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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1538
한자 富春山玉女峯玉女祭
이칭/별칭 옥녀봉 산신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오후 4시경
신당/신체 상석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 부춘산 옥녀봉에서 시화연풍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부춘산 옥녀봉 옥녀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서산시청의 뒷산인 옥녀봉[187.6m] 상봉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과 시화연풍(時和年豊)[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듦]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옥녀봉 산신제’라고도 한다.

부춘산 옥녀봉은 서산의 진산으로서 예부터 고을의 주민들에게 숭배를 받아 온 영산이다.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옥녀봉은 옥녀가 거문고를 켜는 형국, 곧 ‘옥녀 탄금형(玉女彈琴形)에 비정된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길지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산 아래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매년 정월에 산신제와 당제를 지내며 무사태평을 기원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극심한 한발이 들면 읍민과 고을의 수령이 함께 옥녀봉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1927년 발간된 『서산군지』에는 동문리와 읍내리 주민이 매년 정월 14일에 제를 지낸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주민의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마을에서 모시던 옥녀봉 산신제는 6·25 전쟁 무렵에 중단되고 제당도 소멸되었다. 그 뒤 1987년 10월 제1회 서산문화제 전야제 때 옥녀제를 지냈지만, 향사와 궐사(闕祀)[제사를 거름]가 거듭되었다. 그러다가 서산 지역의 유림을 중심으로 옥녀봉을 숭모하는 모경회(慕敬會)를 조직하여 산 정상에 옥녀 제단을 설치하고 매년 정월 14일 오후 4시경에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신당/신체의 형태]

지금은 단순한 제단의 역할을 하는 상석만 설치되어 있지만, 본래 옥녀봉 정상에는 당집과 목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실제 1927년 이민영이 편찬하고 중앙인쇄소에서 간행한 『서산군지』에 따르면, “옥녀봉 상봉의 불당에 목상(木像) 수십 기가 있는데, 몇 년 전에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 박사가 연구용으로 한 개를 가지고 일본에 돌아가 동경대학교 문리과대학 내에 불당을 만들고 그 밑에 단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약 60여 년 전까지도 나무로 깎은 부처가 당집에 남아 있었으나 제의가 중단되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절차]

1990년대 새롭게 복원된 옥녀제는 전형적인 유교식 절차에 따라 제를 지낸다. 이를 위해 초헌관·아헌관·종헌관·축관·집례 등을 선정한다. 초헌관은 서산시장, 아헌관은 시의회 의장, 종헌관은 모경회장, 축관에는 모경회원 등이 참여한다. 제물은 팥 시루떡, 돼지머리, 삼색실과, 포, 술 등이다. 절차는 강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소지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소지를 마치면 옥녀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즉석에서 음복을 하고 하산할 뿐 특별한 행사가 수반되지는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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