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518
한자 西巖先生文集
영어공식명칭 Seoam sunsaeng munjip
이칭/별칭 『서암집(西巖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서암선생문집』 목판본 영인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3년 - 『서암선생문집』 장복추의 서문
간행처 『서암선생문집』 간행처 - 대보사
성격 시문집
저자 여효증(呂孝曾)
권책 2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28.9x21.0㎝
어미 상하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向四瓣花紋黑魚尾)
권수제 서암집(西巖集)

[정의]

1997년 목판본을 영인한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학자 여효증의 개인 문집.

[저자]

여효증(呂孝曾)[1604~1679]의 자는 노이(魯而)이고, 호는 서암(西巖)이며, 본관은 성산(星山)[성주]이다. 성주에서 태어난 서암은 1626년부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635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典籍), 직강(直講), 좌랑(佐郞), 예·형 정랑(正郎)을 역임하고, 외직으로는 전라도사(全羅都事), 청주판관(淸州判官), 선산부사(善山府使) 등을 지냈다. 특히 고성(固城)에는 송덕비가 세워질 정도로 선정을 베푼 것으로 알려졌다. 서예에도 능하여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신도비를 썼다.

[편찬/간행 경위]

『서암선생문집(西巖先生文集)』은 분권되지 않은 목판본 2책으로, 현재는 이 목판본을 영인한 형태로 남아 있다. 원본 목판본은 19세기 초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1997년 대구 대보사에서 영인되었다. 1893년 옥산(玉山) 장복추(張福樞)[1815~1900]의 서문이 수록되어 목판본의 간행 시기를 19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다.

[형태/서지]

『서암선생문집』은 원본인 목판본은 분권되지 않았지만, 현 영인본에 따르면 4권으로 분권되어 있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8자이다. 크기는 28.9x21.0㎝이며, 상하향사판화문흑어미(上下向四瓣花紋黑魚尾)이다. 권수제는 ‘서암집(西巖集)’이다.

[구성/내용]

1997년 영인본은 4권으로 분권되어 있다. 1권은 춘첩(春帖), 화운시, 만사 등 총 248수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2권은 산문으로 전(箋), 소(疏), 서(書), 기(記), 서(序), 친족의 행적(行蹟)을 기록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3권에는 각종 발문, 잡저, 축문, 상량문, 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4는 부록으로 서암 여효증을 위한 만사, 제문, 가장(家狀), 묘갈명(墓碣銘), 발문 등이 들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성주 출신 인물의 문집이라는 점과 17세기 정치, 경제적 상황과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림의 인문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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