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현재 매화장터는 매화면사무소가 위치한 매화1리 주변이다. 그러나 과거 매화장터는 현재의 매화1리가 아닌 매화마을 초입이었다. 이곳이 영조 이래 울진군 아래 매화면 일대에 많음 사람들이 모였던 5일장이 들어섰던 과거 장터임을 ‘구장터’라 불리는 지명으로도 유추될 수 있다. 5일장이 열리는 곳임과 동시에 면사무소가 매화1리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 면사무소가 있던 곳으로 1945년까...
-
1919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윤병관, 장식 등이 주도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의주·원산 등지에서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독립운동이 전개되자, 울진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1919년 4월 경상북도 울진군 원남면[현 매화면] 매화리 매화장터와 북면 부구리 흥부(興富)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일본제국주의는 1910년...
-
최필달·최흔봉·최문한을 시조로 하고 최복하·최운생·최두홍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강릉최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계통을 달리하는 고려초 삼중대광으로 개국공신이었던 최필달계, 고려 태조의 부마였던 최흔봉계, 고려 충숙황의 부마로 삼중대광에 오른 최문한계의 세 계통이 있다. 후손들은 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명주, 양양 지역에 세거하였는데,...
-
2003년 11월 11일에 방영된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 울진대게에 관한 부분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최상궁: 송이와 검은 해삼, 전복은 어찌 됐느냐? 금영: 이미 손질을 다 해둔 상태입니다. 헌데 상어지느러미가 없습니다. 최상군: 괜찮다. 대신에 울진에서 올라온 대게를 찢어 상어지느러미탕처럼 만들 것이다. 금영: 대게로요? 최상궁: 그래! 울진대게의 맛은 임금님도 경탄해 마지않으신...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고도가 높은 산지에서 이루어지는 농업. 400~1,000m 정도 높이의 고산 지역에서 여름철의 신선한 기후와 긴 일조 시간 및 많은 강우량을 이용하여 가축 사육이나 채소·감자·화훼류 등을 재배하는 농사를 말한다. 고랭지는 일반적으로 기온이 낮고 적설 기간이 긴 반면, 일조 시간이 길기 때문에 품종 개량은 물론 재배법을 개선하면 유리한 농업 경영이 이...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남아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支石]·묘역시설(墓域施設)·무덤방[墓室]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祭壇) 혹은 기...
-
경상북도 울진군에 소재하는 관동팔경 중의 망양정과 월송정. 울진은 경상북도 동쪽 최북단 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6만여 명이 사는 고장이다. 원래는 북쪽에는 울진군, 남쪽에는 평해군으로 다른 행정체제를 갖고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두 군을 합쳐 지금의 울진군이 되었다. 또 그동안 강원도에 속해오던 것을 1963년부터 경상북도로 옮겨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1952년 5월에 주지 김봉호(金鳳浩)가 창건하였다. 1955년 5월에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서 관음불상을 모셔와 봉안(奉安)하였다. 그 후 일본에서 대세지불상을 모셔와 봉불(奉佛)했다. 현재 신도 수는 약 200여 명 정도이고 대표는 승려 경율이다. 대웅전은 팔각지붕으...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서식하는 식물 군락. 경상북도의 식생 분포는 온대 혼합림에 속한다. 온대림 지대는 온대 남부·온대 중부·온대 북부 식생대로 세분되는데, 울진군은 온대 남부 식생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울진군은 위도상 온대 남부 식생대의 북쪽에 해당하여 남부 지역에서 널리 볼 수 있는 낙엽 활엽수림은 국지적으로 나타나고 대부분 침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울진...
-
경상북도 울진에서 개항기 이후 이루어진 건축물. 근대건축은 일본에 의한 강압적인 개항과 서구 열강과의 통상조약 이후 서구 문물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개항은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던 만큼, 최초의 근대건축물은 일본의 외교 공관이었다. 울진 지역의 근대건축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 이루어져 일본식 목조건물과 서양식 건조물이 많지만 여전히 한옥 양식도...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에 있는 광산. 금음광산의 전신인 일제강점기 때 삼율소보광산은 금음리 쇠골마을 뒷산에 있는 몰리브덴(Molybdenum, 輝水鉛石) 광산으로서 몰리브텐의 원석을 채굴하여 일본에 수출하던 곳이었다. 해방 후에 한보철강에서 인수하여 채광을 하다가 1982년에 폐광되어 채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폐광 후 광산은 한동안 방치되다가 몰리브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영(金琪榮)은 김건(金鍵)의 12세손이다. 1883년 5월 25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원업(金源業)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울진에서도 1919년 4월 13일 낮에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전병항(田炳恒), 남병표(南炳豹), 지장동(芝藏洞) 등 독립지사들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병두(金柄斗)는 김수로왕(金首露王)의 67세손으로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서 1897년 11월 6일 김창국(金昌國)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상해임시정부로부터 군자금 모금의 밀명을 받고 국내에 잠입하여 고향에서 상해임...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및 독립운동가. 김용욱(金容旭)은 신라 헌강왕(憲康王)의 39세손이다. 1869년 3월 6일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리에서 김이수(金履洙)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용욱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0월 7일 500명의 의병으로 기병하여 영덕군 서면[현 창수면] 불영사에 임시 사령부를 설치하고 일본군에 대항하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일수(金一壽)는 김건(金鍵)의 14세손으로 1878년 2월 19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형문(金炯文)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울진에서도 1919년 4월 13일 낮에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전병항(田炳恒), 남병표(南炳豹), 지장동(芝藏洞) 등 독립지사들이 일본...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수(金在壽)는 김건(金鍵)의 14세손으로, 1886년 10월 9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김형진(金炯振)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울진에서도 1919년 4월 13일 낮에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전병항(田炳恒), 남병표(南炳豹), 지장동(芝藏洞) 등 독립지사들이 일...
