하게 나눈 범위의 땅, 또는 전체 사회를 어떤...
-
여수송림초등학교를 무대로 여교사와 여제자가 새로 부임한 총각 선생님을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 영화 「여선생 VS 여제자」는 표면적으로는 총각인 미술 선생을 사이에 둔 여선생 여미옥과 여제자 고미남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지방 교사의 대도시 이직이라는 심각한 공교육의 현실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먼 중소도시 중 하나인 여수...
-
여수시 중흥동과 평여동·월하동·적량동·월래동·낙포동 일원에 위치한 여수의 산업단지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1967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된 뒤 현재 백여 개 입주업체가 가동 중에 있는 국내 최대의 석유화학 산업단지이다. 최근 들어 공장용지가 부족하여 확장단지를 조성하는 등 그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화학공업단지로서 여수의 산업단지는 환경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로울...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기독교 교회. 1911년 광주에서 건립된 광주나병원은 1926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새로운 터를 마련하고 이주하였다. 광주나병원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처음에는 비더울프 나환자 수용소라 하였다. 1928년 비더울프 나환자 수용소는 환자 600여 명을 수용하는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수용된 환자들의 신앙 생활을 신실히...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에 있는 옛 율촌 역사. 전라선은 1914년 2월 사설 전북 철도 주식회사에서 착공하여 같은 해 11월 전주까지의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 후 조선 총독부에 의해 1931년 10월 전주에서 남원 구간이 개통되고, 1936년 12월 16일 남원에서 순천 구간이 개통되면서 1922년 7월 광주에서 여수 간 개통되어 있던 광주선 구간과 연결되었다. 전라선로의...
-
전라남도 여수시 주삼동에 전래된 민속놀이. 객귀 즉 땅 밑에 있는 나쁜 귀신이 나오지 못하도록 묻고 밟는다는 뜻으로, 보통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는 풍물놀이를 ‘매굿’이라 한다. 요즈음 현대적인 용어로 ‘지신밟기’, ‘마당밟기’라고도 하며,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풍물을 일컫거나 꽹과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여수 지방에서는 이를 ‘매구’라고 하며 풍물놀이를 ‘매구친다’라고 한다....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 최근 여수시가 관광 도시로 각광을 받으며,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수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여수시에서는 연도별 여수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와 드라마 촬영 장소를 정리하여 촬영지에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하는 안내판 등을 설치하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1. 「모정의 뱃길」 「모정의 뱃길」은...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기독교 교회. 1904년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우리 군대를 해산시키고 경찰권을 빼앗아 가는 등 시국이 어수선해지자, 율촌면 조화리 지역의 선각자들은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직 기독교를 통한 민중 계몽 운동밖에 없다는 자각을 하고 교회를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05년 10월 15일 율촌면 여흥리에 초가 약 3...
-
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에 있는 조선 중기 동종. 여수 흥국사 동종은 1665년(현종 6) 순천 동리산 대흥사(大興寺) 혹은 대진사(大眞寺)에서 김애립(金愛立)이 주성하였다. 김애립은 조선시대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金龍岩)·김성원(金成元) 등과 더불어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인물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여수 흥국사 동종이 어떻게 해서 흥국사에 보관되고 있는지 그 연유에 대해 자세...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조선 중기 돌다리. 흥국사에는 본래 일주문이 없었다. 사적기에 의하면 천황문 아래 영성문(迎聖門)이 정문(正門)의 역할을 해 왔다. 이 영성문은 수박다리[水薄다리: 나무로 시내를 건너질러 만든 다리]로서 성인(聖人)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다. 즉, 여수 흥국사 홍교를 건넘으로써 세속을 떠나 영성문을 통과하면 사천왕의 보호를 받는 불법의 사계(寺...
-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는 여수경찰서 산하 치안 행정기관. 여수와 순천을 잇는 국도 17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는 여수시의 중심지로서 공공기관 21개소, 금융 기관 28개소, 초·중·고 17개교 및 사설 학원 등 각종 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여수시 학동 지역을 포함한 10개 행정동의 치안을 관할하는 여수경찰서 산하의 치안 행정 기관이다. 주변 지역의 범죄 예방 및 형사 사건에 대한...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고용노동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소속 기관. 여수고용노동지청은 전남 동부지역 (여수시, 순천시, 광양시, 보성군, 고흥군) 지역의 노사관계 안정, 근로자 권익 보호, 산업재해 예방 및 취업 알선, 직업훈련, 고용보험 등을 통하여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68년 6월 25일 여수직업안정소를 개소하였고 197...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대포리 국도 제17호선 여수-순천 간 자동차 전용 도로 구간에 설치된 여수 상징문. 여수문의 디자인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이 전라좌수영과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으로도 사용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된 여수 진남관을 모방하여 한옥 형태로 디자인하였으며, 현판은 한국예술총연합회 여수지회의 추천을 받아 여수시에서...
