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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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周鼎 |
영어음역 | Gim Jujeong |
이칭/별칭 | 문숙(文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고려 후기 부성위(富城尉)[서산현령]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봉된 김광세(金光世)이고, 아버지는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지낸 김경량(金鏡亮)이다.
[활동 사항]
김주정(金周鼎)[1228~1290]은 1257년(고종 44)에 음서로 부성위가 되었다. 부성위로 제수되었을 때, 몽고병이 대대적으로 침략하자 적을 방어하고 백성들을 위무하여 칭송을 받았다. 1264년(원종 5) 갑자방(甲子榜)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였으며, 해양부녹사(海陽府錄事), 이부시랑(吏部侍郞) 등을 역임하였다.
1278년에 충렬왕이 원나라에 갈 때 우부승지로서 수행하였는데 점령 지역을 관할하던 다루가치[達魯花赤, 원의 행정·군사면에 있어서의 중요한 관직명이다] 및 왕경유수군(王京留守軍)·합포진수군(合浦鎭守軍)과 둔전군의 뒷받침에 백성들의 고통이 심한 것을 알렸다. 또 김방경(金方慶)이 무고를 입어 유배된 사실 등을 원나라에 밝힌 공으로 귀국하여 좌부승지로 임명되었다. 또한 재추회의(宰樞會議)에서 따로 서기를 두어 중요한 국사를 담당하게 하도록 건의하였다.
1280년(충렬왕 6)에는 소용대장군좌우부도통(昭勇大將軍左右副都統)이 되어 일본을 정벌하게 되었다. 이때 대명포(大明浦)에 이르자 갑자기 태풍이 불어 배가 전복되고 수군들이 많이 빠져 죽었는데, 김주정이 계교를 써서 살린 자가 매우 많았다. 1284년(충렬왕 10)에는 진변만호(鎭邊萬戶)가 되어 남도의 해변을 순력하였다. 다만 1287년(충렬왕 13) 군신이 모여 연회를 할 때 무례한 행동을 보여 청주목사로 좌천되었다.
[묘소]
김주정의 묘소는 오랫동안 실전되었다가 1749년(영조 25) 후손 김천상(金天相)[1708~1792]이 개성부 동문 외 중서면 연하동 덕달곡에서 찾았으나 국토 분단으로 설단(設壇)만이 이루어졌다. 김주정의 묘지명과 묘소도가 『광산김씨족보(光山金氏族譜)』[1934]에 실려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김주정은 전라남도 장성군 동화면 동화리에 위치한 숭모사(崇慕祠)에 배향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