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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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寒岡先生文集 |
이칭/별칭 | 『한강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미진 |
[정의]
1680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성주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 한강 정구의 시문집.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철산군수 정윤증(鄭胤曾)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정응상(鄭應祥)이고,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副司孟)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 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6대조 정총(鄭摠)과 그 아우인 정탁(鄭擢)이 개국공신에 책봉되는 등 본래 공신 가문으로 한양에서 살았으나 부친이 성주 이씨와 혼인하면서 저자도 성주에 정착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덕계(德溪) 오건(吳健) 및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에게 배웠으며, 예학과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인물이다. 현감(縣監), 군수(郡守) 등을 거쳐 우승지(右承旨), 강원감사(江原監司), 공조참의(工曹參議), 안동부사(安東府使) 등을 역임했으며, 이후 성주로 돌아와 회연초당과 사창서당을 건립하여 저술활동과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문집 외에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 『심경발휘(心經發揮)』, 『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 등 다수가 있다. 사후 이조판서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 천곡서원(川谷書院)과 달성 도동서원(道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한강 정구 유고의 정리와 『한강선생문집(寒岡先生文集)』 간행은 총 3차례 이루어졌다. 먼저 1636년(인조 14)에 목판본으로 원집 12권 5책의 초간이 이루어졌고, 이후 1680년(숙종 6) 허목(許穆)의 주도로 원집 12권을 15권으로 재편하고 거기에다 별집 3권과 속집 6권 등 총 10책을 목판으로 회연서원에서 중간본이 제작되었다. 그러다 200여 년이 지나 1841년(헌종 7)에 중간 원집 15권, 별집 3권, 속집 9권 등 모두 11권을 목판본으로 회연서원에서 다시 간행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 사후 1636년에 그의 문인들에 의해 유고 정리가 이루어졌다. 병자년에 호란의 조짐이 나타나자 저자의 문인 배상룡(裵尙龍)과 이서(李𥳕) 등이 문집 보전을 위하여 급히 원본을 베껴 옮겨서 간행하였다. 한편 『인재집(訒齋集)』에 의하면, 선생 사후 17년만에 문집을 간행할 때 장현광은 서문을, 최현 자신은 발문을 썼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초간본에 이 둘의 서문과 발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고 장현광의 『여헌집(旅軒集)』에도 실려 있지 않아 저술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이는 저자 사후 문인 여부와 관련하여 야기된 장현광의 후손과 저자 후손 사이의 시비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이 결과 최현의 발문도 수록되지 못한 채 문집이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원집(原集) 12권은 이때 간행된 초간본으로, 현재 규장각[奎1378]에 소장되어 있다. 다만 목록에는 권12까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권12가 없고 권13[卷首題, 板心題]에 김굉필(金宏弼)의 연보 등이 실려 있는데 이는 판각 과정의 실수로 판단된다.
이후 중간(重刊)은 초간본이 제작된 지 40여 년이 지난 1680년경에 허목(許穆)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중간본은 원집(原集) 15권, 별집(別集) 3권이다. 중간 원집과 별집은 초간 원집에 수록된 작품의 편차 순서를 다소 조정하거나 불완전한 형태의 작품을 수정 보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속집(續集)의 경우, 1680년 중간(重刊)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되며, 이 초간 속집 6권은 현재 중간본과 함께 소장되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규장각본[古3428-126]에도 수록되어 있다. 속집 9권은 6권본에 개각(改刻)을 더하고 3권을 추각(追刻)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목록이 권1~권6과 권7~권9로 구분 수록되어 있고, 자행(字行)도 권1~권6은 10행 21자, 권7~권9는 10행 19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9 말미의 ‘신축동중간(辛丑冬重刊)’이라는 간기(刊記)와 한강 선생 연보(寒岡先生年譜)의 세계도(世系圖)에 있는 ‘신축동추간(辛丑冬追刊)’이라는 간기(刊記)를 통해 신축년이 1841년으로 추정되는 바, 속집도 이 때에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1978년에는 경인문화사에서 문집 및 저자의 별저(別著), 기타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한강전서(寒岡全書)』를 영인하였다.
[형태/서지]
『한강선생문집』의 속집과 별집의 경우 원집을 편찬한 뒤 다시 수집되는 자료를 그때 그때 정리해 따로 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내용 구성 체제나 서지 사항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내용 구성의 경우 원집·속집·별집 항목 가운데 시·서·잡저의 항목 표제가 중복 제시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통일된 체제가 아니고, 서지 사항면에서는 본집과 속집·별집의 판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속집에는 본집·별집과 달리 간기 사항을 본문에 덧붙여 적어 놓아서, 각 편이 독자적으로 간행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구성/내용]
원집(原集) 15권, 속집(續集) 9권, 별집(別集) 3권, 도합 27권 1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총 15권 구성으로, 권수(卷首)에는 허목(許穆)의 중간서문(重刊序文)[1680년]과 목록이 있다.