-
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문화방송 계열의 지역 방송사. 1970년 8월 27일 남해방송으로 개국한 뒤, 1971년 9월 15일 여수문화방송으로 회사명을 바꾸었다. 1984년 8월 여수시 구봉산에 TV 중계소를 세우고 1985년 8월 음악FM을 개국하였다. 그리고 1987년 11월 21일 TV 연주소를 개국하여 지역 TV 뉴스 방송을 시작하였다. 1988년 2월 표준FM 방송을...
-
전라남도 여수시가 자리하고 있는 반도. 조선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태종 때에는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다. 여수반도에는 보물 제571호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와 보물 제1288호 여수 타루비, 국보 제304호 여수 진남관, 사적 제381호 여수 충민사, 이충무공 자당 기거지, 선소, 굴강 등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이 많이 있다. 이 밖에도...
-
조선 말기 여수현을 다시 설치하기 위하여 벌인 동맹 운동. 1896년 2월 완도나 돌산 같은 섬마저 군이 되었으나 여수 만은 열심히 복현 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설군(設郡) 문제가 실패하여 여전히 순천부 관할에 묶이게 되었다. 이에 형편에 맞지 않은 조정의 처사에 분개하여 1896년 3월 18명이 고장의 비원을 풀기 위해 동맹하였다. 전라남도 여수현에서 발생한 삼복삼파 이후 1...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하는 숲해설가 단체. 회원을 상대로 하는 교육 및 답사 활동을 통하여 회원 개인의 역량 강화와 회원 상호 간 친목을 도모하며, 여수시 지역 성인 및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숲해설 수업을 통해 자연에 대한 친화도와 이해를 높여 개인의 정서 순화 및 역량 강화뿐 아니라 지역의 자연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2006년 10월 여수환경운동연합이 교...
-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철도역. 일제강점기인 1930년 12월 25일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여수 지역 간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여수시 공화동에 여수역(麗水驛)이 건설되었다. 같은 날인 1930년 12월 25일 여수항에서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 간의 뱃길도 열리게 되었다. 이는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를 목적으로 전라선을 개통하고, 일본과의 뱃길을...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미술인 단체. 여수여성미술작가회는 여수 지역에서 활동 중인 여성 작가라면 누구나 입회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고 보다 폭넓게 미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흥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1196년(명종 26) 지눌(知訥)이 창건하였으며,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고 있어 흥국사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승수군(義僧水軍)의 주진사로 쓰이는 등 호국불교의 성지로 불린다.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어 있...
-
전라남도 여수시 중앙동에 있던 여수일보사에서 발행했던 일간 신문. 『여수일보』가 창간되던 때는 좌우익 갈등으로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이 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정 하에서 주권과 민족주의 운동이 강하게 일던 시기였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창간인 정재완은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여수군지부장, 여수군수, 전라남도 사회교육과장 등을 역임했다. 공직 생활을 그만 둔 뒤 지방 언론기관을 만...
-
전라남도 여수시 여서동에 있는 해양수산부 소속 국가기관.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은 해양수산부의 소속기관으로서 현재 여수항·광양항을 포함하여 전라남도 동부지역 3개 시와 5개 군의 해양수산에 관한 종합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가기관이다.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만시설 관리 및 수산업의 활성화를 꾀하여 어민 소득 증대를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23년 여수항 개항과 함께 시작된...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하는 만 44세 이하 청년 미술작가들의 모임. 여수청년미술작가회는 여수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문화예술 도시 여수의 풍경을 주제로 작품을 전시하며 지역 미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여수시의 후원을 받아 1996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25회의 정기전을 이어 가고 있다....
-
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과 중앙동에 있는 항구. 여수항은 부산항에 이은 우리나라 제2의 수산항이다. 여수시 남동해안의 돌출부를 이루는 자산공원을 중심으로, 북쪽의 수정동 일대에는 북항이라고 하는 여수항 신항이 있으며, 남서쪽의 교동과 중앙동 일대에는 남항이라고 하는 여수항 구항이 있으며,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장에 편입되면서 폐쇄된 여수신항을 대체할 여수신북항이 2015년 5월...
-
고려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918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940년(태조 23)에 전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행정구역을 개혁하였다. 따라서 신라시대에 해읍현(海邑縣)[여수]·여산현(廬山縣)[돌산]이라 불리던 여수 지방의 이름도, 여수현(麗水縣)·돌산현(突山縣)으로 바뀌었다. 이때 처음으로 ‘여수(麗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나, 모두 승평군(昇平郡)...
-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 및 광양, 구례, 보성, 고흥 등 인접 지역에서 광복과 제주4·3사건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 지역을 점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
-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여자도를 중심으로 보성군·순천시·여수시·고흥군으로 둘러싸여 있는 내해. 여자만 내해는 굴곡이 심하며, 대여자도·소여자도·대운두도·소운두도 등을 비롯한 많은 섬들과 공진반도와 운두만(雲斗灣)이 있어 해안선이 매우 복잡하다. 고흥반도의 해창만은 우리나라 유수의 간척지로 농경지로 조성되었다. 여자만 바다에는 여자도·장도·달천도 등이 있으며 청정해역으로 전어·멸치·...
