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리
-
1876년 개항 이후,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나라에 최초의 근대적인 학교인 원산학사가 1883년 민중들의 손에 의해서 세워진 후, 대한제국은 근대 교육 제도를 받아들여 1896년 2월 「보조공립 소학교 규칙」을 공포하면서부터 제도적으로 근대 학교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05년을 전후해서 애국지사들은 ‘아는 것이 힘이다.’, ‘교육으로 민족의 보강을 이룩하고...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섬. 역사의 섬으로 알려진 거문도에는 예로부터 명망 있는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귤은(橘隱) 김류가 가장 많이 알려졌다. 1814년(순조 14)에 태어난 김류(金瀏)[1814~1884]는 과거를 보려고 한양으로 가던 도중 전라도 장성 땅에서 노사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학문에 감화되어 과거를 포기하고 문하생이 되었다고 한...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장촌마을에 있는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조개더미란 수렵·어로·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선사시대의 인류가 식료로 채집한 조개를 먹은 뒤 버린 껍질이 쌓여 이루어진 퇴적층 유적으로 패총(貝塚)이라고도 한다. 조개더미 안에는 조개 껍질 외에도 당시의 인류가 잡아먹은 동물이나 물고기의 뼈, 실생활에 사용되다가 버려진 토기·석기·골각기들, 일상생활에서 남겨진 재...
-
거문도(巨文島)라는 지명은 문자 그대로 ‘큰 학문이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거문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거문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삼도(三島)’라 불렸다. 그러다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불법으로 1885년부터 1887년까지 거문도를 점령한 거문도 사건 당시 청나라의 정여창(丁汝昌) 제독(提督)이 거문도에 자주 상륙하여 섬 주민과의 회...
-
봄은 온 산천이 다 풍요로운 계절이다. 그것은 계절과는 별로 관계가 없을 듯한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로부터 어촌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삼월삼짇날이 가까워지면 해삼도 꽃을 따먹으러 뭍으로 올라온다고 하였는데, 이 시절이면 해변가에서도 해삼을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조류도 초봄이 제철이다. 미역, 톳, 참가사리, ‘불둑’이라 부르는 붉은가사리, 참몰 등이 봄에 많이 나는 해...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질문과 대화가 있는 배움으로 삶의 원리를 발견하는 자주적인 학생, 실패와 성공을 고루 경험하며 삶을 도전하는 학생, 여유와 변화를 즐기며 삶의 즐거움을 나누는 건강한 학생, 공감과 나눔의 실천으로 삶을 함께 가꾸는 협력하는 학생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45년 11월 10일 거문국민학교로 문을 열었다. 1981년 3월 5일...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사회 개조의 수단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육은 내부의 자연적 성장의 힘과 외부 영향력과의 합력(合力)에 의하여 성립되는 인간 형성의 작용을 의미하며,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참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
-
개항기 지방관리이자 자선가. 삼산면 서도리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인동부사까지 지냈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서도리에 유배되어 살았다. 흉년이 들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섬 주민에게 백미 600석을 풀어 섬 주민들을 구한 자선가이다. 삼산면 서도리에서 김석옥(金錫玉)의 4남으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여 인동부사까지 지냈다. 재임 중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
-
김팽님[1929년생] 할머니는 서도리마을에 사는 해녀이다. 올해 나이 80세로 서도리의 건너편인 동도에서 태어나 인물 좋고 힘 좋은 남편을 만나 서도리에서 살아왔다. 아들 딸 7남매를 둔 김 할머니가 39세 때 남편은 복어를 잘못 먹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모두가 그만그만하던 7남매를 키우는 일은 할머니의 몫으로 남아, 해녀 일을 통해서 홀로 가르치고 키워서 결혼시키고...
-
서도마을의 돌담은 참 아름답다. 직선으로 가지런히 쌓여 있는가 하면 골목길의 천연스런 곡선미는 감탄을 자아낸다. 서도리에서 돌담을 제일 잘 쌓는 분을 추천하라고 하자 이구동성으로 이상수[남, 82]를 추천했다. 교회 밑에 산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방파제에 꽁치 낚시하러 갔다고 해서 발길을 돌려 방파제로 가던 길에서 이상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82세의 나이답지 않게 정정...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섬. 360여 년 전 추씨가 입도하여 정착하였으며, 거문도 내의 3개 도서 중 동쪽에 있는 섬이라 하여 동도라 부르게 되었다. 1885년 영국군이 거문도 점령시 포대를 만들었으며 그 흔적인 굴이 현재도 남아 있다. 본래는 삼도라 하였는데 거문도 사건 때 청나라의 정여창이 이곳에 왔다가 학문과 문장에 능한 사람들이 많음을 보고 놀랐다 하여 거문으...
