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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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 |
영어공식명칭 | Jeonju Lee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선아 |
입향지 | 전주이씨 입향지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진읍|소양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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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이한(李翰) |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태종무열왕 10세손인 군윤(軍尹)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고, 통일신라 문성왕(文聖王)[재위 839~857] 때 사공(司空)을 지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한의 22세손이라고 하는데,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인 이안사(李安社) 이전의 사적(事蹟)은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성계의 가계가 역사상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은 1170년(의종 24)경부터이다. 무신의 난을 주도한 이의방(李義方)이 1174년(명종 4)에 피살되자 동생 이린(李隣)이 고향인 전주로 낙향했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이안사(李安社) 선계에서 갈라진 파와 그 이후 갈라진 파를 합해 모두 123파이다.
[입향 경위]
이엇금이 익산에서 화산면 미남으로 입향했다. 이엇금은 세종의 아들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의 후손이다. 이영은 영빈(令嬪) 진주강씨의 소생으로 1455년(단종 3)에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난 후 눈물로 옷깃을 적셨고, 1456년 상왕 단종이 무고를 받았다고 상소를 올렸다가 폐고되어 금산에 안치되었다. 1460년에 사사되어 익산에 장사를 지냈다. 1534년(중종 29)에 신원이 되어 관직을 회복하고, 1552년(명종 7) 양주에 다시 장사지냈다. 1735년(영조 11)에 충경(忠景)이라는 시호를 내려 표창했다.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이문환(李文煥)이 율곡리에 입향되었다. 정종의 11번째 아들 명선대부(明善大夫) 임성군(任城君) 이호생(李好生)의 후손으로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이정(李禎)이 양주에서 남면 명석리에 입향되었다.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 구(璆)의 후손 이광구(李光九)가 운동면 덕동으로 입향되었다. 병자호란 때 원종공신에 책봉된 효령대군의 8세손 이자(李資)의 증손자 이하령(李夏齡)이 와룡리에 입향되었다. 근영군 이농(李濃)의 후손 생원 이영(李英)이 임진왜란을 피해 소양에 입향했다. 태조의 아들 회안대군 이방간(李芳幹)이 봉동에서 귀양살이를 했는데, 이방간의 후손이 신성리(新成里)와 구만리(九萬里)에 세거하고 있다. 용진에는 덕원군의 현손 이종성(李宗性)이 초포 한사(草浦寒沙)에 정착했다가 용진으로 이거했다.
[현황]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의하면 완주군에는 전주이씨가 8,287명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