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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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谷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신선로[죽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죽곡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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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죽곡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죽곡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4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죽곡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죽곡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남면 죽곡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죽곡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남면 죽곡리에서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죽곡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2.02㎢ |
가구수 | 98가구 |
인구[남여] | 196명[남 99명, 여 97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죽곡리(竹谷里)는 옛날 이 마을 앞 냇가에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죽천(竹川)이라 불렀다. ‘죽천’의 죽(竹)과 ‘계곡’의 곡(谷)이 합쳐 죽곡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죽곡은 죽천·건너골·절골·윗대내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죽천은 약 200여 년 전에 나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이곳을 개척했다고 한다. 건너골은 약 200년 전 정주선이라는 선비가 개척했다고 하며, 절골[寺谷]은 약 200년 전에 한 스님이 절을 짓고 불법을 전파하면서 마을이 생기고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절은 소실되면서 마을도 없어지고 이름만 절골로 남아 있다. 윗대내실[上竹谷]은 조선조 성종 때 황중신(黃仲信)이라는 선비가 이곳으로 피난 와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죽곡리는 1914년에 지곡면(知谷面)에 속하였고, 1934년 4월 1일 화북면이 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죽곡리는 기룡산(騎龍山)에서 남서 간으로 뻗은 산세가 갑자기 낮아져서 구릉을 이루고, 다시 이 구릉이 갈라져서 두 갈래로 계곡을 형성하였다. 남쪽으로 뻗은 산맥이라 북쪽은 높고 동쪽과 서쪽은 낮으며, 남쪽은 계곡이 되었다. 북쪽에서 발한 계곡천은 마을의 서쪽 산기슭을 흐르며 그 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현황]
죽곡리의 북쪽은 화북면, 동쪽은 임고면, 남쪽은 신호리, 서쪽은 사천리와 접한다. 자연 마을로는 죽천·건너골[월천(月川)]·절골[사곡]·위대내실[상죽곡] 등이 있다. 죽곡리의 면적은 12.02㎢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98가구, 196명으로, 남자가 99명, 여자가 97명이다.
2004년경에 익산 포항 고속 도로가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편입되기도 하였지만, 고속 도로 나들목이 바로 앞에 입지하여 교통 여건이 좋아져 도시인들의 전원 주택 및 산업 단지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