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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충단 제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059
한자 義忠壇題詠
영어의미역 Attaches a Subject, Poem Recite in Uichungdan Alta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한시
작가 권순도|박천주
창작연도/발표연도 일제강점기

[정의]

일제강점기 권순도 등이 최익현을 추모하기 위해 의충단을 세우면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개설]

「의충단 제영(義忠壇 題詠)」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는 의충단에 대한 제영시로 칠언율시의 한시이다. 의충단은 일제강점기에 부산 지역에서 권순도 상점이라는 포목상을 차려 재산을 이룬 권순도가 만년에 고향인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로 돌아와 홍륭폭포의 들목 작실개울에 세운 면암 최익현의 추모소이다.

의충단의 돌에 새겨진 ‘춘추대의일월고충(春秋大義日月高忠)’이라는 문구는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옥사한 후 최익현의 영구(靈柩)를 덮은 비단에 쓰여 있던 글귀이다. 면암 최익현의 영구를 실은 배가 대마도를 떠나 초량에 정박하여 상륙했을 때 권순도김영규(金永圭)와 함께 영구를 옮기며 소리 내어 울면서 “이것은 대한의 배이고 대한의 땅이다.”라고 외치니 항구에 있던 남녀노소 만여 인이 모두 면암 최익현을 외쳐 부르며 호곡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관보」1913년 5월 28일자에 권순도가 양산공립보통학교 시설비를 기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를 전후하여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지역으로 옮겨 살면서 최익현의 충혼을 기리는 의충단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충단 제영」으로는 권순도와 박천주의 한시가 남아 있는데, 의충단을 설립한 배경과 최익현의 충혼에 대한 송찬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어 권순도 등이 의충단을 세우면서 낙성식 때 지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성]

칠언율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권순도와 박천주의 시가 동일한 운을 사용하고 있다.

[내용]

권순도「의충단 제영」을 살펴보면, 수련(首聯)에서 대의(大義)를 말한 것은 최익현이 대마도에서 옥사한 후 시신의 영구를 덮은 비단에 쓰여 있던 글귀인 ‘춘추대의일월고충’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문구는 의충단의 석명(石銘)으로도 쓰였는데 권순도는 이 문구로써 우국지사로서의 군자와 매국노인 소인은 걷는 길이 다름을 말하였다.

함련(頷聯)의 방미두점(防微杜漸)이란 사물의 좋지 못한 기미(機微)를 미리 틀어막고 더는 번지지 않도록 한다는 성어이고, 범안(犯顔)이란 임금의 면전에서 직언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1876년(고종 13)에 명성황후 일가인 여흥민씨 척족정권이 일본과의 통상을 논의하자 5개 조항으로 된 격렬한 척사소(斥邪疏)를 올려 조약체결의 불가함을 역설한 지부상소(持斧上疏: 도끼를 지니고 임금께 상소하는 것이다. 도끼를 지니는 것은 자신의 목을 치라는 뜻이니 이는 죽음을 각오한 상소를 뜻한다)를 가리킨다.

이 지부상소 때문에 최익현은 흑산도(黑山島)에 위리안치 되었다. 하늘이 무지개를 보냈다고 한 경련(頸聯)의 언급은 최익현의 영구를 실은 배가 초량항에 도착하였을 때 구름이 끼고 가랑비가 내리던 날씨에서 쌍무지개가 동남쪽으로 걸쳐 뜬 날씨로 변한 것을 말하는데, 이 사실은 송상도의 『기려수필(騎驢隨筆)』에도 나와 있다. 결련(結聯)의 ‘곡친귀래(哭櫬歸來)’라는 구절은 권순도김영규최익현의 관을 부여잡고 소리 내여 곡하는 모습을 말한다.

“선생의 대의는 우리 동국에서 천양되고 있나니/ 군자와 소인은 길이 같지 않음을 알겠도다/ 우뚝히 서 나라 위해 몸바쳐 충절의 혼백을 지녔으니/ 화란의 조짐을 막으려 임금께 직언하는 충성이라네/ 사적은 역사에 남고 꽃다운 이름 자부에 올릴 만하니/ 하늘이 무지개를 보내 상서로운 기운이 붉기도 하도다/ 널 앞에서 곡한 후 돌아와 단을 또 세우니/ 누가 다시 나라를 걱정하며 년풍(年豊)을 기원하리오(先生大義闡吾東/ 君子小人道不同/ 絶立殉身持忠魄/ 防微杜漸犯顔忠/ 事當竹帛芳名紫/ 天送虹霓瑞氣紅/ 哭櫬歸來壇又築/ 更誰憂國願年豊).”

[의의와 평가]

「의충단 제영」을 쓴 권순도는 부산세관 박물관의 이용득이 쓴 「구한말 해관장 딸의 러브스토리」라는 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권순도가 조선 말기 부산항의 헌트 해관장의 딸과 국경을 넘는 사랑을 나누었고, 그녀가 보내준 돈으로 재산을 모은 권순도가 고향으로 돌아와 최익현의 충혼을 기려 세운 것이 의충단이었다. 권순도「의충단 제영」은 이러한 관련 사료의 구체적인 근거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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