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부 효천면에서 시작된 애양원의 역사는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04년 2월 목포선교부에서 광주선교부를 개설하기로 하고 벨 목사와 오기연 목사를 파송하였다. 1904년 12월 15일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사택 건축이 완료되었고, 1904년 12월 21일에 이사하게 되었다. 1904년 12월 25일 오전 11시 크리스마스...
광주에 있던 한센병 치료소의 환자 수가 600여 명에 이르자 1925년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산돌길 148] 신풍마을에 터를 닦고 애양원(愛養院)을 건립하였다. 애양원이란 이름에는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고 도우면서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 ‘사랑의 동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당시 돈 77,000원으로 논과 밭 40,000평을 확보하여 공사가...
윌슨(Robert M. Wilson) 의사의 한국 이름은 우월순이다. 우월순은 1907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본부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인준받았다. 1908년부터 2년간 1,5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였다. 우월순은 1909년 포사이트(Wiley H. Forsythe)가 데리고 온 여성 한센병 환자 치료를 계기로 애양원을 탄생시켰다. 1910년 한 해에 20,000 명이...
1907년 포사이트(Wiley H. Forsythe)와 더불어 나환자를 돌보던 오웬 선교사가 순회 전도 중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웬의 뒤를 이은 윌슨 선교사가 광주 봉선리에 작은 집을 지어 나환자 10명을 수용하였다. 애양원의 전신인 셈이다. 후에 최흥종과 신정식, 쉐핑과 윌슨 선교사가 모금을 해 나환자 600명을 여천군 율촌으로 옮기면서 애양원이 세워졌다. 유...
애양원과 관련된 마을들은 나환자 공동체로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초기엔 질병이 만연하여 의사인 선교사들만이 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피부병 등 일반 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국가 차원에서 해소할 수 없었다. 의료진의 절대적인 부족과 의약품의 상시적인 부족은 일제강점기에 더욱 극심하였다. 당시 선교사들은 질병의 가장 큰 요인으로 한국인들의 위생 관념 결핍을 꼽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