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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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德之川農旗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덕지천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유병덕 |
제작 시기/일시 | 1916년 - 서산 덕지천 농기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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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3월 5일 -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3-3호로 지정 |
현 소장처 | 농업박물관 - 서울특별시 중구 충정로 1가 75 농업박물관 |
원소재지 | 덕지천동 - 충청남도 서산시 덕지천동 |
성격 | 농기 |
재질 | 광목 |
크기(높이,길이,너비) | 460㎝[가로]|240㎝[세로] |
소유자 | 농협중앙회 |
관리자 | 농협중앙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3-3호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덕지천동에서 활동한 두레패가 사용하던 농기.
[개설]
용대기는 기 바탕에 용과 운기가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원래 군대에서 각 영(營)을 지휘하는 데 쓰던 것이다. 이것이 농촌 사회에서는 두레패의 상징이자 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농기로 용도가 바뀌었다. 농기로서 용대기에 그려진 용은 물이 가장 중요한 논농사에서 물을 관장하는 용신(龍神), 즉 수신(水神)을 의미한다. 더불어 농기에는 대개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나 ‘신농유업(神農遺業)’ 등의 글귀를 적어 놓는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용대기와 농악 대목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전부터 용대기가 농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통적인 공동 노동인 두레가 쇠퇴하며 농기도 그 기능을 상실하였는데, 서산 덕지천 농기의 용대기도 1940년대까지는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서산시 덕지천동에는 청룡대기와 황룡대기 두 개의 용대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황룡대기는 마을에 보관 중이고, 청룡대기는 농업박물관에 기증되었다. 현재 청룡대기는 2009년에 서울특별시 문화재 자료 제43-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황룡대기는 개인 소장으로 1990년대 마을의 용대기 놀이를 재현하는 행사를 할 대 행사 주최 측에서 잠시 빌렸다는 증언은 있으나 반납 후의 소재지는 파악할 수 없다.
[형태]
서산 덕지천 농기는 깃대는 없고, 깃발만 보존되어 있다. 깃발의 크기는 가로 460㎝, 세로 240㎝이며, 둘레에는 지네발을 달았다. 기 바탕에는 용틀임을 하는 큰 청룡이 한 마리 그려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운용문을 채색하였다. 한 귀퉁이에 ‘천하대본 대정오년 병진음육월신비(天下大本大正五年丙辰陰六月新備)’라 묵서되어 있어 191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색이 많이 바래었다.
[의의와 평가]
옛날 서로 인접한 두레패들 사이에는 정월 민속놀이의 하나로 이웃 두레의 깃발을 빼앗는 두레싸움을 벌였는데, 덕지천동에서도 덕지천과 돌게미[현 장동] 두레패 사이에 벌어진 두레싸움이 194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러한 두레싸움은 사라졌지만, 그러한 전통은 ‘서산 용대기놀이’로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