-
6.25전쟁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 여자만 해상에서 벌어진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50년 8월 9일 여수시 여자만 해상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6.25전쟁 당시 전선이 여수 지방까지 남하하자 위기를 느낀 미군은 전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여자만 해상의 어민들까지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여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1950년 8...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바닷가 일원에서 갯벌체험과 노을을 주제로 2008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축제. 여자만은 바다 가운데 여자도(汝自島)라는 섬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여수, 순천, 벌교, 보성을 포함한 큰 바다이다. 여자만에서 바라보는 환상적인 저녁 노을과 해안도로에 군데군데 위치한 카페촌, 점점이 떠있는 아름다운 섬들을 바라보면서 저물어가는 가을바다를 거닐며, 낭만을 느...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철도역. 여천역은 한국철도공사 전라선의 종착역인 여수엑스포역과 인접하여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 12월 25일 전라남도 광주-여수 지역 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선원동에 쌍봉역이 건설되었다. 같은 날인 1930년 12월 25일 여수항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 간 뱃길이 열렸다. 전라도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 옮...
-
조장을 시조로 하고 조윤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옥천조씨(玉川趙氏)는 고려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지낸 조장(趙璋)을 시조로 한다. 조장의 증손 조원길(趙元吉)이 공양왕(恭讓王) 때 일등공신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은 옥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옥천은 순창(淳昌)의 옛 이름이므로 순창조씨(淳昌趙氏)라고도 한다. 절...
-
13~16세기에 걸쳐 일본의 해적 집단이 여수 지역을 수시로 침입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사건. 왜구는 일본의 해적집단으로 일본 중세기의 혼란기에 중앙 통치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할 때 가까이는 한국, 멀리는 중국 연안까지 침입하여 큰 해를 주었다. 이 해적들은 주로 서부 일본의 연해민으로서 생활필수품인 쌀 등을 구하기가 어려워 해적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에 왜구의 침입이...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우학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교 단체로서 신·구약 성서를 교회법에 따라 신봉하며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파의 규율 원리에 따른 예배와 선교, 교육과 봉사를 시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06년 4월 5일 여수군 남면 우학리 냉수동 322번지에서 안돌영·김문옥의 두 가정이 모여 가정 예배를 본 것을 시작으로 우학리교회...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화물 또는 여객의 수송을 담당하는 업종. 운수업은 일반적으로 화물 또는 여객의 운송을 영업 목적으로 하는 산업을 총칭하는 용어로 교통사업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수송 목적물에 따라 화물 운수업과 여객 운수업으로 분류하기도 하며 수송 영역에 따라 육상 운수업, 해상 운수업, 항공 운수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육상 운수업은 크게 철도 운수업과 자동차 운수업으로 나누어...
-
백제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평양 천도 후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蓋鹵王)을 살해하고 수도를 빼앗았다. 수도를 점령당한 백제는 공주로 천도하였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에게 빼앗겼다. 그 뒤 성왕이 즉위하여 538년(성왕 16)에 수도를 금강 유역의 부여로 옮겼다. 이때 백제는 사비를 중심으로 전국을 오방제로 나누어 다스렸다. 중방은 고사성(古沙城)[...
-
전라남도 여수시의 한정된 구역 안에서 유선 전기 통신망을 구성하여 다수의 수신자에게 음향·음성·영상 등을 송신하는 방송. 유선방송은 지상파 라디오방송의 난청 해소를 위해 1961년 「유선방송수신관리법」이 제정되면서 태동하였다. 스피커 보급 운동과 함께 산간오지를 중심으로 라디오 공동 청취를 목적으로 산이나 지대가 높은 곳에 안테나를 세우고 방송을 중계하던 공청사가 현 유선방송의 시...
-
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 할아버지는 유진동(柳辰同)이고, 아버지는 경원부사 유용(柳溶)이며, 어머니는 선산 임씨(善山 林氏)이다. 유형(柳珩)은 1566년(명종 21)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사 김천일(金千鎰)을 따라 강화도[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서 활동했...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행정구역. 여수반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한 율촌면(栗村面)은 밤나무가 많은 고을로, 밤골을 한자로 표현한 이름이나 지금은 밤나무가 많은 고장이 아니다. 본래 순천부 지역으로서 고려 때 율촌부곡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율촌면이라 하여 평촌·가장·난화·중산·연화·삼산·반월·내리·봉전리 등 40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7년에 여수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월산리 호산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던 마을 제사. 월산리 호산마을은 율촌면 소재지인 조화리의 맞은편, 즉 순천-여수 간 산업 도로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산비탈 밑에 자리하고 있다. 호산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처음 정착한 이들이 충주지씨(忠州池氏)였다고 하는데, 정확한 문헌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이후 압해정씨(押海...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 전해 내려오는 일제강점기 기관차를 조립했다는 이야기. 1998년 당시 83세인 주영옥(朱榮鈺)이 제보한 내용으로 『율촌면지』에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남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 사용할 기관차를 율촌면 지역에서 조립했다는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 기관차 부품을 일본에서 배로 싣고 와서 율촌면 사안포(沙岸浦)[송도와 장도로 가는 선착장]에 하역하였다. 당시는 조화 간...
