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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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田新塾 |
영어음역 | Pungjeonsinsuk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풍전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지수걸 |
인가 시기/일시 | 1907년 - 풍전신숙으로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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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시기/일시 | 1908년 - 서령학교로 흡수 통합 |
최초 설립지 | 풍전신숙 - 충청남도 서산군 인지면 풍전리 |
성격 | 사립 교육 기관 |
설립자 | 한동벽 등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풍전리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변천]
개항기 애국 계몽 운동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는 지역 유지들의 주도로 사립 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어 ‘교육 구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 기준 충청남도 지역의 공·사립 학교 수는 88교였으며, 전체 교사 수는 255명, 학생 수는 3,820명이었다. 같은 시기 서산, 태안, 해미 지역에는 6개 교육 기관이 존재하였으며, 학생 수는 대략 165명 정도였다.
서산 군내의 근대 교육을 언급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학교가 바로 서산시 인지면 풍전리에 설립된 풍전신숙(豊田新塾)이다. 풍전신숙은 1907년(순종 1) 한동벽 등이 서산 군내에 설립한 학교로서, 1908년(순종 2) 설립된 서령학교로 흡수 통합되기 전까지 서산의 근대 교육을 이끌었다. 설립 초기 풍전신숙을 다닌 학생들은 대개 서산의 향리나 신흥 부호의 자제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전신숙을 흡수 통합한 서령학교는 현직 서산군수였던 박승준(朴承俊)과 군내 유지 서병언(徐丙彦)[농민 전쟁 시기 예리(禮吏)로서 공을 세움]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창립 시의 위치는 일제 강점기 여자 잠업 견습소가 있었던 관청 건물이었다. 풍전신숙과 서령학교는 서산 지역 청년 운동의 주체를 키워 낸 대표적인 학교들이었다. 3·1 운동 이후 서산 읍내에 설립된 청년회의 명칭이 서령청년회였던 것은 청년회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서령학교의 동창생들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