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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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新里 |
영어공식명칭 | Sangsi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상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현(上峴)과 신반(新反)에서 한 자씩 따와 ‘상신(上新)’이라 이름하였다. 상신리의 자연 마을로 당안(溏案·堂案)[신반], 새목[조항(鳥項)·초항(草項)], 웃터[웃티·상현·우현(禹峴)] 등이 있다.
당안은 1700년(숙종 26)쯤 조그마한 연못을 메우고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에 못안이라는 뜻의 당안(溏案)이라 불렀다. 북쪽에 큰 당산나무가 있어 이곳에서 산제를 지내기도 한다. 새목은 당안 북쪽에 있는 마을로 동네 옆 산이 새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풀이 우거져 있어 조항 대신 초항으로 부르기도 한다. 웃터는 1600년(선조 33)경 우(禹) 씨가 마을에 입향한 이후, 우 씨들이 많이 산다고 하여 웃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웃티와 상현, 우현 등의 이름은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당안과의 거리는 약 500m 정도이며 마을 남쪽 1㎞쯤의 배고개는 배티 마을로 넘어가는 길이어서 옛날 길손들이 자주 다니던 통로였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조곡방(租谷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초항동, 신반동, 상현동, 갈명동의 일부를 합하여 상신동으로 하고 조곡면과 초곡면(草谷面)을 합한 성암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2월 1일 성암면과 용두면을 합쳐서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상신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상신리는 북동쪽 성암산[556.1m], 북서쪽 거산[553m], 서쪽 추산[524.1m] 등 높이 약 500m 이상의 산지들로 이루어진 산간 지역이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크고 작은 골짜기를 만들었고, 소하천들이 합쳐져 신천을 이루며 상신리 중앙을 남동쪽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흘러간다. 신천을 따라 형성된 곡저 평야에 마을이 들어섰거나 농경지가 만들어졌다.
[현황]
상신리는 용암면의 서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용암면의 죽전리와 계상리, 대봉리, 남부와 서부는 수륜면과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73㎢이며, 상신리 1개 행정리에 51가구, 84명[남 51명, 여 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용암면 소재지에서 대송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9㎞ 거리에 있다. 상신리의 중앙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남동류하는 신천을 따라 왕복 2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문화 유적으로 조선 후기 처사(處士) 이원발(李元發)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인 경목재(敬睦齋), 조선 후기의 유학자 문광용(文光容)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인 유신재(維新齋), 추봉(鶖峯) 문남(文南)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인 형모재(夐慕齋), 조선 숙종(肅宗) 때 사람 김광윤(金光潤)의 부인인 김영진(金英振)의 지극한 효성을 기린 일선 김씨 효행비(一善金氏孝行碑)와 이출정비(鯉出井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