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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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고등동(古等洞)과 시목동(柿木洞)에서 ‘고(古)’자와 ‘목(木)’자를 따 ‘고목(古木)’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고등동·시목동·신리동(新里洞)의 각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고목리로 개편되었다. 고목리는 고목1리, 고목2리, 고목3리의 세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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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구고동(九皐洞)과 성산동(城山洞)에서 ‘구(九)’자와 ‘산(山)’자를 따 ‘구산(九山)’이 되었다. 대부분 130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북평동(北平洞)·성산동·구고동이 통합되어 구산리로 개편되었다. 구산리의 동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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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금답동(金沓洞)과 하매동(下梅洞)에서 ‘금(金)’자와 ‘매(梅)’자를 따 ‘금매(金梅)’가 되었다. 1400년경 조선 전기 단천군수(端川郡守)를 역임한 영양인(英陽人) 남득공(南得恭)이 경주에서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금답동과 중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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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1리에 있는 꽃방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죽변면 화성1리 꽃방[花坊]마을은 1515년(중종 10)경에 영양남씨 남수정이 들어와서 살며 15세대로 세거(世居)해오고 있다고 한다. 동네 이름을 ‘꽃방’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마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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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으로 이주한 영양남씨 입향조. 본관은 영양(英陽).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이다. 시조는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이며, 분파조는 진사 남유지(南有智)[일명 삼기(三起)]이다. 아버지는 남봉우(南鳳羽)이고, 어머니는 울진장씨로 판관(判官)을 지낸 장온고의 딸이다. 부인은 김을환(金乙環)의 딸이다. 목사(牧使) 남회(南薈)와 생원(生員) 남매(南邁) 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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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건립된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 남홍보의 제단비. 남홍보는 당나라 안렴사(按廉使)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의 후손으로 고려시대에 관직으로 중대광도첨의찬성사(重大匡都簽議贊成使)를 지냈으나, 사적과 묘소·배위 등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자세한 행적을 알 수 없다.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인 남홍보에 대한 행적과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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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오노동(五老洞)과 지음동(旨音洞)에서 ‘노(老)’자와 ‘음(音)’자를 따 ‘노음(老音)’이 되었다. 1450년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당북동(塘北洞)·수산동(守山洞)·오노동·지음동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노음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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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설운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는 자연부락으로 영양남씨가 개척하였다는 마을이다. 마을의 뒷산 암벽이 황금색이고, 또 사람들이 동네에 황금이 많이 쌓이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뜻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간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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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화리의 명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먼저 마을의 형상이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이라 하여 매화라 하였다는 설과, 조선시대 광해군 때 강원도관찰사 기자헌(奇自獻)이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주위의 들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야다강매(野多江梅)」라는 시를 읊었던 연유로 매야(梅野)라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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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리는 남수산 정상에 바라보면 마을의 형상이 매화꽃잎과 같고 그 부근의 산봉우리가 매화꽃가 같다고 하여 연유된 이름이다. 일설에서는 조선조 광해군 때 강원도관찰사(江原觀察使) 기자헌(奇自獻)이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주위의 들에 해당화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야다강매(野多江梅)」라는 시(詩)를 읊었던 연유로 매야(梅野)라 하다가 후에 매화(梅花)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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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등명동(燈明洞)과 도청동(道淸洞)에서 ‘명(明)’자와 ‘도(道)’자를 따 ‘명도(明道)’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경에 삼척도호부사(三陟都護府使)를 지낸 경주인(慶州人) 최한우(崔漢佑)가 관직(官職)을 그만두고 이곳에 와서 산수(山水)가 수려함을 보고 정착하게 되어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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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막(幕)을 치고 사기(沙器)를 구웠다 하여 사기막(沙器幕), 또는 사계(沙溪)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의 지역으로서, 1914년 3월 1일 북면으로 개칭되고, 1916년 4월 1일 소야동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사계리로 개편되었다. 사계리는 사계1리, 사계2리 2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사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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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2리 박금(撲琴)마을 명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울진읍 정림2리에 있는 박금마을은 1510년경 영양남씨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동네 입구 쪽에 낮게 가로놓인 산이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일설에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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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통고산·천축산(天竺山)·세덕산(細德山)[740.8m]의 세 뿌리가 모인 곳이라 하여 삼근(三根)이라 했다가 삼근(三斤)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산간오지(山間奧地)에서 농사를 지으면 잘 썩는다고 하여 조선시대부터 써근이라 불렀으나 써근이와 비슷한 삼근(三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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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지역에서 세거해 온 성씨.