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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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美邑城刑場- |
영어의미역 | Haemi Catholic Church |
이칭/별칭 | 서문 밖 개천 돌다리,해미읍성 형장 길의 돌다리 |
분야 | 종교/기독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성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56년 3월 - 신부 신균식과 신부 오기선 등이 돌다리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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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56년 6월 14일 - 읍성에서 서문 밖으로 이어지는 수로에서 서산성당으로 이전 |
이전 시기/일시 | 1986년 8월 29일 - 서산성당에서 읍성 서문 밖의 본래 자리로 재이전 |
이전 시기/일시 | 2009년 1월 8일 - 도로 신설로 인하여 읍성 서문 밖에서 여숫골 순교지로 이전 |
현 소재지 | 해미읍성 형장 길의 자리개돌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읍내리 274-10] |
원소재지 | 서문 밖 순교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읍내리 490-1] |
성격 | 돌다리 |
양식 | 자연석 |
관련 인물 | 신부 신균식|신부 오기선|천주교 신자들 |
크기(높이,길이,둘레) | 4.2m[길이] |
면적 | 약 6㎡ |
소유자 | 천주교 대전교구 |
관리자 | 해미순교성지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개항기의 돌다리.
[개설]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의 서문 밖에는 성안에서부터 흐르는 개천이 있었고, 여기에 커다란 돌다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이 다리를 통하여 사람들은 편리하게 수로를 건너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 박해기의 순교자에게 돌다리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통로로 여겨졌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서 서쪽 들판의 여숫골 처형지로 끌려가기도 하였고, 때로는 다리 자체가 처형을 위한 형구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서문 밖 일대는 서산시 해미의 주요 순교 터 중 하나인데, 옥에 수감되었던 천주교인들이 처형되기 위하여 서문을 나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돌다리였다. 이 돌다리는 천주교 신자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하던 형구이기도 하였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도록 만든 처형 방법 중 하나는 ‘자리개형’이었다. 집행자들이 사형수의 사지를 붙잡고 넓적한 돌다리 위에 내리쳐서 숨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 모양이 마치 곡식 단을 내리치며 타작하는 자리개질과 비슷하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 돌다리를 ‘자리개돌’이라 불렀다. 이렇게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머금은 까닭에 자리개돌은 지금도 빗물에 젖으면 붉은빛을 띤다고 한다.
[위치]
본래 읍성에서 서문 밖으로 이어지는 수로[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번지]에 놓여 있었다. 1956년 3월 서산성당 신부 신균식과 신자들, 그리고 신부 오기선이 처형 도구였던 자리개돌을 찾아내 동년 6월 14일 서산성당으로 옮겨 보존하였다. 1985년 서산 해미성당 설립 이후 ‘해미순교선열현양협의회’가 발족되는 등 서산시 해미의 성역화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1986년 8월 29일 자리개돌을 읍성 서문 밖의 본래 자리로 환원하였다. 2009년 도로가 신설되면서 그해 1월 8일에 다시 자리개돌을 해미순교성지로 옮겼다.
[형태]
면적은 약 6㎡이다. 가공되지 않은 넓적한 모양의 자연석으로 길이 4.2m에 폭은 1.5m이며, 두께는 0.3m의 화강암 재질이다. 돌다리 상판에는 십자표와 함께 ‘순교 기념물’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해미읍성 형장 길의 자리개돌의 소유자는 천주교 대전교구이며, 관리자는 천주교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이다. 서산 동문동 성당과 해미읍성 서문 밖 순교지에 각각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서산 해미읍성 서문 밖 돌다리에는 ‘자리개돌’이라는 이름이 마치 고유 명사처럼 붙어 있다. 지나는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던 평범한 돌다리가 참혹한 형구가 되어 남아 있는 것이다. 말 없는 무기물에 지나지 않는 돌덩이에 투영된 순교의 역사는 오늘날의 순례자들에게 삶과 신앙의 의미를 성찰하도록 이끌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