권1은 시와 만사(挽詞)이다. 시[28]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 칠언고시 등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고, 만사[21]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덕계(德溪) 오건(吳健),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등에 대한 것이다.
권2는 소(疏), 차(箚), 계사(啓辭)이다. 소[8]는 안동부사, 대사헌, 형조참판 등의 사직(辭職) 상소이고, 차[7]는 대사헌이 되었을 때 올린 사직차(辭職箚)와 임해군(臨海君)의 용서를 비는 「청전은자핵차(請全恩自劾箚)」 등이고, 계사 역시 대사헌(大司憲) 시절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올린 글들이다.
권3에서 권8은 서(書)이다. 권3에서 권5는 이황, 조목(趙穆), 김우옹(金宇顒), 유성룡(柳成龍), 서사원(徐思遠), 김장생(金長生) 등 선배 및 동료 학자들과 주고받은 편지[87]이고, 권6에서 권8은 문인들과의 답문서[50]이다. 모두 예설(禮說)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권9는 잡저(雜著)이다. 저자가 직접 편차한 「사수언인록(洙泗言仁錄)」, 「경현후록(景賢後錄)」과 이황, 김종직, 김굉필의 시 뒤에 작성한 서후(書後), 그리고 신식(申湜)을 위해 지은 「졸재설(拙齋說)」, 주자설을 중점으로 지은 「심의제조법(深衣製造法)」 등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0은 서(序) 10편, 기(記) 5편, 발(跋) 2편이다. 저자의 저술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 「심경발휘(心經發揮)」, 「함주지(咸州志)」 등에 대한 서문[10], 함안군수(咸安郡守) 시절에 지은 「함안사직단기(咸安社稷壇記)」 등 기문[5], 「무이지발(武夷志跋)」, 「선성구로회첩발(宣城九老會帖跋)」 등의 발문[2]이다.
권11에서 권12는 축문(祝文)과 제문(祭文)이다. 축문[41]에는 천곡서원(川谷書院), 도동서원(道東書院), 연경서원(硏經書院) 등에서의 봉안문(奉安文)과 고유문(告由文), 그리고 태백산과 여항산(餘航山) 등의 기우문(祈雨文) 등등이, 제문[48]은 조식(曺植), 오건(吳健), 김우옹(金宇顒) 등에 대한 제문과 묘문이 수록되어 있다.
권13은 묘표(墓表) 5편과 묘지명(墓誌銘)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선고(先考)와 선비(先妣), 아내와 아들 등 직계 가족에 대한 묘표와 묘지명 등이다.
권14는 행장(行狀)으로, 중형(仲兄) 정곤수(鄭崐壽)에 대한 행장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15는 연보(年譜)가 수록되어 있는데 김굉필(金宏弼)의 연보와 그의 사우문인록(師友門人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인록에는 김종직(金宗直), 김맹성(金孟性) 등등 33명에 대한 전기(傳記)가 기록되어 있다.
속집(續集)은 권1에서 권6, 권7에서 권9로 구분되어 목록이 따로 수록되어 있으며 체제는 원집과 유사하다. 권1은 시[15], 부[1], 논[1], 소[1]이다. 시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칠언율시, 만시 순으로 실려 있다. 부(賦)는「입설(立雪)」, 논(論)은 「문우천(問牛喘)」, 소(疏)는 「경술소(庚戌疏)」이다. 권2에서 권3은 모두 서(書)이며, 총 45편이다. 권4는 잡저(雜著)이다. 도동서원의 원규(院規), 양호첩(養浩帖) 등 6편이다. 권5는 문[3], 서(序)[3], 축문[2], 제문[6]이다. 권6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에 대한 행장 1편이다. 권7~권9에는 시[3], 명(銘)[1], 서(書)[83], 답문(答問)[4], 제문[3], 묘갈[2]이 순서대로 편차되어 있다. 시는 세 편의 만시, 명은 「옥천정명(玉川亭銘)」, 그리고 정탁(鄭琢)과 한준겸(韓浚謙) 등과 주고받은 편지 및 문목이 수록되어 있고, 그 외 제문과 묘갈명이 실려 있다.
별집(別集)은 권1~권3까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서(書) 25편, 권2에는 답문(答問) 12편, 잡저(雜著) 7편, 제문(祭文) 4편, 시(詩) 11편, 권3에는 답문(答問)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한강선생문집』의 저자 정구는 생전에 많은 저술을 하였지만 1614년 저자가 살던 노곡(蘆谷)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 소실되어 현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서를 통해 성리학, 예학, 역사, 지리지, 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저자의 박학광대한 학문 세계를 다소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저자 사후 문인들에 의해 유문이 수습되고 간행하는 과정에서 장현광의 문인 여부와 관련한 논란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