-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1910년을 전후로 펼쳐졌던 항일 의병운동. 한반도 남해안의 중심 항구인 여수시는 지정학적 이유로 일본의 침략을 많이 받아 왔다. 삼국 시대부터 끊임없이 한반도의 남해안을 침략해 노략질을 일삼아 온 왜구는 고려 후기 여수 지역 장생포에서 유탁(柳濯) 장군에게 격퇴당하였다. 왜구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수많은 침략을 감행하였는데, 이대원(李大源) 장군의 손죽...
-
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字)는 명서(鳴瑞), 호는 은봉(隱峯). 1640년 지평을 지낸 이완(李完)의 첫째아들이다. 이봉징은 1675년(숙종 1)에 증광시(增廣試)에 장원하여 수찬(修撰)·사인(舍人)을 거쳐 1688년(숙종 14)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제수받았다. 순천이나 여수가 전라좌도수군절도영이 율촌에 밤이 많다 하여 세금을...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전투를 지휘한 무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아버지는 이정(李貞)이고,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이다. 이순신은 1545년(인종 1) 서울 건천동에서 4남 중 3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이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참화를 당한 후로 가세가 기울어 충청남도 아산 외가로 옮겨 살았다. 1576년(선조 9)...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정치가. 여수 지역에서 정미소사업을 시작으로 경제계에서 활동을 하다가 정계로 진출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호는 석정(石亭)으로 여수보통학교와 여수간이수산학교를 졸업한 후 22세 때 자영 공성정미소를 설립했다. 광복 후에는 초대읍장을 역임했으며, 읍장 퇴임 후에는 여수국민회장, 금련(金聯)여수회장, 제2대 상공회의소 회장(1948~1951)...
-
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은부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입향조. 이천서씨의 시조는 기자(箕子)의 40세손 기준의 후손 서신일(徐神逸)이라 한다. 기준(箕準)은 위만을 피하여 이천에 있는 서아성(徐阿城)에 살았다 하여 그 후손이 성을 서씨라 하고 본관을 이천(利川)이라 하였다. 이천서씨 여수 입향조는 원숙공(元肅公) 서눌(徐訥) 파조의 17세손 서은부(徐殷富)이다. 서은부는...
-
지금 덕양거리에는 벚나무가 보이지 않으나 예전에는 많았다. 일제시대에 덕양거리에 벚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은 일제 강점 초창기 일본인들이 덕양마을에 이주하여 정착하였기 때문이다. 덕양에 정착한 일본인들이 벚나무를 직접 심었는지 아니면 마을사람이나 또는 동원된 학생들이 심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직간접적으로 일본인들이 벚나무를 심었던 것은 확실하다. 일설에 의하면 소라공립보통학교가 들...
-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될 때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895년 전라좌수영이 폐지되고, 1896년 도서 지방에 돌산군이 신설되고, 1897년 육지 지역에 여수군이 신설됨으로써 순천도호부에서 분리 독립되어 여수·율촌·삼일·소라의 4개 면을 관할하였다. 후에 여수면이 현내면과 쌍봉면으로 분리되는 등 7개 면으로 분할되었다. 1914면 돌산군이 폐지되었고, 그...
-
예로부터 농어촌 지역에서는 식량이나 생활용품을 거의 자급자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체적으로 생산이 어렵거나 필요한 물품은 봇짐장사로부터 구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생산자에게 주문하여 사용했다. 수요와 공급이 그다지 많지 않은 농촌 지역에서 장터가 형성될 수가 없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골 마을인 이곳에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개화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여수시 소...
-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한 지 사반세기가 넘게 활동한 애양원 김인권 원장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평생 둥지를 튼 것은 1980년 공중보건의로 군 생활을 한센병 환자들의 보금자리인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에서 하게 된 데서 연유한다. 입대 전 결혼한 부인까지 동참시켜 3년 내내 소록도 관사에서 살았다. 제대한 뒤 1983년 5월부터 국내 최초의 한센병 치료기관인 애양원으로 갔다....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와 가까운 화양면과 삼일면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서 뱃길 외에는 다른 지역과 교류하기가 어려웠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뱃길로 여수장이나 광양장으로 나가야 했다. 이것은 여수반도가 예로부터 육상보다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내륙 지역까지 도로가 개설되고 육상 교통이 서서히 발달해지면서 뱃길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
전라남도 여수시 쌍봉동 일대에 있던 포구. 고려시대부터 현재 여수시청이 들어선 지역을 장생포라고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천부 선소로 알려졌으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쌍봉이라 하였다. 여수국가산업단지 건설로 여천지구출장소에서 여천시로 변했다가, 1998년 삼여통합 후 구여수와 신여수를 구분하여 서여수라 호칭하기도 했지만, 아직 여천과 쌍봉으로 호칭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장생포...