-
가장 안전한 바람은 북풍(높하늬바람)으로서, 하늬바람이나 높하늬바람이 불면 지금 당장 파도가 치고 있어도 운항이 안전하다고 할 만큼 북풍은 섬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람이다. 이에 반해 가장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람은 마파람과 서마바람이다. 여름철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이들 바람은 높은 습도를 품고 있어 조업에 나가지 않더라도 끈적끈적하게 불어오는 더운 바람을 싫어한다. 다음은...
-
뱃골은 골짜기에 돌배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또는 배가 계곡 사이로 다니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함)이며, 뱃골 아래 바닷가는 삼호팔경(三湖八景) 중의 하나인 이곡명사(梨谷明沙)인 모래밭이다. 뱃골은 현재 서도리의 중심지인 돌팽이에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있었던 마을이다. 이곳을 일제는 비행장으로 사용하여 침략 전쟁의 전초기지로 활용했음을 서도 주민 이대춘[73세]은...
-
뽁쥐굴은 박쥐굴의 거문도 방언이다. 서도리의 북쪽 바다로 돌출된 사슴뿔을 닮은 녹산 해변에 있는 동굴로 해안의 큰 바위와 바위들이 엉키면서 만들어졌다. 거문도 팔경 중 하나인 ‘녹문노조(鹿門怒潮)’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녹산 지역을 서도리 사람들은 ‘녹쌔이’라고 한다. 녹쌔이 북쪽 해안에는 집채만한 크기의 바위들이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도서면(島嶼面).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은 고도(古島)·동도(東島)·서도(西島)의 3개 섬이 바다에 떠있는 산(山)과 같아서 삼산(三山)이라 칭하였다는 설과, 거문도(巨文島)·초도(草島)·손죽도(巽竹島)를 3개의 산으로 상징하여 삼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 1396년(태조 5) 흥양현[현재 고흥]에 속해 삼도라 부르고, 현재 면장직과 같은 풍헌(...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삼산면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여수군 삼산면사무소가 설치되었고, 1949년 여천군 삼산면사무소로 변경되었으며, 1965년 5월 초도출장소와 손죽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천시·여천군·여수시의 삼여통합으로 여수...
-
서도리의 경관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녹산이다. 그 녹산에는 돌담에 쌓여있는 독특한 형태의 묘들이 있다. 녹산의 끝 등대 바로 아래에 두 기(基)의 무덤이 있는데, 선략장군김공(宣略將軍金公)의 묘와 유인청주한씨(孺人淸州韓氏)의 묘이다. 이 두 묘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동자석이 있다. 동자석의 가슴에 새를 두 마리씩 안고 있는데 마치 화가인 샤갈(Marc Chaga...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와 덕촌리에 있는 섬. 360년 전 추씨가 입도하여 변촌리에 정착하였으며, 거문도 내의 3개 도서 중 서쪽의 섬이라 하여 서도라 부르게 되었다. 음달산(陰達山)[237m]·수월산(水越山)[128m] 등 기복이 큰 산지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남쪽 해안과 서쪽 해안의 일부에는 높은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지질은 마산암류, 약간의 중성화산...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거문도의 세 개의 섬 중에 가장 큰 섬인 서도가 서쪽에 있어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본래 전라좌수영에 딸린 거문도의 한 섬으로 1895년(고종 32)에 돌산군 삼산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촌을 서도리라 하여 여수(천)군에 편입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천군·여천시·여수시의 통합으로 새로운 여수시 삼산면이...
-
서도리 사람들의 생계 활동에서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확연하게 나뉜다. 농토가 별반 없고 농사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남자들은 농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밭작물을 중심으로 한 농사는 여성들의 영역이다. 그리고 고기잡이를 하거나 바다 일은 남자들의 영역으로 역할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서도리 남자들은 지게질을 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할 줄 모르는...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서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촌을 서도리라고 개칭하였다. 서도마을은 삼산면 소재지에서 4㎞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마을 뒤편에 망산(望山)이 자리한다. 서도리 서도마을 당산제의 신격에 대해서 제관 부부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은 당할머니 한 분으로 인식하고...
-
1976년 서도리 뒷개인 큰이기미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를 채취하던 임형래에 의해 오수전(五銖錢) 980점이 발견되었다. 이들 오수전은 대개 3종으로 구분된다. 즉, 천상횡문오수전(穿上橫文五銖錢 : 구멍 위에 가로무늬가 있는 오수전), 천하반성문전(穿下半星文錢 : 구멍 아래 반쪽 별 무늬가 있는 오수전), 무특징전(無特徵錢) 등이다. 이들 오수전은 주로 Ⅱ, Ⅲ 형식에 속하는 것으...
-
서도리는 1999년 3월 현재 총 151가구에 164세대, 인구 450명(남 212, 여 238)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이 중 농가가 49호, 어가가 47호, 농어겸업이 30호, 기타 25호이다. 수협에 가입되어 있는 어촌계원은 120명으로 서도리에 100명, 변촌에 20명이 살고 있다. 성씨로는 김해김씨 축은공파·도촌공파와 선산김씨가 많이 살고 있다. 김해김씨는 마을...
