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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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世獜 |
영어음역 | Seo Serin |
이칭/별칭 | 서병언(徐丙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춘진 |
[정의]
개항기 서산 출신의 향리.
[활동 사항]
서세린(徐世獜)은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서산관아의 예방 소속 서리[구실아치]였다. 1894년(고종 31) 서산·태안까지 동학 운동이 번져 농민군이 관아를 습격하였다. 농민군은 군수 박정기(朴錠基)와 구실아치의 우두머리[首吏]인 송병훈(宋秉勳)을 살해하고 관아 건물을 불태워 버렸다. 이런 혼란 속에서 서세린은 객사에 봉안되어 있던 전패[임금을 상징하는 ‘전(殿)’자를 새겨 고을의 객사에 세운 나무패]를 꺼내 한성으로 가서 서산 지역 상황을 조정에 알렸다. 이후 이름을 서병언(徐丙彦)으로 바꾸었는데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포상과 복호(復戶)[충신·효자·군인 등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