-
황경을 시조로 하고 황수청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장수황씨 시조는 통일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시중을 지낸 황경(黃瓊)이라 한다. 황경의 9세손 황공유(黃公有)는 고려 명종 때 권신들을 피해 고향인 장수로 돌아와 버렸는데, 이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후손들은 참의를 지낸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고 장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고 있다. 장수황씨는 거의 황희의...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2006년 4월 전국국민생활체육회 주관으로 열린 전국 생활체육 동호인들의 행사. 전국 생활체육 동호인들의 화합과 우의를 도모하는 행사로 동호인 개개인의 명예와 성취감 고취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간, 계층 간 우정과 화합을 통한 국민 참여 복지 실현을 목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전국국민생활체육 여수대축전행사는 체육, 문화, 관광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축전으로 개최...
-
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에 있는 전라남도 동부 지역 근로자들의 건강 관리 기관. 근로자의 건강 관리에 취약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 건강 보호에 기여하고자 근로자들의 질병 상담 등 다양한 직업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4년 전남동부 근로자건강센터를 설치하였다. 2014년 6월 18일 개소한 후 직업건강협회[구 산업간호협회]가 2016년 1...
-
전라남도 여수시를 지나는 철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하리까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가로지르는 구간으로 전라도 지역을 지나는 의미로 전라선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전북철도주식회사에 의하여 1914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같은 해 11월에 전주까지의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 후 조선총독부의 철도 건설 정책의 변경에 따라 1931년 10월 전주에서 남원 구간이...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과 주삼동 사이에 있는 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사를 주둔시킨 산이라는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산 남쪽으로 봉계저수지와 덕양천이 있으며, 여천평야가 펼쳐져 있다. 기반암이 풍화된 토양층이 잘 발달하여, 주요 식생은 동백나무를 비롯한 상록 활엽수림과 소...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인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은 신라에서 사공 벼슬을 지냈으며, 이성계(李成桂)의 21대조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름으로써 세계가 번성하여 파조도 대단히 많다. 전주이씨 여수 입향조는 양녕대군(讓寧大君) 후손 이원인(李元仁)이다. 이원인은 1580년대에 담양에서 여수시 율촌면 반월리 삼산마...
-
개항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정기채(鄭基采)는 개항기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 광양 등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정기채는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 동상개에서 태어났다. 1907년(순종 1) 7월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정기채는 항일 무장 투쟁을 결심하고 전라남도 여수·순천·광양 일대에서 군자금을...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백(恭伯), 호는 곡구(谷口). 좌찬성(左贊成) 정지년(鄭知年)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정사익(鄭思翊)이다. 정빈은 여수시 소라면 현천에서 태어났다. 학덕이 높았던 우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생으로 몸가짐이 공손하고 근엄하였으며 문장이 훌륭하였다. 임진왜란 때 작은아버지 정사묘(鄭思竗)와...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1543년(중종 38) 해남에서 증공조판서 정응정(鄭應禎)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경서(經書)를 가까이하였다.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웅천현감(熊川縣監)·제주판관 등을 지내면서 민의의 뜻은 따랐으나 부당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1591년(선조 24) 제주목사와의 불화로...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 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는 주로 국가나 정부라는 제도...
-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국악인. 정홍수(丁洪秀)는 향토민속문화보존회를 이끌면서 한국국악협회 전남지부 초대 지부장과 한국국악협회 여수지부장을 맡아 호남의 문화 예술계를 이끌었다. 1981년 정홍수가 발굴한 현천 소동패놀이가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며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현천 소동패놀이는 농사일의 노동력을 높이고 일꾼들의 피로를 덜기 위하여 하던...
-
양을나를 시조로 하고 양하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탐라(耽羅) 삼성혈(三姓穴) 설화의 주인공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하는 혈족이다. 처음에는 성으로 양(良)을 쓰다가 양을나의 후손 양탕(良宕)이 559년(진흥왕 20) 광순사(廣巡使)로 신라에 입조하나 진흥왕이 많은 상을 내리고 성을 양(梁)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양탕의 후손으로 양순...
-
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전라좌수영 내에 있던 창고. 조량창은 전라좌수영 내에 설치된 10칸 창고로, 마료(馬料)와 각종 하인마(下人馬)의 공궤(供饋), 고자사령료(庫子使令料), 동서통장료(東西統長料) 등의 지급 등을 맡았다. 『호좌수영지』의 기록에 의하면, 조량창(助粮倉)에 마료조(馬料租) 50석은 동서토민(東西土民)이 연례 납부하여 이것으로 본부 하인 말을 공궤(供饋)하고 대소...
-
전라남도 여수시 봉계동·해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주암·주동·삼동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암에서 주자와 삼동에서 삼자를 각 한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여수(천)군 쌍봉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항·주암·군장리의 일부와 삼일면의 삼동과 오산·용혈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주삼리가 되었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천군 쌍봉면...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기록이 소실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원로 교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선교사 변요한이 순천과 우학리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시절 늘 역참(驛站)이 있던 덕양리에서 말을 바꿔 타고 다니면서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배와 전도, 교육, 봉사, 국내 및 국외 선교 사업을 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에 있는 천주교 율촌성당 관할 공소. 공소는 천주교의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로 율촌성당 사목구에 속하여 있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와 그 구역이다. 중산공소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므로 그 대신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을 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또한 정기적으로 사제가 방문하여 성사를 집행하기 위한...
