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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100679
한자 桃星里冶鐵址
이칭/별칭 도성리 야철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
집필자 박형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도성리 야철 터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 지도보기
성격 야철 터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팽이에 있는 야철 터.

[변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충청도(忠淸道) 해미현(海美縣) 호장(戶長) 김연(金鍊)이 서산군(瑞山郡) 임내(任內) 지곡현(地谷縣) 땅에 은돌[銀石]이 있다고 하니, 관가에서 사람을 보내어 파내어서 납[鉛] 1근 8냥쭝[兩重]을 녹이었는데, 정련(精練)한 백은(白銀)이 1전 3푼이었다. 또 다른 도(道)는 은돌이 있는 곳이 모두 암석 사이인데, 여기는 땅이 평평하고 나무가 무성하여 은(銀)을 단련하기에 제일 좋은 땅이었다. 공조(工曹)에서 아뢰기를, ‘원컨대, 김연을 교명에 의하여 역사를 면제하여 후인을 권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태종 17년, 11월 7일]”라는 기록이 확인된다.

이후에도 은이 채굴되어 활용되는 등 서산 지역은 은(銀) 산지로 알려졌고, 일제 강점기에도 은부리 지역에서 은광 산업이 성업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서산군의 서쪽 도비산(都飛山) 남쪽에 철장(鐵場)이 1개소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비록 도성리 야철 터와 관련된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나, 도비산도성리로부터 불과 2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지곡면 일대가 예부터 철 생산지로 유명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도성리 야철 터 또한 서산 지역에서 토산 철을 생산한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위치]

서산시의 서북단 지곡면 도성리 일대에서 야철 터가 확인된다.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지곡면 중에서도 가장 서북단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높이 7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가로림만과 맞닿아 있는데, 이 구릉성 산지를 중심으로 주변에 마을들이 펼쳐져 있다. 특히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쇠풍리골[쇠팽이]과 음불이골[은부리]은 남북 방향의 낮은 고개를 중심으로 좌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주변을 중심으로 철 슬래그편들이 다량으로 확인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도성리 야철 터는 아직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사례가 없으며, 『문화유적분포지도』에 간략한 정황이 서술되어 있다.

[현황]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은부리마을에서 최근까지 철광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일대가 철 생산지 혹은 철 수공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마을 입구 마을 회관에는 2010년에 세워진 칠지도제작야철지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도성리 야철 터가 백제 왕이 369년에 일본 왕을 위해 만든 칠지도(七支刀)의 제작지라는 전언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건립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도성리 야철 터가 백제 시대 이후의 유적임을 입증할 만한 학술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의의와 평가]

도성리 야철 터는 조선 시대 지곡면 도성리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철 생산 혹은 은 제련(製鍊) 양상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조선 초기 명(明)으로의 조공(朝貢)에 필요한 금은(金銀)이 매우 절실하였던 상황에서 서산 지역이 은 산지(産地) 중 하나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도성리 일대가 기록에 보이는 바로 그 산지로 추정된다. 추후 도성리 야철 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정황이 파악된다면 조선 전기 은 수공업과 관련된 중요한 양상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산시 지곡면 도성리 일대의 철 생산과 관련된 수공업 역사의 중요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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