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
935년 신라가 멸망하기 이전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울진 지역은 진한 소국의 하나인 우중국이 있다가 신라에 병합된 뒤, 한 때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지역이 되기도 했으나, 결국 신라의 영역으로서 국가제사인 소사가 설치된 중요한 곳이었다. 진한은 3세기 중엽경까지는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소국연맹체였으며, 진한 12국 가운데 하나인 우중국(優中國)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1리에 있는 고파현의 유래를 담은 이야기. 고파현의 동쪽은 국도 7호선 너머에 울진읍 읍내리가 있고, 서쪽은 청고동이 있으며, 남쪽은 남대천 건너에 월변동이 있다. 북쪽에는 산성이 있으며 성저동과 접해 있다. 고파현은 고파목[古坡峴]·구만리(九萬里)·청고개[靑皐峴]라고도 한다. 2001년에 울진군청에서 간행한 『울진군지』에 채록 내용...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지장서재에서 학문을 닦는 한편 병서를 탐독하고 무예를 익혔다. 20세 때부터는 쇠도리깨 쓰는 법과 말 타는 법을 연습하여 인근 가치산(迦治山) 정상을 뛰어 오르내리는 것이 비호와 같았다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부대 중의 일부는 울산을 거쳐 육로로 북상하고, 또 다른 부대는 강릉에 상...
-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의 죽변항은 지나간 시간동안 포(浦)에서 진(津)으로 19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항구로 탈바꿈하면서 오늘날에는 동해안의 어업기지로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죽변의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기인되는 것일까. 『한국수산지』에는 죽변의 입지적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죽변의 용추갑은 높은 언덕을 정점으로 해서 북서쪽보다 남동쪽으로 뻗어...
-
임진왜란 중 1593년 경상북도 울진군 덕천리 마분동에서 김언륜이 왜군과 벌인 전투. 김언륜은 1565년(명종 20)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동네 지장서재(智藏書齋)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틈만 있으면 병서 읽기를 좋아하였다. 1592년(선조 25) 27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듬해 8월 울진에서는 고읍성 전투와 덕천리 분투골 전투가 치열하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봉산리 선사유적 북쪽으로는 태백산맥 금장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정명천(正明川)이 있다. 정명천 하구에는 충적지대와 넓은 사구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봉산리 선사유적은 정명천의 남쪽으로 태백산맥에서 뻗어내려 바다까지 형성된 해발 45~67m의 낮은 구릉지대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 시련의식에 사용된 가마. 시련은 가마를 문 밖까지 메고 나가 신앙의 대상인 불·보살이나 재를 받을 대상인 영가 등을 가마에 모시고 여러 가지 위의를 갖추어 법회 장소까지 행렬을 지어 오는 불교 의식이다. 이때 불·보살을 의식 도량에 모셔와 돌려보내는 데 필요한 불연, 행렬에 필요한 나팔, 각종 번 및 기치류가 사용된다. 이러한 불...
-
성류굴은 울진의 대표적 석회암 동굴로, 자연 조형이 금강산을 방불케 할 정도라 하여 지하금강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지금의 성류굴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생겨난 것으로 굴 앞의 사찰에 있던 불상을 이곳에 피난시킨 이후로 ‘성불이 머물던 굴’이란 뜻에서 성류굴(聖留窟)이라 불리게 되었다.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위치하고 있고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성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지장골에서 태어난 김언륜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왜적과 싸운 이야기. 일반적인 전쟁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허구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김언륜 장군의 영웅적인 활약상은 사실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다. 2001년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진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김언륜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군으로 활약하였다. 15...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버스터미널. 울진시외버스터미널은 1988년 3월 19일 준공되었으며, 이후 시외버스를 통해 전국 각 지역과 울진군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8년 현재 울진시외버스터미널 노선을 살펴보면, 대구·부산·구미·울산·포항·경주를 연결하는 남부권은 하루 11회 운행되고 있으며, 강릉·속초·동해·거진을 연결하는 동북...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교수공(敎授公) 주세창(朱世昌)이다. 부인은 울진장씨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가족을 이끌고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있는 안일왕성으로 피신했으나 일가친척이 왜병들에게 무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분연히 일어났다. 또한 “고을 백성들이 하루 이틀도 아닌 수많...
-
676년부터 935년까지 통일신라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상북도 울진군의 역사.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후 685년(신문왕 5)에 영토를 9주(州)로 분할하였다. 이때 동해안 일대를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편제하였으며, 울진을 명주에 소속시켰다. 울진이라는 명칭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 와서 보배가 많아 울창할 ‘울(蔚)’자와 보배 ‘진(珍)...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신라 말 고려 초에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신라 말 고려 초에는 많은 호족들이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고 지배권을 행사하며 지방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울진 지역에서도 이러한 호족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문헌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려 태조가 930년에 고창[지금의 안동] 전투에서 견훤의 군대를 크게...
-
1997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건립된 해월 황여일의 신도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명외교에도 큰 몫을 한 해월 황여일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기리고자 후손들이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해월 황여일의 생가가 있는 기성면 사동리 마을 입구 좌측의 조그만 언덕에 위치한다. 국도 7호선에서 해월헌 표지판을 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