-
전라남도 여수시 서교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1910년 2월 5일 설립된 여수교회[현 제일교회]에서 양진환 장로와 임춘자 여전도사를 중심으로 6명의 남녀 서리 집사와 20여 명의 성도들이 1946년 10월 분립하였다. 예수를 믿는 무리와 그 자녀들이 같은 장소에서 성경의 교훈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결하게 생활하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활동할 목적으로...
-
전라남도 여수시의 주민이 지역의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현안을 결정·운영하는 제도. 지방자치는 일정한 구역의 주민들이 법률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방자치 단체를 구성하여 중앙 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그 단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과 관련된 지방적인 사무, 즉 지방의 정치와 행정 사무를 주민들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 아래 선임한 자치 기관을 통하여...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주호와 강원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는 진양강씨(晉陽姜氏)로 부르기도 한다.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인 강진이 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게 되었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殷烈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에 있는 차원부의 유고 문집 『차문절공유사』를 새긴 조선 후기 목판. 차원부(車原頫)[1320~1407]는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로 본관은 연안, 자는 사평(思平), 호는 운암거사,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올라 간의대부(諫議大夫), 보문각(寶文閣) 제학(提學) 등을 역임했으며, 역학에도 밝았다. 조선 개국공신 하륜 등과의 갈등...
-
정연방을 시조로 하고 정계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알려져 있다. 정덕성은 853년(문성왕 15)에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로 귀양 와서 살았고,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장자 정열도(丁烈道)의 계손 정찬(丁贊)은 영광정씨(靈光丁氏), 그 아우 정관(丁寬)은 후창원정씨(後昌原丁氏), 차남 정응도(丁應道)의 계손 정윤종(丁允...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와 금봉리 사이에 있는 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불국사화강암류로 이루어져 있고,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며, 산 곳곳에는 애추해가 발달해 있다. 대미산·천왕산 등에는 산 정상 쪽에서 아래로 많은 바위가 흘러내린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애추라 한다. 애추는 단애면에서 암설(바위 및 자갈)이 하나씩 하나씩 오랜 기간에 걸쳐서 떨...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천주교는 로마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회로서 동방정교회나 프로테스탄트교회와는 구별되는 가톨릭교회를 말한다. 가톨릭이란 ‘보편적’, ‘공동적’, ‘일반적’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로서 스스로를 ‘유일하고, 성스럽고, 공변되며, 사도(使徒)로부터 전래된 교회’라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회가 전 인류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기관이라는...
-
전라남도 여수시와 연결되어 있는 철로 위에서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설비 및 수송 체제. 우리나라 철도는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토대를 다지는 군사적 차원과 식민지 경제 수탈을 위한 경제적 차원에서 부설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철도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제물포-노량진]의 개통으로 시작되었고, 여수 지역 철도 역사는 1929년 2월 26일 남조선철...
-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고 나서 한반도 통치와 대륙 진출을 위하여 남해안 주요 항구로부터 북으로 연결되는 철도를 부설하게 된다. 1905년 개통된 부산-서울 구간인 경부선을 비롯하여 1914년 개통된 목포-서울 구간인 호남선, 1930년 개통된 여수-광주 구간인 경전서부선 그리고 1936년 순천-이리 구간인 전라선 등이 개설되었다. 덕양 에 기차역...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순상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청주한씨는 위양공(威襄公) 한란(韓蘭)을 시조로 받드는 씨족이다. 본래 청주한씨는 그 연원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으로 하는데,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3형제가 각각 기씨(奇氏)·선우씨(鮮于氏)·한씨(韓氏)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은 기자의 후예인...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신체 활동을 통하여 근육을 단련하고 완성된 인격을 만들려는 교육적 작용. 1912년 여수보통학교가 진남관에 있을 때에 육상과 정구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19년에 서울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귀향하여 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연습을 한 것이 여수 축구의 시초이다. 1926년 여수수산학교 교사 조종응이 학교에 야구부를 창설하게 되었고 다른 체육 경기도 선을 보이...
-
1907년 포사이트(Wiley H. Forsythe)와 더불어 나환자를 돌보던 오웬 선교사가 순회 전도 중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웬의 뒤를 이은 윌슨 선교사가 광주 봉선리에 작은 집을 지어 나환자 10명을 수용하였다. 애양원의 전신인 셈이다. 후에 최흥종과 신정식, 쉐핑과 윌슨 선교사가 모금을 해 나환자 600명을 여천군 율촌으로 옮기면서 애양원이 세워졌다. 유...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율촌면소재지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만나는 마을 취적리는 취적1구와 취적2구로 나뉜다. 취적1구는 상취적과 하취적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취적리의 마을 이름은 마을 뒷산인 대통산에서 유래하는데, ‘대통’은 ‘대나무 통’을 뜻하는 말로 이를 한자로 ‘적대산’이라 기록하였다. 적대는 피리를 뜻하는 말이어서, 피리를 분다는 뜻의 ‘취적’이 마을...