-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의 죽변항은 지나간 시간동안 포(浦)에서 진(津)으로 19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항구로 탈바꿈하면서 오늘날에는 동해안의 어업기지로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죽변의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기인되는 것일까. 『한국수산지』에는 죽변의 입지적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죽변의 용추갑은 높은 언덕을 정점으로 해서 북서쪽보다 남동쪽으로 뻗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여문(汝文), 호는 지산(芝山). 목사공(牧使公) 남회의 15세손으로 1888년 8월 27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서 남유익(南有翊)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남병표는 4월 13일 낮 울진군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동네 청년 전병항(田炳恒)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화중(和仲). 남윤의 후손으로 1908년 3월 6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상일(南相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복이는 1941년~1943년에 걸쳐 남석순(南石順), 남용식(南龍湜), 남원수(南源壽) 등 울진군 유생 22명과 비밀결사로 창유계(暢幽契)[일명 준향계·후란계·독서회]를 조직하고 상해임시정부에 조직원...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시걸(時傑), 호는 서산(西山). 중랑장(中郞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이자 남효영(南孝永)의 손자로서 1911년 1월 9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백연(南百秊)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3년 조선독립공작당사건과 울진적색농민조합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 중 극심한 고...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산. 옛날부터 명산이라 하여 기우제를 지낸 산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현소(玄蘇)라는 일본 고승을 밀파하여 산자수려한 명산의 정기를 쇠진시키기 위하여 남수산 상봉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 근년에 군사시설이 정상에 설치될 때 이 쇠말뚝을 뽑았다고 한다. 또 조선 명종 때 남사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중랑장(中郞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으로1915년 8월 14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남석화(南錫和)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용식은 1941~1943년에 걸쳐 남석순(南石順), 남복이(南福伊), 남원수(南源壽) 등 울진군 유생 22명과 비밀결사로 창유계(暢幽契)[일명 준향계·후란계·독서회]를 조직하고...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字)는 세종(世鍾), 호(號)는 서광(敍光). 중랑장(中郞將) 남영번(南永蕃)의 후손으로 1915년 2월 5일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서 남진만(南鎭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1~1943년에 걸쳐 남석순(南石順), 남용식(南龍湜), 남복이(南福伊) 등 울진군 유생 22명이 비밀결사로 창유계(暢幽契)[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한익(漢翊). 목사공(牧使公) 남회의 후손으로 1898년 2월 7일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마을에서 남병선(南炳旋)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재량은 애국지사 백운(白雲) 주진수(朱鎭洙)가 강학하던 매화면 매화리의 만흥학교(晩興學校)에 재학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에 3·1운동이 전개되자 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초(德初). 남윤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남용복(南容復)이다. 1941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몽룡(夢龍), 호는 창유(暢幽). 학산공(鶴山公) 노우명(盧佑命)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노종만(盧鍾萬)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
매년 추석을 전후로 한 가을이 되면 쿠릴해류와 쿠로시오해류가 동해상에 만나 동해는 풍부한 먹이와 급격한 수온변화 때문에 어군이 모여들어 좋은 어장을 이룬다. 특히 이때 찬 쿠릴해류를 따라 남하하는 어종으로 오징어가 있다. 베링해협 인근에서부터 남하를 시작하는 오징어는 우리나라 제주도 앞까지 남하한다. 남하를 하면서 점점 살을 찌우는 오징어는 동해상에서 가장 통통하게 살이 찌고 맛이...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에 있는 홍게와 붉은대게 제조업체. 1993년 해경수산을 창업하였으며, 1999년 5월 대정수산으로 법인을 설립하였다. 2003년 3월에는 경상북도 농수산물 수출탑을 수상하였으며, 2007년 1월에 중국에 OEM 공장을 설립하였다. 대정수산은 게살공장으로 붉은 대게살만 발라서 급속 냉동시킨 후 가공시키는 자연산 게살 납품 전문업체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 울진에서의 독립운동가는 크게 3·1운동, 청년운동, 신간회, 울진공작당, 창유계의 활동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시작된 후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것은 기존의 조선이 아닌 새로운 근대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
경상북도는 428㎞의 긴 연안과 천혜의 해양 환경을 자랑하는 동해안과 독도 주변 하이드레이트 해저 자원 등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건을 기회로 삼아 경상북도에서는 동해 바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동해안 해양개발 기본계획(Go Project)’을 발표하고 해양경북시대를 선언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내륙 중심의 개...
