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린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 내동마을 사충사 터에 세워진 비. 사충사(四忠祠)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종군하다가 전사한 정철(丁哲), 정린(丁麟), 정춘(丁春), 정대수(丁大水)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847년(헌종 13)에 건립되었다. 이후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철거되었다가 1921년 여수 웅천동에 오충사(五忠祠)란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이에 192...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이순신과 압해정씨 창원맥의 4충신을 모신 사당. 사충사는 원래 가곡사(佳谷祠)라 하였다. 가곡사는 1847년(헌종 13)에 정재선(丁載璿)이 유림의 지원을 받아 정철(丁哲)에게 충절공(忠節公)이란 시호가 내려진 것을 기리기 위해 가곡마을에 세웠다. 통훈대부 행 종부사주부 정창협(丁昌夾)[1798~1875]이 상량문과 예성축문을 지어 21년간...
-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남해안 지방에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자 조선 조정에서는 비변사(備邊司)라는 합좌기관(合坐機關)을 설치하여 대비하기도 하였으나, 선조 때 조정 내부는 대체로 당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이(李珥)가 10만양병설을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정에서 각 도에 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성곽을 수...
-
조선 중기 창원정씨 여수 입향조이자 문신. 본관은 창원. 자는 덕혜(德惠), 호는 월천(月川). 상호군 정연방(丁衍邦)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진사 정자린(丁自麟)이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은 손자이며, 정대수(丁大水)는 증손자이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吏曹佐郞)까지 올랐으나 기묘사화 때 부당함을 상소했다가 받...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정계생의 신도비. 사충사에 봉안되어 있는 임진왜란 공신인 정철, 정린, 정춘, 정대수와 그의 부친 정계생의 가계와 신상을 살필 수 있는 비이다. 금석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故月川丁公歿三百餘年至哲宗壬戌에 始贈公吏曹參判하고 高宗甲子에 又加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判義禁府事弘文館直提學하니 於法에 得竪碑神道而後孫이 久以孱力未遑이러니 今其遺裔龍洙相...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여숙(余淑), 호는 용서(龍西). 사성공(司成公) 정득우(丁得雨)의 8세손이다. 증조부는 정계생, 조부는 통사랑 정순종(丁舜鍾),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한 정호인(丁灝仁)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전했던 정철(丁哲)·정린(丁麟)·정춘(丁春)의 종질(從姪)이다. 1580년(선조 13) 아버지를 여읜 정대수는...
-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정대수의 신도비. 정대수(丁大水)는 자는 여숙이고 호는 용서(龍西)며 1565년에 웅천 송현마을에서 증 호조참판 정호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대사성 정득우의 9대손이고 월천공 정계생의 증손으로 정철, 정춘, 정린의 종질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휘하의 별장으로서 노량해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진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취임을...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사명(士明), 호는 청은(靑隱). 성균관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원(丁舜元)이다. 임진왜란 당시 함께 참여했던 정린(丁麟)은 아우요, 정춘(丁春)은 종제(從弟), 정대수(丁大水)는 종질(從姪)이다.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였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창원. 자는 사화(士華), 호는 송암(松巖). 성균관 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반(丁舜班)이다. 임진왜란 때 함께 참여했던 정철(丁哲), 정린(丁麟)은 종형이고, 정대수(丁大水)는 종질이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가 1...
-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절대자를 믿고 숭배하는 일과 그 체계. 여수 지역에는 원시적인 무교(巫敎)에서부터 기독교·불교·유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가 분포되어 있다. 이 종교들은 때때로 지역민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졌을 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하고, 역사의 격변 속에서도 굳건한 정체성을 유지하게 하고, 개인의 인격과 도덕적 심성의 도야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여수에서는...
-
정연방을 시조로 하고 정계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알려져 있다. 정덕성은 853년(문성왕 15)에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로 귀양 와서 살았고,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장자 정열도(丁烈道)의 계손 정찬(丁贊)은 영광정씨(靈光丁氏), 그 아우 정관(丁寬)은 후창원정씨(後昌原丁氏), 차남 정응도(丁應道)의 계손 정윤종(丁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