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
명곡, 명동마을은 행정지명이며, 속칭으로는 홈실마을로 부른다. 그리고 명동 바로 옆 마을 이름은 외홈마을이다. 명곡마을, 명동마을보다 왠지 정감이 가는 ‘홈실마을’. 이 이름은 과연 어떻게 유래되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열쇠는 명동(椧洞)의 ‘명(椧)’자에서 찾을 수 있다. 명(椧)은 우리말로 ‘홈’을 뜻한다. 농사를 지을 때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사용한 홈(椧)이 일제...
-
명동의 푸르고 넓은 논에는 한창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도시화가 되어 땅값이 올라도 이곳에서 농사가 계속 될 수 있는 이유는 관개시설이 잘 되어서 농사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동이 처음부터 관개 시설이 완벽하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관개 시설이 되기 전에는 이곳에서도 물이 없어 가뭄으로 인해 고생이 매우 많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명곡마을 이자무 이장님을 만나...
-
명곡마을을 감싸는 산 가운데 오른쪽 신인 백호에 해당되는 야트막한 능선이 있다. 부드럽게 마을을 남쪽으로 감싸 돌면서 평지로 잦아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산이지만 이곳에서 옛날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이곳이 일명 ‘명곡리 고분군’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주로 4~5세기의 토기류가 발굴되었다. 토기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용기이므로 당시에는 이...
-
명동마을에서는 이 지역이 공장용지, 택지용지 조성으로 급속히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농경지가 사라지고, 공장들과 집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농경지가 사라져 농사를 짓고 살아오던 어르신들이 일손을 놓게 되었다. 생활의 터전이 없어진 어르신들은 마을 경로당에 모여 농요도 부르고 옛 일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한번 즐기며 후대에 남기고자 하는 뜻이 모아져 60~8...
-
명동마을 사람들은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도 유독 친목이 뛰어나다. 또한 마을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그들이 이렇게 될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을 한 데 묶어주고 그들에게 자부심을 부여해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 모두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웅상농청장원놀이’가 있기 때문이다. 망시논매기라는 웅상의 전통 놀이를 명동마을에서 맡아하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잘...
-
살다보면 이름이 똑같거나 비슷하여 혼동하는 실수를 누구나 한번쯤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곳 명동마을 또한 이름이 비슷하여 생긴 일화가 있다. 명동마을이 ‘명곡’이라고 불렸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양산대학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에도 같은 지명이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느 명곡마을인지 잠시 당혹스러웠다.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소주동, 평산동, 서창동, 덕계동...
-
1998년 제30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웅상농청장원놀이는 2002년 4월 4일 경상남도 문화재(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언론과 대중매체는 많은 관심으로 이 놀이문화를 취재했다. 먼저 KBS의 현지(논) 녹화는 장원놀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양산의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힘이 되었다. 또한 SBS에서도 농경하는...
-
도시화되기 이전에 이곳 명동은 참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 회야강이 흐르고 대운산의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면서 마을 앞으로는 넓다란 논밭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참 살기 좋은 마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장님의 말에 따르면, 이곳 명동은 눈도 많이 안 오고 비도 많이 안 오고 바람, 태풍의 피해도 거의 없다고 한다. 다음은 이장님의 말씀이다. “여기는 참 좋은 게 눈도...
-
명동은 흥려박씨와 학성이씨가 어우러져 사는 집성촌이다. 명동마을의 이러한 내력을 보여주는 것이 흥려박씨 문중 사당인 귀후재이다. 이 사당의 구조는 콘크리트 목조건축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겹처마로 이루어져 있다.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집을 거쳐서 들어가야만 대문이 나온다. 정문에는 신덕문(愼德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신덕이...
-
마을의 내면의 알기 위해서는 그 마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봐야 한다. 마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마을의 역사가 된다. 명동마을은 60세대 정도의 식구들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 일까? “우리 마을에는 박씨가 30세대 정도 됩니더. 옛날에는 박씨가 더 많았는데 나가는 사람도 있고 해서 세대가 많이 줄었습니더. 그래도 아직까지는 박씨가 많은...
-
박극수(61). 시인이며 수필가인 그는 한마디로 명동의 정신을 기록을 통해 계승코자 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마을에서 제일 먼저 들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돈이 아까워 새참도 먹지 않았다. 소출이 적어 경작하지 않는 산답(山畓)을 소작으로 얻어 밤을 지새우며 죽도록 일해도 동생들 학비며 기본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벅찼다. 빚은 자꾸 늘어만 가고, 모든 걸...
-
명동에 위치한 양산가정폭력상담소(소장 홍혜숙)에서는 ‘아버지학교’를 개설하고 4월 29일부터 5월 27일까지 매주 화요일 5회에 걸쳐 교육을 실시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야 자녀가 행복해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이 교육은 아버지의 자아 이해, 배우자 이해, 자녀 이해, 가족체계 이해, 아버지 사명과 리더십 훈련으로 이루어졌...
-
이조기(1887~1983, 명곡 출생)는 홈실댁으로 불리워졌다. 명동 본마을 이름이 홈실인 것처럼 그이 일생에는 홈실 마을 사람들의 옛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며 홈실댁은 명곡에서 1887년에 출생하여 열다섯 살 되던 해 이웃한 백동마을의 26세의 늙은 총각(당시 평균 결혼연령 20세)에게 시집갔다. 그 시절 결혼은 당사자의 의사...