-
1905년 러일전쟁 중 울진의 고포 앞바다에서 일어난 러시아 군함과 일본 군함의 전투. 조선 지배를 선점하려던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후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일시 저지되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명성황후 민씨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단발령을 내리지만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함으로써 친러 정권이 수립된다. 그 결과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일본의 조선에 대한 이권...
-
남수산은 영양군의 일월산 지맥으로 이 지역에서는 가장 높고 웅장한 산이다. 마을에서는 주산으로 매화마을을 품에 안고 있는 형국이다. 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로 마을의 앞에는 매화천이 흐르며 매화들을 만들어내고 뒤쪽으로는 남수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은 남수산의 보호를 받으며, 매화들이 잘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주산임 만큼 산에 대한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고...
-
1919년 매화장터 만세사건 이후 일본인의 감시는 더욱 심해지고, 1943년 3월 조선독립공작당과 농민조합사건 이후에 독립운동은 침체기를 겪게 된다. 항일운동을 재기하기 위해 울진군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이 재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매화리에서 창유계 사건이 발발하였다. 창유계는 당시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학도병과 지원병, 보국대, 징용을 강요하고 물적으로는 식량을 위...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분야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작품. 문화예술은 한 집단이 살아온 자연환경, 역사, 종교 및 철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자연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종교는 예술의 주제나 형태미뿐만 아니라 그 지역 예술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울진군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울진의 문화예술은...
-
경상북도 울진 지역의 세계상과 인간상을 미적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전통시대 울진과 관련된 미술 중 울진 출신 작가의 작품은 전해지지 않지만, 울진의 풍경을 그려낸 타 지역 출신 작가의 작품은 다수 전해지고 있다. 특히 관동팔경 중 하나인 월송정을 그린 작품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겸재 정선이 1738년에 그린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의 11폭 중 1폭인 「월송정」...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리에 조성 중인 바다낚시공원. 바다낚시공원는 바다에서 낚시터, 어촌체험장, 체험선 운영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공원을 말한다. 바다낚시의 사례로는 일본의 다리식 낚시터인 낚시잔교, 프랑스의 전용선을 이용한 낚시 등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경기도가 도 차원에서 운영하는 낚시선 등이 있다. 주 5일 근무제 확대 등으로 해양관광 수요가 증가함에...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密陽). 이명은 박처사(朴處士). 낙촌(駱村) 박충원(朴忠元)의 13대손으로 아버지는 박영상(朴英相)이다.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고, 건릉참봉(建陵參奉)을 지냈다. 백암산에 입산하여 체력을 연마하고 수도하다가 1906년과 이듬해에 일제의 강압이 잇따르자 가족을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죽파(竹波)로 옮기게 한 뒤 사방에 격문을 돌려 3...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온천. 울진군 온정면 온정리에서는 백암온천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신라시대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쫓다가 날이 저물어 포기하였다. 그 이튿날 다시 사슴의 행방을 찾아 근처를 헤매던 중 사냥꾼은 상처를 치유한 사슴이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사냥꾼은 사슴이 누워 있던 자리에서 뜨거...
-
1895년과 1896년에 울진과 영해의 유진소에 침입한 왜군을 사살한 사건.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그 결과 청·일 양국 간에는 마관조약(馬關條約)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부인함으로써 조선에서의 우위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함께 일본의 요동반도 점령이 동양 평화에 해롭다는 구실을 붙여 반환을 요구하는 삼국간섭(三國...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증산교 계통의 신종교. 보천교(普天敎)는 전라북도 정읍 출신인 차경석(車京錫)이 강일순(姜一淳)이 주창한 증산교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이 주창한 것으로 처음에는 선도교(仙道敎)로 명명하였으나 1922년경에 보천교로 개칭하였다. 후천개벽을 기본 교리로 하여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염원하는 것을 주된 이념 체계로 삼았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
함경남도 홍원군 삼오면 삼성리가 고향인 황종덕은 전쟁이 터지면서 서른살에 죽변으로 온 그는 부산에서도 거제도에서도 살다가 서른네살에 죽변에 정착하였다. 북한에서 결혼하여 다섯살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군대를 갔다. 나이가 많아서 군대에 면제가 될 줄 알았는데 군대에 가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당시 2기생으로 일본인의 손에 이끌려 군대에 갔다. 함경북도 회령으로...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 황화실에 있는 일제강점기 불교 경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으로 1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전은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나라마다 유통본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유통본은 대부분 『불설대보부모은중경...
