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388
한자 李源祚神道碑
영어공식명칭 Memorial Stone of I Wonj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253-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신소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07년 3월연표보기 - 이원조 신도비 건립
이전 시기/일시 2001년 12월 - 이원조 신도비 이전
현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253-1 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양식 입비
관련 인물 이원조|허전|안희원|조종필
크기(높이, 너비, 두께) 175㎝[높이]|75㎝[너비]|35㎝[두께]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원조를 기리기 위해 1907년에 세운 비.

[개설]

이원조(李源祚)[1792~1871]의 본관은 성산(星山), 초명은 영조(永祚)였으나 세자의 이름을 휘하여 고쳤다. 자는 주현(周賢), 호는 호우(毫宇)·응와(凝窩)이며, 시호는 정헌(定憲)이다. 1809년(순조 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을 두루 거쳐 정승의 반열에까지 이르렀다. 관직에 있는 동안 임금에게 간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지방관으로서 백성을 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저서로 『응와집(凝窩集)』 등이 있다.

[건립 경위]

1907년(고종 44) 3월에 사림(士林)들이 발의하여 한개 마을 입구에 신도비를 세웠다.

[위치]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253-1번지에 위치한다. 원래의 위치가 불리하여 2001년 12월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선월로를 따라서 한개 마을 입구 표지석에서 오른쪽 위로 조금 옮겨 도로 옆에 위치해 있다.

[형태]

높이는 175㎝, 너비는 75㎝, 두께는 35㎝이다.

[금석문]

비문은 허전(許傳)[1797~1886]이 짓고, 전액(篆額)은 안희원(安禧遠)[1846~1919]이 썼으며, 글씨는 조종필(趙鍾弼)[1840~?]이 썼다. 비문에 가문의 내력, 이원조의 생애 및 치적 등을 밝혔다.

[의의와 평가]

이원조는 조선 후기 성주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다. 이원조는 정종로(鄭宗魯)[1738~1816]에게 수학하며 익힌 성리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벼슬에 나아갔다. 지방관으로서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고, 학문을 장려했으며 마을의 풍속을 쇄신하는 데 힘썼다. 한편, 이원조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벼슬에서 물러나 학문을 정진하고 후학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에 성주의 서원을 중심으로 강회(講會)를 개설하였으며, 만년에는 가야산 아래에 만귀정(晩歸亭)을 짓고 머물며 학문을 익혀나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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