-
예조란 앞으로 다가올 일을 징조로써 예견하는 일이다. 서도마을에서 유행했던 예조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태가 좋지 않으면 비가 온다. ·까마귀가 울면 초상난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돼지꿈을 꾸면 돈이나 복이 들어온다 ·숭어가 뛰면 날이 궂다. ·저녁노을이 생기면 바람이 분다. ·정월 보름달이 왼쪽으로 기울면 시절이 좋고 오른쪽으로 기울면 좋지 않다...
-
“그날도 새벽 일찍 바다로 나가는 길이었어. 달이 남아서 밤이라도 밝았는데, ‘신지께여’ 있는 데서 달빛에 반사되는 뭔가를 보았지. 검게 보이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사람피부처럼 반짝였는데 아래는 고기처럼 생겼어! 무섭기도 했지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는데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그 뒤에도 멀찌감치서 한 번 더 본 적이 있었지. 거문도 사람은 ‘신지께’를 다 알아. ‘...
-
바닷가 마을의 돌담이야 대부분 비슷비슷하겠지만 서도리마을의 돌담은 유난히 높게 느껴진다. 바닷가의 돌담은 대개가 파도에 닳아서 모나지 않은 둥근 돌담이 많지만 서도리의 돌담은 네모반듯하게 깨어지는 이 지역 바윗돌의 특성 때문에 반듯반듯한 게 특징이다. 바람 때문에 높은 돌담은 쌓았지만 대문은 만들지 않았던 과거에는 동남쪽 무넹이가 바라다보이는 사립문 쪽을 바라보면 항상 선바위가 기...
-
서도리의 남서쪽에 있는 음달산[237m]에서 서쪽으로 500여 미터 해안으로 내려가면 ‘용내이’라고 부르는 바위언덕을 만나게 된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주변의 절벽 사이에 서쪽 바다로 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해발 22m의 낮은 언덕 위에는 작은 연못이 형성되어 있다. 80여 미터의 둘레에 6m의 깊이로 알려진 이 연못을 서도리 사람들은 ‘용물통’이라고 부르는데 ‘용내...
-
거북제를 지내는 장소는 서도 해상방파제이다. 거북제는 거문리와 죽촌 사이의 해상에서 풍어제가 끝난 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경부터 시작하는 용왕제를 마친 뒤 오후 2시 30분경부터 시작한다. 거북제를 지내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유래는 서도리 주민 이대춘[73세]이 어렸을 때 직접 구경하였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때는 1948년 음력 8월경 거북 한 마...
-
거문도 주민들은 항상 왜구들의 노략질로 인하여 불안에 떨면서 살고 있었다. 그때 육지로부터 오척 단구의 키가 작은 한 청년이 마을 앞 해안에 표류하여 왔다. 동네 사람들은 이 청년을 극진히 간호하여 살려 주었는데 이름이 ‘오돌이’라고 했다. 오돌이 총각은 힘이 대단히 세어 지금의 죽촌 소하천 돌다리도 그때 오돌이 총각이 혼자서 만들어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왜구들이...
-
햇볕이 따사로이 비추는 돌담 아래서 이귀순[73세, 거문도뱃노래 보존회장] 할아버지는 오늘도 삼치 낚시 준비가 한창이다.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삼치 낚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자 삼치 낚시의 도사답게 대답이 일사천리다. 겨울에 삼치 파시가 섰을 때는 세 섬(동도, 고도, 서도)을 배를 밟고 건너다녔을 정도로 굉장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삼치잡이 어선들이 몰려들었는데...
-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지형·지질 특성에 기반해 지적 호기심은 물론 경관적 심미감을 충족시켜 주는 관광. 여수 지역의 많은 도서들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해양관광 자원을 보유한 곳이 많은 데 비해 이를 지오투어리즘으로 활용하기 위한 지형·지질 경관자원의 발굴이나 관광 해설은 미비한 편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에 위치한 금오도의 지형·지질 경관자원을 조사한 결과 서부 해안의 경우 유송리...
-
서도리마을의 옛 이름은 ‘장작리(長作里)’ 또는 ‘장촌(長村)’이라 하였다. 장작리는 마을 앞 해변이 긴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진작지’라고 부르던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부르게 된 마을의 이름이다. 1899년 돌산군수 서병수가 편찬한 『여산지』에는 마을 이름을 장작리로 표기하고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실시된 행정구역 통폐합 시에는 마을 이름을 지금의 서...
-
멸치는 갈치와 마찬가지로 빛을 쫓아다니는 추광성(追光性) 어종(魚種)으로 서도리에서는 불을 밝혀 멸치 떼를 유도하여 포획한다. 챗배를 이용하여 멸치를 잡는 시기는 연중 음력 5월, 6월에 집중된다. 이때 밤마다 멸치를 잡기 위해 수십 척의 배가 호수와 같은 바다 가운데서 불을 밝힌 채 작업하는 광경은 육지에서 보면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어 또 하나의 홍국어화(紅國漁火)를 거문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