-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 명부전(冥府殿)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석조 지장보살삼존상. 지장보살은 인도에서 4세기경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중국·한국·일본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매우 널리 숭배되어온 보살이다. 형상은 삭발한 승려의 모습이거나 두건을 쓴 모습이며, 머리 뒤에는 서광이 빛나고 두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한 손에는 지옥의 문...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게살 제품 생산 공장. 삼홍실업주식회사가 동해안의 청정 해역인 후포항 해역에서 어획한 신선한 붉은대게를 가공하여 냉동식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삼홍실업 후포공장을 설립하였다. 1985년 2월 수산물 가공 및 판매업을 목적으로 서울시 서초구에 삼홍실업주식회사 법인을 설립하였다. 같은 해 4월 1일에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삼홍...
-
1970년 이전까지 송이는 보통의 산나물과 마찬가지로 계절에 따른 식용 가능한 버섯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으로 수출이 급증하면서 송이의 가치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로 인한 수요급증은 송이 가격을 상승시켰고 산촌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송이 수요의 급증은 송이산의 가치를 급증시켰는데, 마을의 경우 공동소유의 산에서는 대여 또는 마을의 산림계에서 공동으로 관리를 하...
-
경상북도 울진군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 식물상은 하나의 행정구역을 단위로 조사되는데, 국가나 대륙 등의 큰 규모에서부터 도·시·군 또는 산 등의 작은 교목에 이르기까지 조사 범위가 다양하다. 특히 소규모의 식물상을 지역 식물상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울진군은 산림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85.9%로 식생의 대부분이 소나무림으로 구성되었다. 대표 수종...
-
과거부터 울진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선인들은 ‘등허리 긁어서 안 닿는 곳’이라는 말로 찾아가기 힘든 울진을 표현하였다. 국도 7호선은 지리적으로 오지에 위치한 울진을 연결하는 주요한 연결 도로이다. 경상북도의 동북단이라는 위치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동해안의 남쪽과 북쪽을 잇는 주요한 연결망인 국도 7호선의 중심점에 울진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국도 7호선은 동해안의 도시...
-
1907년 일본인 이주촌이 생긴 죽변은 울진군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각종 공공시설이 일찍 들어섰다. 항만시설은 물론이며 전기, 상하수도 등과 함께 어업에 관련된 현대적 장비들이 등장하였다. 일본 시마네현 어민이 울진으로 집단적으로 이주하는 1920년대에는 1880년대부터 일본에 도입된 서구의 선박과 새 기술을 도입한 현대화된 어선들이 대거 유입되었으며, 죽변에는 당시 원주민들이 사...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휘는 용관(鎔觀), 자는 국사(菊史), 호는 만오(晩晤).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의 24대손이다. 아버지는 안항선(安恒善), 어머니는 장감호(張甘湖)이다. 『농민삼천리(農民三千里)』 등의 잡지를 펴내어 농촌 계몽에 힘썼다. 또한 일본제국주의를 응징하고자 동지를 모아 국권 회복을 주창하며 은밀히 동분서...
-
1986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건립된 안용관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비. 안용관의 독립운동이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아 1983년 8월 30일 애국지사로 추서되어 포상이 있었고, 1984년 10월에는 국가의 지원으로 묘역이 정비되었다. 이러한 안용관의 애국심을 기리고, 후세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자 지역 인사들이 안용관 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성금을 모아 19...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경상북도 최동북단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봉화군과 영양군, 남쪽은 영덕군,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와 접한다. 경상북도 23개 시·군 중에서 8번째로 면적이 크다. 지금의 울진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하여도 북쪽의 울진 지역과 남쪽의 평해 지역으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행정 체계로 되어 있...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에 있는 수령 25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10월에 익는다. 산기...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10월에 익는다. 산기...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수령 4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10월에 익는다. 산기...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있는 수령 300년의 소나무. 소나무는 겉씨식물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 교목으로 높이 35m, 지름 1.8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 피고, 열매는 이듬해 9~10월에 익는다. 겨울눈은 적색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북동부, 우수리,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화분은 송홧가루를 만들어 다식을 만들 때 섞으며 속껍질은 우려내어 송기...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수령 10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10월에 익는다. 산기...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수령 200년의 팽나무. 팽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달주나무, 매태나무, 평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20m, 지름 1m까지 자란다. 줄기가 곧게 서서 자라며, 가지가 넓게 퍼진다. 꽃은 5월에 수꽃이 취산꽃차례로 달리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단맛이 나는데 10월에 등황색으로 익는다. 인가 근처의 평...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수령 25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한다.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란다. 굵은 가지가 갈라지며,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나무껍질이 비늘처럼 떨어진다. 꽃은 5월에 취산꽃차례를 이루며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를 맺으며 10월에 익는다. 산기...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생산되는 골뱅이. 울진골뱅이는 회색빛이 나는 흰색을 띠며 원뿔 모양으로, 총 7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 부분은 반원 모양이며, 가장 아래쪽 3~4개의 층은 흑갈색 껍데기로 덮여 있다. 안쪽 면은 흰색이며 물이 들어오는 수관부는 짧으며 열려 있다. 뚜껑은 각질의 타원 모양이다. 수심 70~500m에 서식하며, 한국과 일본 해역에 분포한다. 울...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삼율리에 있는 문화시설. 울진군민의 문화예술생활 참여를 높이기 위해 2005년 12월 착공식을 가지고 약 95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2년 동안 공사가 진행되었다. 공사가 진행되던 중 지역 주민들의 부실시공 의혹에 따라 1월 11일부터 22일까지 (주)예우구조안전기술원이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지상 1층 원형기둥의 기울기와 휨 현상이 발생했...