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울진의 토성(土姓)은 임(林)·장(張)·정(鄭)·방(房)·유(劉)가 있었고, 속성(屬性)으로는 영천(榮川)에서 이주한 민(閔)씨가 있었다. 평해의 토성으로는 황(黃)·방(房)·수(水)씨가 있고, 백성성(百姓姓)으로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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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일년을 주기로 하여 계절의 변화 시점, 생업 활동의 변화 시점, 기념일 등에 행해지는 풍속. 세시는 일 년 사계절의 순환을 따라 일정한 날, 즉 명절에 수행되는 일련의 반복된 행위를 말한다. 농경의 전통사회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반복적으로 행해지는 독특한 생활행위가 있었는데, 이것이 생업활동과 관계를 맺으면서 연중 중요한 행사로 자리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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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소야동(蘇野洞)과 신곡동(薪谷洞)에서 ‘소(蘇)’자와 ‘곡(谷)’자를 따 ‘소곡(蘇谷)’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원북면(遠北面)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북면으로 개칭되고, 1916년 3월 1일 신곡·소야·석수(石水)가 통합되어 소곡리로 개편되었다. 1944년에 소곡리가 소곡1리와 소곡2리로 분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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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소조동(召造洞)과 광천동(光川洞)에서 ‘소(召)’자와 ‘광(光)’자를 따 ‘소광(召光)’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후곡동(後谷洞)·소조동·광천동이 통합되어 소광리로 개편되었다. 소광리의 남쪽은 세덕산(細德山)[740.8m], 남서쪽은 진조산(眞鳥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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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태나무 정자가 있었으므로 소태정 또는 소태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서면(遠西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하암리(河岩里)·상소태리·하소태리가 통합되어 소태리로 개편, 울진군 온정면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는 소태리가 소태1리·소태2리·소태3리로 각각 분리 되었다. 소태리의 서쪽에는 백암산(白岩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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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새림·새름 또는 신림동이라 하였다. 1475년 경에 순흥안씨(順興安氏)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용제동(龍堤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신림리로 개편되었다. 신림리의 서쪽에는 악구산(岳丘山)[652.9m]이 높이 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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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수동·대잠동·이을동을 병합하고 새로 번창하라는 뜻으로 신흥리라 하였다. 1520년 경에 순흥안씨(順興安氏)인 언문(彦文)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그 뒤 여러 성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매화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4월 1일 북수동(北水洞)·대잠동(大岑洞)·이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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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봉전동(鳳田洞)과 달전동(達田洞)에서 두 마을의 ‘전(田)’자를 따 ‘쌍전(雙田)’이 되었다. 1580년 경 가선대부 권태중(權泰重)이 칡넝쿨을 걷어내고 개척한 곳이라 하여 갈전(葛田)이라는 자연마을이 생기게 되었다. 본래 울진군 금강송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봉전동·달전동·광치동(廣峙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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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각석문. 마애각석(磨崖刻石)으로도 불리는 각석문(刻石文)은 바위나 절벽에 새겨진 글씨로 금석문의 일종이다. 각석문은 대부분 지명이나 건축물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로 마을 입구의 큰 바위에 새겨져 지명을 알리거나 명승지에 그 경치와 어울리는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불경과 관련된 구절을 적어 두기도 한다. 또한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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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1리 대봉전에 있는 성황신을 모셔놓은 제당.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1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앞으로 국도 36호선이 지나고 답운재에서 발원한 냇물이 흐르고 있다. 쌍전리 내에는 대봉전·덕거리·깨밭골 등 10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중 대봉전은 덕거리에서 북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있는 마을이다. 10여 가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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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소곡1리에 있는 자연마을의 명칭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울진군 북면 소곡1리에는 12개의 소야(蘇野)가 형성되어 있어 인근 마을에서는 ‘열두소야’라고 부른다. 이 12개소는 평지마을·굿마을·웅동골·샛터·골말·북산말·평밭·도리마·웃마을·옛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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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영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울진군의 세거 성씨. 영양남씨의 시조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남민인데 본명은 김충이다. 영양남씨는 영양 이외에 의령·고성·남원 등의 본을 사용하고 있으나 모두 남민의 후손이다. 남민의 후손인 남진용의 세 아들 중 장남은 영양남씨, 차남은 의령남씨 그리고 막내는 고성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영양남씨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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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영양남씨 중랑장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고서. 소장하고 있는 고서는 222책이며, 『진무원종공권(振武原從功臣錄券)』을 제외한 모두가 남영번의 넷째 아들 송정(松亭) 남수(南須)의 계보를 잇는 가계의 자료들이다. 고서는 남사고(南師古)의 『격암선생일고(格菴先生逸稿)』와 남봉호(南奉鎬)의 『남봉암시문집(南奉菴詩文集)』, 남진영(南軫永)의 『무실재사고(務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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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노음1리·노음2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울진문화원에서 1998년에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오노(五老)마을은 울진군 근남면 노음1리·노음2리의 옛 지명으로, 1450년경 영양남씨 가문의 상유(尙有)·순하(舜夏) 등 다섯 명의 노인이 촌장의 자격으로 마을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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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래 전에 김해김씨(金海金氏)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사방의 산수(山水)가 아름다워 신선(神仙)이 놀던 자리라는 뜻의 선(仙)자와 물맛이 좋다는 미(味)자를 따서 마을 이름이 선미(仙味)가 되었다. 