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1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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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蔘-傳說 |
영어의미역 | Legend of Wild Ginse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집필자 | 조은희 |
성격 | 신이담|효행담|요행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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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정모씨|장한상|여신|김모씨|노모|백발노인|임모씨 |
관련지명 | 울릉도|경주|저동 와달리|서면 남양리|서울 |
모티프 유형 | 여신을 협박하여 산삼을 얻음|개고기로 제사를 지내고 산삼을 얻음|산삼을 캔 후 지나친 욕심을 부려 망하게 되는 이야기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산삼과 관련된 세 가지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2007년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산삼은 아주 먼 옛날부터 불로장생의 약 또는 불사초 등으로 불렸으며, 그 약효는 실로 다른 약에 비할 바 못 되는 명약 중의 명약으로 자타(自他)가 이 약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울릉도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산삼이 유명하였으므로 개척령이 내리기 수백 년 전부터 섬에 몰래 들어와 산삼을 캐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옛날부터 역대 울릉도검찰사는 울릉도를 검찰할 때, 채약인(採藥人)들에게 산삼을 염가로 매수하거나 강제로 수탈하여 나라에 진상하여 승진하기도 하고, 파면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769년(영조 45) 10월에 인삼 상인이 본도에 잠입했다고 하며, 이로 인하여 같은 해 12월에 삼척부사 서노수(徐魯修)를 하옥하고 감사 홍명한(洪名漢)을 파면한 일도 있었다.
요새는 그 수가 줄어서인지 채취도 어려워져서 간혹 심어서 가꾼 인삼의 종자를 연차적으로 남몰래 산에 심어 두었다가 해마다 산삼이라고 속이고 고가로 팔기도 하고, 또 고가로 팔려다가 들통이 난 사례도 있다.
현재 학포와 마암의 중간 지점에 삼막골이 있으며 지금도 이 지명을 삼막이라고 한다. 당시 섬에 몰래 들어와 인삼을 캐던 사람들이 이 삼막에다 막을 치고 목욕재계하고 돼지 머리와 명태, 기타 제물을 바치고 산신제를 올리고 채삼(採蔘)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때 이 삼막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득삼현몽(得蔘現夢)이 있으면 반드시 산삼을 채취한다고 하였다. 목적은 삼을 캐는 데 있었지만 울릉도에는 섬시호, 쇠무릎, 맥문동(麥門冬), 전호(前胡), 독활(獨活) 등과 같은 각종 자생 약초가 많아 동시에 이 약초들도 채취하였다. 만약에 산삼을 캐면 팔자를 고친다고 하며, 산삼을 발견했을 때는 “산삼 봤다!”라고 세 번을 산천이 울리도록 외쳐야만 약효도 좋고 산삼이 달아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산삼에 얽힌 이야기 세 가지 중 첫 번째 이야기는 숙종조에 경주에 사는 정씨가 산삼을 캐려고 울릉도에 잠입하여 준비하여 온 여러 가지 제물을 삼막에 차려 놓고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산에 들어갔다. 여러 날 산천을 헤매었으나 산삼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수일간 반복되자, 정씨는 기진맥진한 동시에 식량도 없어지고 해서 육지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경주로 귀향한 정씨는 다음 해 또다시 울릉도에 잠입하여 채삼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기를 수삼 년하고 나니 가산도 탕진하고 일가족이 돌아다니며 걸식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나머지 가재를 긁어모아 마지막으로 울릉도에 잠입하게 되었다. 생사를 건 일이라서 그런지 저번보다는 더욱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고 채삼 길에 올랐으나 역시 산삼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죽으려고도 시도하였다.
이때 마침 삼척첨사겸울릉도검찰사인 장한상(張漢相)이 검찰차 울릉도에 왔다. 이를 안 정씨는 검찰사 앞에 나아가 간청을 하였다. 정씨는 검찰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한 후에 산신령이라도 검찰사의 명령은 거역할 수 없으니 산삼 한 뿌리를 주라고 명령서를 한 장 써 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검찰사는 정씨의 생각이 가소롭기는 하나 그럴듯하여 재미 삼아 명령서를 한 장 써 주었다. 정씨는 글을 써 준 검찰사에게 백배사례하고 돌아가서 명령서를 걸어 두고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그날 밤에 여신이 꿈에 나타나서[울릉도 성인봉의 산신은 여신이라고 한다] 당황한 기색으로 일생 동안 먹고 살 만큼의 산삼을 줄 테니 검찰사에게 가서 그 명령서를 거두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정씨는 여신이 시키는 대로 산삼을 채취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와달리에 김씨가 살았는데, 모친의 병환으로 산삼을 채취하고자 수 년 동안이나 공을 들였으나 산삼을 캐지 못하고 가산만 탕진하고 모친의 병환은 점점 심하게 되었다. 김씨는 이때까지는 산신제 때 돼지 머리 수십 두(頭)를 사용했는데도 산삼 한 뿌리를 캐지 못하자, 가증스러운 산신이 가장 싫어하는 개고기를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개 한 마리를 잡아서 제사상에 올렸다. 이날 밤 꿈에 백발노인[와달리 산신은 남신이라고 한다.]이 나타나서 무슨 고기인데 맛이 좋으냐며 너무 잘 먹었다고 하면서 소원대로 산삼 두 뿌리를 주겠다고 하였다. 김씨는 백발노인의 말대로 한 뿌리의 산삼으로는 노모의 병을 고치고, 나머지 한 뿌리는 팔아서 먹고살기에 넉넉하게 지냈다고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자유당 말기에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의 임씨가 하루는 낮잠을 자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산삼이 어느 고목 밑에 있으니 가서 채취하라고 하였다. 임씨는 반신반의한 상태로 꿈속의 노인이 말한 곳으로 가 보았더니 과연 수백 년 묵은 산삼이 있었다.
너무 기뻐 정성을 들여 채취하여 집으로 돌아온 임씨는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이것을 고위층에 바치면 한몫을 받을 것 같아 산삼을 가지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 간 임씨는 당시 국회의장이면서 우리나라의 제2인자인 이기붕(李起鵬)의 집을 방문했다. 임씨는 울릉도에서 수백 년 묵은 산삼을 채취하였는데, 의장 각하에게 바치러 왔다고 하였더니 집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임씨가 산삼을 내보이자, 통지할 때까지 어느 호텔에서 쉬라고 하였다. 임씨가 호텔에서 1개월 동안 대기하는 중에 전문가들이 모여 산삼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감정하였던 것이다. 진짜 산삼이라는 판정이 나자, 임씨에게 소원을 물었고, 임씨는 울릉군수가 소원이라고 하였더니, 가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울릉도에 와서 1개월도 채 못 되어서 4·19혁명이 일어나 자유당은 망하고 말았다. 임씨의 소원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모티프 분석]
「산삼에 대한 전설」의 세 이야기의 모티프는 간단하다. 첫 번째는 여신을 협박하여 산삼을 캐고, 두 번째는 개고기로 산신제를 지내고 산삼을 얻었으며, 세 번째는 욕심을 과하게 부려 망한다는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산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 다른 관점과 모티프를 사용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