-
울진교육사에 의하면 울진군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학교는 1907년 매화2리에 생긴 만흥학교를 시작으로 1908년 4월 사동리에 대흥학교가 세워지고, 1908년 8월 읍내리 향교에 동명학교, 1909년 3월 평해리 향교에 평명학교, 1922년 4월 제동학교가 설립되었다고 전한다. 그 중 만흥학교는 1907년 가장 먼저 설립된 울진의 근대교육기관으로 1910년 일본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지역에서 백암의 게르마늄을 이용하여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쌀.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의 온정농협이 생산하는 울진백암게르마늄쌀은 농협이 생산을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자금을 지원하여 지역 특산물로 개발한 쌀이다. 게르마늄에는 유기성 게르마늄과 무기성 게르마늄이 있는데, 무기성 게르마늄은 복용할 수 없지만 체외에 부착하거나 살갗에 닿게 하...
-
경상북도 울진군의 연근해역에서 서식하는 십각목 장미아목에 속하는 한해성 절지동물. 울진새우는 우리나라 동해뿐만 아니라 북미의 대서양 연안과 태평양 연해, 베링해, 캄차카, 오호츠크해, 일본 홋카이도, 토야마만 이북의 동해 연안 등지에서도 분포하는 한해성(寒海性) 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울진과 주문진, 구룡포 연안에 주로 출현한다. 주로 트롤과 기선저인망으로 어획되며, 동...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생산되는 두족류 십완목(十腕目)에 속하는 연체동물. 울진오징어는 맑은 동해에서 잡는 즉시 배 위에서 건조하여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타우린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울진의 특산물로, 『동의보감』에는 오징어의 살이 기(氣)를 보호한다고 적고 있다. 울진오징어의 살에는 우리의 주식인 쌀 등 곡류에 부족한 라이신과 트레오닌, 트립토판 같...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 있는 등대. 죽변등대는 1907년 일본군이 러시아군의 침략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프랑스인이 설계하였으며, 1910년 11월 24일 최초로 점등되었다. 죽변등대 내부 천정에는 원래 대한제국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폭...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울진향교에서 음력 2월과 8월에 유학의 사성·십철·칠십이현에게 제사지내는 의식. 울진향교 석전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음력으로 매달 첫째 정(丁)이 드는 날]에 울진향교 문묘에서 사성(四聖)·십철(十哲)·칠십이현(七十二賢)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또한, 선현과 선사들의 학문과 인격, 덕행과 사상을 단순히...
-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서식하는 오리과에 속한 새. 몸길이는 수컷 48㎝, 암컷 41㎝ 정도이다. 수컷은 붉은색의 댕기와 보라색 가슴, 노란색 배, 주황색 부채형 날개깃으로 매우 아름다운 새이다. 암컷은 갈색과 회색으로 어우러진 깃으로 덮여 있다. 4~7월 한배에 7~12개의 알을 낳는다. 알 품는 기간은 28~30일간이다. 먹이는 도토리를 비롯한 나무열매를 즐겨 먹지만 달...
-
1907년에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벌어진 원주진위대와 일본군 간의 전투. 1907년 일본이 조선 군대의 해산령을 내리자, 그 해 8월 이에 불복한 원주진위대는 민긍호(閔肯鎬) 특무의 인솔하에 일본군경과 항전하였다. 선봉대는 제천에서의 일본 병사와 교전, 단양에서의 일병과의 격전, 다시 영동의 의병과 합세하기 위해 9월 울진으로 오는 도중 봉화 각화사(覺華寺)에서 일본군과 충돌...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수군 병영진지. 월송포진은 문헌 사료에 "평해군의 동(북) 7리의 거리에 돌로 만든 수군 진이 있었다. 높이는 6(7)척, 둘레는 628(489)척이다. 만호(萬戶) 1인과 수군 400명 정도가 주둔하였는데, 전선(戰船)은 없고 바다쪽의 왜구를 막기 위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호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무관직(...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영팔(永八).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병훈(尹炳勳)이다. 1940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군칠(君七). 윤응수(尹應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상혁(尹商赫)이다. 한문을 수학하다가 일제의 침략이 거세어지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1933년 8월 귀국하여 울진에서 전영경(田永璟), 진기열(陣基烈), 최학소(崔學韶)를 비롯한 여러 동지를 모아 군자금을 마련하고 조선독립공작당 조직을 주도하였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 야성군(野城君) 윤혁(尹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윤석현(尹錫賢)이다. 1941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
-
1876년에서 1910년 사이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운동. 한말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화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광범하게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사회경제적 이해 관계, 운동의 방법에 따라 의병항쟁(義兵抗爭)과 계몽운동(啓蒙運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병항쟁은 반일(反日)적인 입장에 있던 모든 세력이 모여 계급 연합적인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성순(聖順). 전서공(典書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용(李錫龍)이다. 1941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죽기로 작정하고 식음을 전폐하였으나 훗날에 큰일을 도모할 생각을 하고 3일 만에 다시 밥상을 대하였다. 1920년 물가의 하락을 목적으로 “외국품은 물론 일제의 생산품도 구매하지 말자”는 내용의 일본 물품 배척 포고문을 온정리(溫井里) 일대에 게시하였다. 이 사건으로 온정주재소에 구금되었다가 울진...