그리고 선미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선미·밭선미 또는 외선미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서면(遠西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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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에 있는 수령 400년의 향나무. 새로 나는 가지는 녹색이고 3년생 가지는 검은 갈색이다. 7~8년생부터 비늘 같은 부드러운 잎이 달리지만 새싹[萌芽]에서는 잎사귀에 날카로운 침이 달려 있다. 잎은 마주나거나 돌려나며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난다. 나무껍질은 적갈색으로 세로로 갈라진다. 꽃은 단성화로 수꽃은 황색으로 가지 끝에서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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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매화리는 윤촌과 최촌이라 불리기도 한다. 과거 파평윤씨(坡平尹氏)가 기성면 삼산리에 입향하여 살다가 1558년경에 이 마을에 와서 개척(開拓)하여 대대(代代)로 살았으므로 윤촌(尹村)이라 불리며, 마을의 또 일부분은 강릉최씨(江陵崔氏)가 지금의 북면 고목리 무령현(武靈峴)에 입향하여 살다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이곳에 와서 최씨(崔氏)가 집단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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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울진군청이 있으므로 읍내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의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구만동(九萬洞)·청고동(靑皐洞)·성저동(城底洞)·가원동(可原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고성리로 개편되었다. 본래 울진군 하군면(下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옥계동, 홍시동, 월변동과 선제동 일부 지역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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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울진(蔚珍). 시조인 장말익(張末翼)의 19대손이다. 부인은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인조 때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으로 삼척포첨사(三陟浦僉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황제를 암살하고자 심양(瀋陽)에 잠입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같이 갔던 동지인 역사(力士) 승려 개남(介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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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3리에서 시목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저울대 형국 마을 이야기」는 북면 고목3리에 위치한 시목동(柿木洞)에 사는 두 씨족 세거민들의 형국에 따른 지명과 관련된 풍수 전설이자 지명유래담이다. 마을의 모습이 저울대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양쪽 마을의 인구, 가구, 재력 등이 천평칭으로 재어본 듯이 똑같다는 것이다. 천평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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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 속하는 법정리. 정림사가 있었으므로 정림동 또는 정촌이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상군면(上郡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장사동(長沙洞)·박금동(拍琴洞)과 원북면의 당가동(唐街洞)·두정동(斗井洞)의 일부 지역이 통합되어 정림리로 개편되었다. 정림리는 정림1리, 정림2리, 정림3리 세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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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야성정씨 울진 입향조. 본관은 야성(野城). 시조는 야성군(野城君) 충간공(忠簡公) 정가후(鄭可侯)이며, 분파조는 사성공(司成公)이다. 아버지는 봉열대부행현감 정득화(鄭得和)이고 어머니는 영인(令人)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현재 자손들은 온정면, 영덕 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정자함은 1439년(세종 21)에 등제(登第)하여 홍문관교수, 강릉판관, 성균관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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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하여 죽빈이라 하다가, 뒤에 죽변동이 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봉수동이 통합되어 죽변리라 하여 울진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 울진읍에서 죽변면이 분리, 승격되었다. 죽변리는 죽변1리에서 죽변5리까지 다섯 개의 행정리로 분리되어 있다. 죽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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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이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우위를 점하는 촌락. 울진군에서 동일한 조상의 후손들로 구성된 부계혈연집단의 성원들이 특정 마을에서 다수를 이루고, 이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마을을 가리킨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마을에 동족부락·씨족부락·동성촌락·동족촌 등의 용어를 적용하고 있다. 여러 성씨들로 구성된 마을이나 특정의 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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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속하는 법행리. 마을 뒤의 산세(山勢)가 척(尺)자와 비슷하다 하여 자산 또는 척산(尺山)이라 하였다. 본래 평해군 원북면(遠北面)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암곡리(庵谷里)가 통합되어 척산리로 개편, 울진군 기성면에 편입되었다. 척산리의 동쪽은 기성리와 동해(東海)가 있고, 서쪽은 정명천(正明川)의 상류(上流)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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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천1리 바깥말래에서 봉화 방면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재를 하나 넘으면 산능선을 넘어서 마을이 보인다. 속칭 안말래 또는 원말래라 부르기도 하는 두천2리는 마을 앞으로 북쪽에 위치한 세덕산에서 발원한 말래천이 지나간다. 안말래는 본 마을인 안말래와 사기골, 장평 세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말래는 다시 서낭골과 밤나무골로 구분된다. 서낭골은 안말래에서 넘어오는 입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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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량암에서 쌀이 나왔다 하여 쌀고·살고 또는 미고촌이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살구라 하였는데 살구를 한자로 옮겨서 행곡리라 하였다. 본래 울진군 근남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천연동(泉淵洞)·구미동(九尾洞)·천전동(川前洞)·상천전동이 통합되어 행곡리로 개편되었다. 행곡리의 동쪽에는 마을 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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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화방동(花坊洞)과 성내동(城內洞)에서 ‘화(花)’자와 ‘성(城)’자를 따 ‘화성(花城)’이 되었다. 1515년(중종 10)경에 영양인(英陽人) 남수정(南守貞)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울진군 근북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6년 3월 1일 용장동(龍場洞)·감대동(甘大洞)·범상동(凡祥洞)·성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