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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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日泳 |
영어공식명칭 | Kim Il-yeong |
이칭/별칭 | 경신(景辰),도재(陶齋)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규남 |
출생 시기/일시 | 1877년(고종 14) 9월 - 김일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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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32년 9월 - 김일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8년 - 김일영 추모비 건립 |
출생지 | 김일영 출생지 -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안덕원 |
거주|이주지 | 김일영 거주지 - 전주시 서서학동 남고산성 |
수학|강학지 | 김일영 강학지 - 전주군 삼례면 일원|안좌 사숙|마천서재 |
묘소|단소 | 김일영 묘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
사당|배향지 | 김일영 추모비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남계정 아래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자 |
본관 | 통천(通川) |
[정의]
근대 전라북도 완주군에 거주한 유학자.
[가계]
김일영(金日泳)[1877~1932]의 본관은 통천(通川)이고, 자는 경신(景辰), 호는 도재(陶齋)이다. 조선 중기 성균생원, 합천교도 남계(南溪) 김진(金瑱)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유학자 추파(秋波) 김종하(金鍾河)이고 할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선릉참봉(宣陵參奉) 김완균(金浣均)이다. 외할아버지는 전주류씨 류전(柳銓)이고, 장인은 전주이씨 이원교(李元敎)이다.
[활동 사항]
김일영은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했다. 조선 말기에 중추원의관에 추대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자 그동안 지은 시문을 모두 불사르고 전주 남고산성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은거 중에 태어난 딸이 아사한 후 무작정 군산을 향해 가던 중 당시 전주군 삼례면에서 유 선비의 도움으로 사숙(私塾)을 열어 마천리, 하리, 안좌리, 백두리 등지에서 유학과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전주에 사범학교를 세울 때 조선인 훈도(訓導)로 선생을 초빙하고자 했으나 한사코 거부했다. 1932년 임신년 9월에 별세했다. 그 후인 1988년에 제자들과 후손들이 남계정 아래에 선생의 추모비를 세웠다.
[학문과 저술]
김일영의 문집으로 『도재문집(陶齋文集)』이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다. 김일영의 문적과 필적은 대부분 유실한 것이 많고, 『도재문집』에 「붓」, 「거미」, 「피향정」, 「등변산」, 「마천서재원운」 등 한시가 다수 전하고 있다. 특히 「붓」이란 시에 ‘날카로운 붓을 깎아 유문에 올라/ 어두운 이 세상의 사표가 되었다./ 글을 쓸때는 너무 공을 서둘지 말라/ 노란색 치마를 입고 은혜는 늘 땅을 향해 베푸느니라/ 붓은 주머니 속에서 떠나야 뜻을 이루고/ 절개를 지킨 넋을 늘 간직하였다. / 아무리 뛰어난 문장이라도 결국 붓으로 쓴 글이니/ 늘 붓으로 표현하는 일만 알았지 반성할 줄 모르는구나’라고 읊었다. “붓은 주머니 속에서 떠나야 뜻을 이루고, 절개를 지킨 넋을 늘 간직하였다”라는 부분은 붓대가 가진 대나무의 성질을 곧 절개에 비유한 것이며, 부드러운 붓 속에 절개를 숨기고 있는 형태를 표현하고 있는데, 곧 글을 쓰는 서생으로서 절개를 지키는 선비를 표현하고 있다.
[묘소]
김일영의 묘소는 완주군 구이면 탑선리 모악산 중턱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8년에 김일영의 11대조 남계 김진이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에 세운 남계정 아래에 도재김선생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