-
1977년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 건립된 독립운동가 이목익·이화익 형제를 기리는 비. 온정면 소태리 하암동(河岩洞) 태생인 이목익(李穆翊)은 품성이 강직하여 비리에 굴하지 않으며 편안하고 검소한 성품을 가졌다. 특히 외래품을 적극 배제하였으며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통탄하여 음식을 전폐하고 충(忠)으로 죽기를 작정하였으나, 아들과 조카들이 음식을 권하기...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우계(羽溪). 이명(異名)은 경학(敬學), 자는 동하(東廈). 백인당(百忍堂) 이장달(李章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이태진(李泰鎭)이다. 1906년(대한제국 고종 10)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의병장 신돌석(申乭石)이 영덕과 울진에서 의병을 일으켰을 때 군령장(軍令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순종 1) 2...
-
죽변에 일본인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883년 재선국일본인민통상상정(在朝鮮國日本人民通商章程)이 체결되면서 일본인의 출어가 합법화되고, 1889년 조선·일본양국통어장정(朝鮮日本兩國通漁章程)의 체결로 일본인의 자유로운 통어가 권장되면서 본격화되었다. 1908년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고 어업법이 제정된 후에는 일본인의 수산업 참여가 더욱 활발해지는데, 이는 협정과 어업법의 내...
-
1910부터 1945년까지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1910년 8월 22일 이른바 「한국병합(韓國倂合)에 관한 조약(條約)」을 강제 조인한 일제는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이를 공포함으로써 식민 통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였다. 9월 30일자로 조선총독부 관제와 조선총독부 중추원 관제 등 통치 기구에 관한 일련의 관제와 동시에 칙령 제357호로 조선총독부 지방관 관제를 공포하면서 지방...
-
1911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일제가 강요한 상복[蒙服] 입기를 거부하여 일어난 저항운동. 일제는 1910년 국권 강탈 후 무단 통치를 펼쳐 한국인을 탄압하고 일본의 의식과 풍습을 강요하였다. 1911년 7월 일본의 메이지[明治] 왕이 죽자 울진의 헌병 분대장 구야감(久也勘)이 몽복을 강요하므로 남대연(南大秊), 남진영(南軫永) 등 유생들이 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하여 저항운동을 벌...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석중(錫仲). 전리판서(典理判書) 장양수(張良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장영달(張永達)이다. 1938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준향계(準香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준향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인경(仁卿). 전리판서공(典理判書公) 장양수(張良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장석한(張錫漢)이다. 1940년 울진 지역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창유계는 계모임의 형식을 띠면서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해산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종교인 및 교육자. 본관은 울진. 자는 택현(宅顯). 장한명(張漢鳴)의 후손으로 극담(極膽) 장표(張杓)의 아들이다. 장인환(張仁煥)은 일찍이 한문을 수학해 학문이 높았다. 강릉교회 전도사로 동해안 일대에 20여 개의 교회를 설립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였고, 사유지를 제공해 정명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야학을 설립해 문맹 퇴치에 진력하였...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 본관은 울진(蔚珍). 이명은 군칠(君七). 장말익(張末翼)의 24세손으로 아버지는 장사묵이다. 1882년 일본 어선 5척이 죽변 앞바다에 들어와 불법으로 해삼을 잡자 울진유진소에서 명령을 받은 중군장 최재린이 포병 50명을 이끌고 죽변곶 죽림에서 잠복하였다. 어선 3척이 죽변항에 상륙하려 하자 포병들이 사격을 가하여 일본인 31명을 사살하였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울진(蔚珍). 족보명은 장헌태(張憲兌)이다. 아버지는 일선공(一仙公) 장식(張植)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 교외생으로 학업에 힘쓰다가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행곡실행농민조합을 조직하여 농촌 운동을 벌이는 한편 야학과 독서회의 책임자로 계몽 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1934년 11월 울진적색농민조합 사건으로 울진경찰서에 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족보명은 전도수이다.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병학(田炳學)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전만수도 동지들과...
