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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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命 |
영어공식명칭 | I Hanmyeong |
이칭/별칭 | 남기(南紀),낙애(洛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옥 |
출생 시기/일시 | 1651년 - 이한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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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66년 - 이한명 사마시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675년 - 이한명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77년 - 이한명 전적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78년 - 이한명 병조정랑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79년 - 이한명 지평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80년 - 이한명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687년 6월 22일 - 이한명 사망 |
출생지 | 이한명 출생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
거주|이주지 | 이한명 은거지 - 경상북도 안동시 |
외가|처가 | 이한명 외가 - 경상북도 성주군 |
묘소|단소 | 이한명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상언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광주(廣州) |
대표 관직 | 병조정랑|지평 |
[정의]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남기(南紀), 호는 낙애(洛涯). 시조 이집(李集)은 고려 말에 판전교사사를 지냈고 호는 둔촌(遁村)이다. 성주목 칠곡으로 이주하였다. 고조할아버지 이희복(李熙復)은 좌승지에 증직되었고, 증조할아버지는 참의(參議)를 지낸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이다. 할아버지 홍문관 부응교 이도장(李道長)은 호가 낙촌(洛村)으로 좌찬성에 증직되었다. 아버지 이조판서 이원정(李元禎)은 호가 귀암(歸巖)으로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성주 이씨로 좌부승지를 지낸 이언영(李彦英)의 딸이다. 부인은 선조의 손자인 평운군(平雲君) 이구(李俅)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한명(李漢命)[1651~1678]은 1651년 경상북도 성주목 칠곡[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서 삼 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5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677년(숙종 3) 전적에 승진하고 1678년 가을에 병조 정랑에 제수되었다. 1679년 봄에 지평에 임명되었는데, 이 해에 석곡옥(石谷獄)에 대한 의론이 일어났는데, 송시열을 법에 따라 처단하기를 강력 요청한 일에 참여하였다. 석곡옥이란 1675년(숙종 1)에 송시열이 유배되자 스승을 변호하기 위해 예론의 지종과 윤휴(尹鑴)와 허목(許穆)을 비판하는 책을 만들어 숙종께 바쳤는데, 숙종이 노여워하며 연루자들을 국문하고 유배 보낸 일을 말한다. 1680년에 이 옥사가 재기되어 이한명은 무고로 유배형이 내려졌다. 이후 이한명은 3년 동안 충청도 충주, 제천, 그리고 경상도 영천[현 경상북도 영주시]으로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화산(花山)[안동] 하회에 작은 우거처를 마렸해 두었다가 1685년(숙종 11)에 옮겨 살았다. 1687년 6월 22일 안동 하회 우거하던 집에서 아버지 이원정이 장상(杖傷)을 당한 후 병을 얻어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문관 응교에 증직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상언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