-
전라남도 여수시 선원동 테미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테미산성의 명칭은 토미산성, 선원동산성 등으로 불리고 있다. 테미산성은 토미산 또는 테미산으로 불리는 산 정상에 있는데 테미산은 산의 고어인 미에 테가 둘러진 산성이란 의미로 테뫼식 산성[산정식산성]이 있는 산을 통칭한다. 토미산은 테를 한자로 표기가 어려워 토(兎)로 표기한 것이다. 선원동산성은 테미 또는 토미 등 혼란스런 표...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인간의 의사·지식·감정 또는 각종 자료를 포함한 정보를 공간적으로 주고받는 작용이나 현상 또는 그 수단이나 기술의 총칭. 넓은 뜻으로는 통신은 인체나 재화(財貨)의 위치적 또는 공간적 이동을 의미하는 운수(transportation)에 대응해서, 서신을 대상으로 하는 우편, 전류나 전파를 매체로 하는 전기 통신, 공간과 수중을 통한 음향 통신, 빛·연기·수기(手...
-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창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파평윤씨(坡平尹氏) 시조는 고려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을 지낸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신달의 5세손 윤관(尹瓘)이 고려 숙종 때 밀직원사로서 병마도총사가 되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영평은 별호임)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사람들이 평상시에 입는 옷. 여수 지역의 경우 190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평상복으로 전통복과 양복이 혼재하여 나타났다. 이즈음 양복을 착용한 사람들은 주로 젊은 남자들이었다. 여수 지역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에 맞게 여름옷은 모시나 삼베를 이용하되 홑겹으로 하고, 겨울에는 명주나 무명을 겹이나 솜을 두고 누비거나 하였는데, 특히 봄·가을에 누비옷을 입는 일은...
-
순천에서 국도 17호선 따라 여수 방향으로 내려오면 여수공항을 거쳐 오른쪽 방향으로 진입하는 지방도가 있다. 이 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도로 양쪽에 상가가 연이어 있다. 좌측에 덕양시외버스정류장이 나오는데, 정류장 뒤편에 덕양역과 덕양장터가 있고 좌측편으로 상가와 공공시설물이 연이어 있는 곳이 바로 덕양리 하세동이다. 원래 이곳은 대포간척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도로가 있는...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학용동은 학(鶴)이 많이 살았던 마을 ‘학동’과 용처럼 생긴 지형 때문에 ‘용터’라고 부르던 ‘용기마을’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취해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1914년에 처음 만들어진 마을 이름이다. 옛 쌍봉면 시절부터 면의 중심 마을이던 곳이 여천시를 거쳐 통합 여수시청이 위치한 동으로 발전해왔다. 옛 지명들로 웃장·아랫장·가마등·마누등 등의 이름...
-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산하 지역 관리단. 공업용수와 생활용수의 안정적인 공급과 해면 매립을 통한 국토의 효율적 이용 및 국토 확장 등을 통하여 국민 생활 향상과 공공복지 증진을 꾀하고자 설립되었다. 1973년 10월 여천건설사무소로 개소하였다. 1980년 1월 여천용수관리사무소를 설치하였으며, 1982년 1월 여천건설사무소를 여천건설관리사무소로 개칭하였다. 1...
-
이언을 시조로 하고 이지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함평이씨(咸平李氏)는 고려 광종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낸 이언(李彦)을 시조로 받드는 성씨이다. 이언은 후에 함풍군(咸豊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함평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함평이씨 여수 입향조는 이지성(李枝盛)이다. 이지성은 선무랑을 지냈는데, 현종 때 순천에서 여수로 이거했다. 여수...
-
여수의 선박은 민가의 어선뿐만 아니라 전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예부터 여수가 어항이면서 조선 초기에 설진된 진례만호진·돌산포만호진·내례만호진, 성종 때 설진된 전라좌수영, 중종 때 설진된 방답첨사진의 관방이 있었고, 여수 근해에 풍부한 어장과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본격적으로 여객선이 운행된 것은 1950년대부터이며,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시...
-
전라남도 여수시 여서동에 있는 해양환경공단의 여수 지사. 해양환경공단 여수지사는 해양에 배출된 기름 등 폐기물에 대한 효율적인 방제와 그에 관한 교육훈련 및 기술개발을 통하여 방제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해양환경을 보전하고자 설립되었다. 1997년 4월 10일 해양오염방지법 개정으로 한국해양오염방제조합 설립 근거가 마련됨으로써 같은 해 11월 13일 특별 법인으로 출범하였다. 12월...
-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하다 귀국하여 조선을 서양에 소개한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1630~1692]은 우리나라를 최초로 서방에 소개한 인물로 네덜란드 호르큼 사람이다. 17세기 전반에 네덜란드는 열대 농작물과 동남아산 향료, 차, 칠기, 비단, 도자기, 면직물을 거래하려고, 인도나 일본, 대만 등지에 거래처를 둔 동인도회사(VOC)...