-
장이쌀 제도라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8월에 추수하고 다음해에 봄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배고픔에 시달리는 시절을 보내야만 하였다. 일명 보리고개라는 것이다. 가을 벼농사가 끝이 나면 보리를 심는다. 이듬해 4월쯤에는 장독에 쌀이 동이 났어도 보리를 수확하기까지는 한 달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곳간에는 먹을...
-
냉수 한 모금으로 입과 목을 축인 김필연(75) 할머니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벽면에 허리를 붙이고 “흠- 흠-”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는가 싶더니 금세 구성진 가락을 뽑아낸다. ▶ 면면히 이어져 오는 구성진 우리의 소리 “한강에 이 모를 부아 그 모찌기도 난감하네. 하늘에다 목화 심어 이 목화 따기도 난감하네. 만장 같은 이 모자리 장기판 만치 남었구나. 장기야 판은 있다마는 장기...
-
우리나라의 특징은 각기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방언, 즉 사투리이다. 지역마다 문화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지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사람의 이동이나, 물자,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명동마을도 지형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명곡리 고분군은 명동 북서쪽 7번 도로 울산 방향의 오른쪽 낮은 독립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의 인근에는 웅상초등학교가 있으며, 구릉 하단에는 웅상고철이라는 고철 수집소와 오뚜기 식품 공장이 있다. 유구의 양상은 지표 조사에서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 사면에 흩어져 드러난 할석, 석곽의 흔적, 토층 단면...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동은 가매소 북쪽에 있는 들을 칭하는데, 명곡마을이 처음 생긴 곳이다. 명곡마을에서 분리되면서 이름이 바뀌어 명동이 되었다. 삼한시대에 명동 지역은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西面)으로 명명...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수령 7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양산시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흔하게 자생한다. 높이 26m에 달하며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원줄기가 갈라지는 나무가 많고 나무껍질은 오랫동안 평활하지만 비늘처럼 떨어지면 껍질눈이 옆으로 발달한다. 높이 12m, 가슴 높이 둘레 5.85m, 지름 1.86m,...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동에서 분동되어서 명동1마을이라 칭했다. 명동1마을 지역은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이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될 때 양산군 웅상면으로 편입되었다.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명곡(椧谷)마을·외홈마을·소정(蘇亭)마을·남천(南川)마을·교동(校洞)마을을 병합하여 명곡리라 하였다. 2005년 1월 1일 명...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본래 명동이던 것이 명곡으로 개칭되었다가, 양산시 중앙동의 명곡동과 이름이 같아 다시 명동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이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될 때 양산군 웅상면으로 편입되었고,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명곡(椧谷)마을·외홈마을·소정(蘇亭)마을·남천(南川)마을·교동(校洞)마을을 병합하여 명곡리라 하...
-
농청장원놀이는 처음부터 명동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므로 어느 마을에도 이와 비슷한 놀이는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 놀이문화의 계승의식 여부에 따라 현재의 농청장원놀이가 재현되는 것이다. 양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양산의 여러 마을에서 농청장원놀이의 재현을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사람동원이나 재정 등의 이유로 계승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은 마을...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에 삼려·연호·용암의 일부를 병합하여 만든 마을로서 삼려의 ‘삼(三)’ 자와 연호의 ‘호(湖)’ 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
-
경상남도 양산시의 용당동·삼호동·명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에 공물을 관리하는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서창(西倉)이라 한데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서창동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서창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서창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관할 치안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 서창동 지역 치안의 제반 문제점을 극복하고 현장 대응 능력 강화 및 지역 사회 봉사 활동 등의 치안 서비스 기능을 보다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2003년 10월 15일 양산경찰서 산하 동부지구대가 신설되었다. 2004년 2월 9일 동부지구대에서 웅상지구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6년...
-
2006년 3월 “양산의 한 소리꾼이 세상을 하직했다.” 제하의 기사가 양산신문에 실렸다. 웅상농청장원놀이 논매기노래 기능보유자인 이유락(李有洛) 옹이 향년 86세를 일기로 하직하였음을 알리는 기사이다. 그는 1921년에 명곡리 512번지에서 출생하여 지난 2006년에 작고했다. 어려운 가정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같은 또래 친구들은 학교에 가는데 월사금 50전(당시 쌀...
-
경상남도 남동부에 위치한 시. 양산시는 동경 128°52′18″~129°07′57″, 북위 35°16′16″~35°31′44″에 위치하며, 동쪽과 남쪽은 부산광역시, 서쪽은 밀양시와 김해시, 북쪽은 울산광역시와 접하고 있다. 1996년 3월 1일 도농 통합 형태의 시(市)로 승격되었다. 양산시는 ‘자손대대로 살고 싶은 양산’ 이라는 구호 아래 양산시의 미래상으...
-
한창 먼지를 풀풀 날리며 공사가 진행 중인 화성 파크드림 아파트 건설 현장. 이렇게 명동마을에도 점점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아파트 건설현장을 지나면 산으로 오르는 작은 샛길이 하나 보인다. 마치 도시에서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 같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길은 바로 시명골로 가는 입구이다. 샛길 입구에는 시명사, 청룡사, 기원정사, 시명골 쉼터 등 각각...
-
김종순(55) 씨는 농청장원놀이가 1998년 제30회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할 때 부녀회장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감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내 누구한테 맞아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을 기다.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드라.(김종순, 명동마을 주민, 55세. 2008년 9월 3일)” 그녀는 명동에서 6년 째 웅상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선수...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아리 또는 주진이라 하였다. 주진마을의 지형이 배[船]형국이고, 땅에 나룻배의 닻을 맸다 하여 처음에는 선진(船津)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