-
일제강점기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찬옥(瓚玉).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무풍(田武豊)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전병찬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건립된 조선 말기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 전씨형제 효자비는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화구마을의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이다. 전술모의 자(字)는 문칙(文則)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사서(沙西) 전식(全湜)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전종복(全宗復)이다. 전술모는 경전과 역사책에 능하고 글을 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범서(範瑞). 전범수(田範秀)라고도 한다.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전치주(田穉周)이다. 1933년 울진적색농민조합 사건에 연루되어 1년 동안 구류되었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기독교 종교인. 본관은 담양(潭陽).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晉)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전창복(田昌福)이며, 아버지는 전달용(田達龍)이다. 전치규는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0년 기독교인이 된 뒤 원산으로 가서 캐나다인 침례교 선교사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밑에서 6년간 성경 공부를 하였다. 이 기간에 『신약...
-
조선 왕실은 자녀가 태어나면 태실(胎室)을 조성하여 태(胎)를 땅속에 묻었다. 이때 땅 속에 뚜껑을 갖춘 돌로 만든 태함(胎函)을 마련하고 그 안에 태를 담은 백자 항아리와 생년월일 및 태를 묻는 날을 새긴 태지석(胎誌石) 등도 함께 묻었다. 태실 앞에는 태비(胎碑)를 새웠으며, 태봉산을 지키는 사람을 두었고, 태봉의 둘레 일정 구역을 함부로 범하지 못하도록 금표(禁標)...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호는 자운(紫雲). 교수(敎授) 주세창(朱世昌)의 후손이다. 1910년 한일 병합이 되자 만주로 가서 독립군에 가담하여 국경에서 일본 헌병을 사살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였다. 1919년 3·1운동 뒤에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권총을 감추고 서울로 돌아와 을사오적을 암살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재판에서 8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달천(達天). 주의신(朱毅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주병룡(朱秉龍)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주영석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주희(朱喜)의 32대손이며, 충효당 주경안(朱景顔)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주병온(朱秉溫)이고, 아버지는 주진해(朱鎭楷)이다. 일찍이 한학을 수학하였다. 1933년 비밀결사인 울진공작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34년 2월 10일 일본 경찰에 주유만을 비롯한 106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주동자 14명 중 한 사람으로...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신안(新安). 이우당(二友堂) 주개신(朱介臣)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주병례(朱秉禮)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주진욱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대구...
-
제주도 잠녀가 이곳에 오기까지는 한국사의 대외적인 사실과 연결된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제주 지역에 일본인의 출입이 잦아진다. 당시 일본은 자본주의에 따른 근대공업의 발전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가까운 제주도에서 유출하였다. 인구의 감소와 함께 일본 연안의 해산물 감소에 따른 제주도 해산물 수요의 증가에 의해 나잠업을 하는 인구가 급격하게...
-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 계곡 일원에서 서식하는 쌍떡잎식물 쥐방울덩굴목 쥐방울덩굴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 덩굴성 식물로 가는 줄기가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간다. 줄기는 길이 1.5m이며 털이 없고 회백색이다. 잎은 4~10㎝이며 어긋나고 심장 모양 또는 넓은 달걀 모양의 심장형이며, 끝이 둥글거나 둔하다. 잎자루는 길이 3~5㎝이다. 꽃은 7~8월 잎겨드랑이에 길이 1~...
-
일제강점기 울진 지역에서 조직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 창유계는 일제강점기 후반 울진적색농민조합이 해체된 이후 이 조합의 주도적 인물이었던 최학소, 전원강(田元江), 남왈기(南曰紀), 남원수(南源壽) 등이 이전의 적색농민조합운동을 계승하고자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1939년 조직했던 계 조직 형태의 비밀결사이다. 계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함과 더불어 일제의 패망과...
-
경상북도 울진군민들의 체력과 정신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한 일련의 육체적인 활동. 울진군에서 체육활동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먼저 소개되었고, 각급 학교 교육을 통해 보급되었다. 이후 청년회 운동부 등의 민간단체가 결성되었고, 이것이 향후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울진의 체육 활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00년대 이후 선교사...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창해(滄海). 참판(參判) 수헌공(睡軒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초(素樵) 최대순(崔大淳)이다. 어려서 한학을 익혔으며, 1909년(순종 3) 13세 때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개최된 시회(詩會)에 참가하여 장원을 하였다. 1911년 당시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탐...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문신. 1283년(충렬왕 9)에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洲君) 최한주(崔漢住)도 종군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해 바다에서 뜻밖의 회오리바람을 만나 쇠닻이 바위틈에 걸려 닻줄이 끊어지려 하자 최한주가 향을 피우면서 하늘에 아뢰기를 “이 한 몸을 희생하여 여럿의 목숨을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다. 최한주는 쇠망치와 ‘정...