-
오후 늦을 무렵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하세동 경로당 옆을 유병길 할머니가 농기구를 유모차에 싣고 밀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시냐’고 물었더니 대뜸 ‘오늘도 밭에 가서 일해야 한다.’며 대답하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요즈음은 행상 안하시냐고 했더니 행상 안한 지가 몇 년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 오랜만에 뵈었는데 경로당에 가서 행상했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했더니...
-
1945년 해방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949년 6월 여수항의 개항이 선포되고, 같은 해 8월 여수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이 되어 여수시와 분리되었다. 1973년 여천군 돌산면 경호리가 여수시에 편입되어 경호동이 신설되었다. 1980년 12월 1일에 돌산면과 삼일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월 1일 여천지구 출장소가 여천시로 승격되었...
-
여수순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이라고도 부르는 여순사건은 제주4·3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 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지역을 점령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
-
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화장동은 ‘화산’과 ‘군장’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취하여 만들어진 이름으로, 1914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 관한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인 1789년의 『호구총수』에 ‘대통마을’만이 기록에 전하고 있다. 화산마을의 옛 이름은 ‘덕골’이었다. ‘덕골’이란 이름은 이 일대의 지형이 언덕 모양의 구릉이 있어서인데, 마을 이름을 한자화하면...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화태리에 있는 섬. 1580년경 돌산 신복에 살던 진주소씨 소영길이 처음으로 입도하여 거주하다가 광주로 이주, 일시 무인도가 되었다. 1610년경 고흥에서 밀양박씨 박경사가, 순천에서 김해김씨 김영진이, 소라에서 창원황씨 황동준이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섬 명칭에 대해서 전라남도에서 편찬한 『도서지』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돌산도에 이순신 장군이...
-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경제인. 후쿠나가 마사지로[福永政治郞, 1864~1935]는 여수 지역에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의 일환으로 고뢰농장[다카세농장]을 설립한 인물이다....
-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이 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 흥국사의 창건 배경은 『흥국사사적』의 “국사(보조국사 지눌)가 국리 민복을 위해 면벽 관심(面壁觀心) 및 심신 연마에 적합한 성지를 택해 가람을 건립하려고”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또한 흥국사, 곧 ‘나라의 흥륭을 기원하는 사찰’이라는 이름의 연유에 대해 “불법이 크게 일어날 도량이 될 것이니, 절...
-
전라남도 여수시 흥국사에 있는 조선 중기 불교 경전 및 의식문 등을 다량으로 인쇄하기 위해 제작된 목재 경판 일체. 불교는 삼국시대에 처음 들어온 이래 설법과 간경(刊經)으로 전파되었다. 설법은 승려가 직접 불법을 강설하는 것이며, 간경은 불법의 가르침을 책으로 간행하는 것이다. 초기의 간경은 사람이 직접 붓으로 썼다. 짧게는 수십자에서 길게는 수십만자의 불경을 일일이 사람의 손으...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의 흥국사 영취교 앞 천왕문 내 사천왕상. 사천왕상은 천왕문 안에 있다. 사천왕은 자신의 권능으로 악을 정화하고 선을 유도함으로써 정법의 유통과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제석천 수하의 무장들이다. 동방은 악신(惡神)과 건달파(乾達婆)를 권속으로 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남방은 귀신 구반다(鳩槃茶)를 권속으로 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이다. 서방은 룡족(龍族)...
-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당우. 흥국사 적묵당은 보살 대중방과 선방을 겸하는 공간이다 . 흥국사의 중심 공간으로 대웅전 오른쪽에 자리해 심검당과 마주 보고 있다. 「영취산 흥국사 적묵당 중창상량문(靈鷲山 興國寺 寂默堂 重創上樑文)」에 “……가경팔연계해오월이십이일술시상량벽택문인효암 충일근지(嘉慶八年癸亥五月二十二日戌時上樑碧澤門人孝庵充鎰謹誌).”라는 기록으로 보아 흥국사 적...
-
전라남도 여수시 안산동에 있는 상업방송 중계소. KBC(광주방송)가 전라남도 동부 지역까지 TV와 라디오 중계 서비스 권역을 넓히려는 일환으로 개소하였다. 1999년 12월 15일 KBC가 여수를 중심으로 순천시와 광양시 지역에 TV와 라디오 중계 시설을 갖추고 KBC 동부방송센터를 열었다. 당시 전라남도 동부 지역에는 KBS와 MBC가 독점적 위상을 보여 왔다. 그런 가운데 19...
-
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었던 KBS 산하 지역 방송국. KBS 여수방송국은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남해안 지역에 중앙방송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57년 10월 주파수 1,360kc, 250W 출력으로 첫 전파를 내보냄으로써 여수이동방송국을 시작하였다. 1961년 6월 각령 제22호로 지방 방송국으로 승격하였다. 1964년 9월 여수시 관문동 163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