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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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李氏影幀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3길 366-31[자산리 41]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도영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있는 성주 이씨 열 분의 초상화.
[개설]
성주 이씨 영정(星州李氏影幀)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성주 이씨의 선조로서 국가에 공헌한 열 분의 초상화 13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9년 5월 29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성주 이씨 영정은 1581년(선조 14) 직계 후손들이 보존하고 있던 영정들을 모아서 지금의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에 영당(影堂)을 만들어 봉안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22점의 영정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인기(李麟起), 이인복(李仁復), 이인임(李仁任), 이조(李晁) 등의 영정은 산실되었다. 현재 조선 후기 1714년(숙종 40)과 1746년(영조 22), 1825년(순조 25) 등에 새로 그려진 개모본(改摹本)과 중모본(重摹本)이 전해지고 있다.
[특징]
1680년(인조 10)에는 이 안산영당에 임금이 안산서원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유림으로 하여금 영정을 보존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고려사』 열전 43권 14쪽에 “공민왕 21년 3월 정오일 왕이 손수 성산군 이포의 초상화를 그려서 그 아들 수시중 이인임에게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마다 국법으로 건설한 사찰이 있었고 그 사찰에 국가에 공로가 큰 현인 군자들을 사후에 초상화를 만들어 그 위엄을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성주 이씨 초상화에는 이모한 연도를 화면에 기록해 두어 제작 시기가 분명하며, 모본(母本)이 된 그림도 여러 점 전하고 있어 이모본 초상화 양식의 변화를 자세하게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지방에서 제작된 양식이라는 점과 화승(畵僧)에 의한 불교적인 색채가 반영된 점은 이 자료가 지닌 독자적인 특징이며, 화승의 이모본에 투영된 여말선초 초상화의 새로운 면모와 양식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