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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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士文 |
영어공식명칭 | Kim Sa-mun |
이칭/별칭 | 질부(質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수환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김사문(金士文)[1502~1549]은 영천군(榮川郡) 출신으로 1538년(중종 33) 문과에 급제한 이후 원주교수, 사간원정언, 형조좌랑, 울진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가계]
김사문의 본관은 예안(禮安)[선성(宣城)], 자는 질부(質夫)이다. 아버지는 증 승정원좌승지 김우(金佑), 어머니는 진사 권균(權均)의 딸 증 숙부인 안동권씨(安東權氏), 할아버지는 생원 김만칭(金萬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김담(金淡)[1416~1464]이다. 부인은 생원 장응세(張應世)의 딸 증 정부인 인동장씨(仁同張氏)이다.
[활동 사항]
김사문은 1528년(중종 23)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538년 알성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원주교수, 사간원정언, 형조좌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윤원형(尹元衡)[1503~1565]이 득세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자적하였는데, 권벌(權橃)[1478~1548]은 평소 이런 김사문에 대하여, “윤원형이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동년의 정의로 만나보려 했으나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그의 지조가 이와 같았다”라고 평가하였다. 김사문은 이황(李滉)[1501~1570]과 교유하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1549년(명종 4) 울진현령 재임 중 임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묘소]
김사문의 묘소는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오신동(梧申洞)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사문은 아들 김륵(金玏)[1540~1616]이 현달함에 따라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