-
1971년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연지리에 최한주의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비. 1283년(충열왕 9)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주군(溟州君) 최한주(崔漢柱)가 종군(從軍)하게 되었다. 동해에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있던 배의 닻이 바위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최한주가 물속에 들어가 닻을 빼내 배가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최한주가 물 위로 올라와 보니 배는...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현기(鉉琪), 호는 여지(汝智).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후손이다. 1939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최황순도 동지들과 함께 체...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 사간공(司諫公) 최복하(崔卜河)의 19대손으로 아버지는 최현한(崔鉉漢)이다. 1938년 울진 출신의 인물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준향계(準香契)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43년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이때 102명이 체포되고 그 중 22명이 송치되어 16명이 희생되었는데, 최효대도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당(堂). 충효당에 봉안된 효자 주경안은 20세 때 부친이 학질에 걸려 중태에 빠지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서 마시게 하였고, 나이 60세 때 노부(老父)가 종기로 오랫동안 고생하자 엄동설한에 기도를 올려 지렁이를 구해 즙을 만들어 종기에 발라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석단(石壇)...
-
경상북도 울진군의 충신·효자와 효부·열녀. 예로부터 사회의 기본 윤리로 존중되던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을 가리킨다. 신라시대부터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에 정문과 정려를 세워 포장하였는데, 고려시대를 거쳐 유교적 교화를 강화하였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확장되었다. 울진 지역에서도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이 많다....
-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삼근2리에서 통고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통고산사의 무쇠 말터」는 금강송면 삼근2리의 꽃방마을에 있는 사찰 앞에 서 있었다는 무쇠 말과 관련된 지명유래담이다. 무쇠 말은 통고산사의 어떤 도승이 기약한 수행을 마친 다음 자신이 열성으로 노력을 다하였다는 자부심을 강조하고자 절 앞에 세운 조형물이다. 지금 이 무쇠 말은 사라...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산하 동해 개발 및 해양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소.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는 해양연구에 완벽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발전성과 입지조건이 뛰어나 선진국형 근접해양연구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며, 국제적 공조연구가 용이하다. 울진군 죽변면이 동해연구소로서 선정된 이유는 가까운 거리[약 2㎞]에 울진원...
-
불영계곡과 왕피천은 천혜의 비경과 자연을 지닌 울진군이 그 중에서도 가장 자랑하는 청정 지역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일대는 곳곳에 협곡과 유려한 지형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오랜 세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멸종위기종·보호종 등 야생 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었는데, 특히 1~2급수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종인 한둑중개가 서식하고 있다. 또한 울진의 대표적인 금강...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백헌(白軒). 청주한씨 시조인 한난(韓蘭)의 31대손이고, 울진 입향조 한위(韓緯)의 1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한재린(韓在麟)이며, 아버지는 한필석(韓弼錫)이다. 덕릉참봉(德陵參奉)을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전국에서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1906년 3월 6일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킨 신돌석(申乭石...
-
한울원자력발전소 건설로 울진군은 각종 지원 혜택을 받아 지역 경제의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지만, 환경 오염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고 있다. 한울원자력발전소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모두 핵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잃는 것의 출발점은 방사선과 방사성 폐기물의 문제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울원자력발전소에서는 안전성 보장을 최...
-
울진에서 각급 학교에 농악을 최초로 보급한 이규형 전 울진초등학교 교장은 북면 주인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우연히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 후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부구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제동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부구공립보통학교는 4학년제였으며, 그는 9살에 입학하였다. 4년을 마치고 울진읍 내에 위치하던 제동...
-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군은 1945년 해방 이후 강원도에 소속되어 있었다. 울진군은 6·25전쟁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1959년 9월 11일 사라(Sarah)호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62년 11월 21일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관할도가 이전되었다. 1968년 11월 2일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
소광리 대부분의 산은 국유림이지만 일부의 개인 산도 존재한다. 이러한 개인 산은 산의 주인만이 송이를 딸 수 있지만 국유림에서 나는 송이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채취한다. 국유림의 송이는 산림청에서 무상양해를 얻어 마을 주민들이 채취하는데 과거에는 모두 무상이었으나 약 10년 정도 전부터 생산의 10%를 산림청에 낸다. 그렇게 무상양해를 받았으나 마을 주민들 전체가 마...
-
1997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건립된 해월 황여일의 신도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명외교에도 큰 몫을 한 해월 황여일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리고자 후손들이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해월 황여일의 생가가 있는 기성면 사동리 마을 입구 좌측의 조그만 언덕에 위치한다. 국도 7호선에서 해월헌 표지판을 바라보...
-
일제강점기 일본이 벌목에 불을 켰던 금강송은 일찍이 조선에서도 보호하고자 노력했던 소나무 중 하나였다. 그 흔적으로 소광리에서 금강송 숲에 들어가기 전 약 2㎞, 지점인 광천 왼쪽에 황장봉계표석이 있다. 이는 금강송의 우수함이 잘 알려져 있어 궁궐이나 국가의 주요한 건물을 지을 때 이외에는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금강송이 있는 황장봉산의 경계를 표시한 자리가...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울진군에서는 동년 4월 10일 매화만세운동에 이어 4월 13일 오후 1시를 전후해 북면 흥부장터에서 5일장을 맞아 주민들과 장꾼들이 대규모로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당시 만세시위운동으로 인해 주동자로 지목된 전병항·남병표·김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