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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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巨里 |
영어공식명칭 | Jungge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중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기동(中基洞), 지수동(智水洞), 대거동(大巨洞)[장자골] 등을 병합하면서 중기동의 ‘중’ 자와 대거동의 ‘거’ 자를 따와 ‘중거(中巨)’라고 이름하였다. 중거리의 자연 마을로 장자골[장자곡(長子谷)·대거동], 지수골[지수곡(智水谷)·지수동], 사수골[사수곡(泗水谷)], 화진계(花眞溪)[화전기(花田基)·화진기(花眞基)], 중터[중기(中基)]가 있다.
장자골은 성암산과 대황산 사이 약 350m 높이에 있어 용암면의 지붕 마을에 해당한다. 난세 때 은사(隱士)들이 입산해서 도학(道學)을 즐긴 곳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큰 개울이 동쪽으로 흘렀기 때문에 대거동이라고 불렀다가 훗날 마을에 수백 석 농사를 짓는 백만장자가 끊이지 않아서 주위 동네 사람들이 장자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장자골에서 동쪽으로 약 1㎞ 떨어진 지수골은 중거리 중앙에 있는 산촌(山村)으로, “서쪽 장자골에서 내려오는 큰 개울물이 골짜기에 가뭄이 들지 않게 해 주는 지혜를 지녔다.”라고 하여 지수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수골은 지수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공자의 고향인 사수의 이름을 따 사수골이라 불리고 있다. 화진계는 배봉의(裵鳳儀)가 1930년 조성한 마을인데, 성주읍의 성산리 차동골에서 남쪽 높은 고개를 넘어가면 첫 번째 마을이다. 처음에는 사철 꽃이 많이 피는 언덕이라고 하여 화전기라 불렀다가 점차 와전되어 화진계 또는 화진기로 부르게 되었는데 지금은 다시 화전기로 부른다. 중터는 장자골에서 동쪽으로 약 3㎞ 정도 떨어진 다소 완만한 평지에 자리 잡은 마을로, 밤실로 가는 길의 중간 지점이라는 뜻으로 중터라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삼한 시대 초기에는 성산가야(星山伽倻) 부족 사회의 진원지 마을이었다. 통일 신라 이후 조선 시대까지 초곡방(草谷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초곡면의 중기동, 화진계, 지수동, 대거동, 사수동(泗水洞)을 합하여 중거동으로 하고 조곡면과 초곡면을 합한 성암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2월 1일 성암면과 용두면을 합쳐서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중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서 방향으로 길쭉한 형태로 발달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북쪽으로 성주읍과 경계를 이루는 대황산(大皇山)[486.5m], 대성산(大星山)[425.4m]이 있고, 남동쪽으로 고원의 분지와 성주-용암 간 굴티 고개 너머 도로를 접하여 성암산(聖巖山)[556.1m]이 자리 잡고 있다.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봉암천(鳳巖川)이 동쪽으로 흘러가면서 형성된 곡저 평야를 따라 경작지와 마을이 들어서 있다.
[현황]
중거리는 용암면의 북서쪽 끝에 자리하여 동부는 선남면 장학리, 남부와 서부는 용암면마월리와 죽전리, 북부는 대가면 칠봉리, 성주읍 대황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64㎢이며, 중거리 1개 행정리에 84가구, 119명[남 73명, 여 4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19세기 말 주희(朱熹)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영당(影堂)과 함께 건립한 자양서당(紫陽書堂)이 있다. 자양서당이 소장한 3종 15책의 전적(典籍)은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 설무성(薛武成)의 아내로 순절한 김열부(金烈婦)의 정려 비각(旌閭碑閣), 전섬봉(全暹鳳)[1727~1774] 이하 조상들의 묘소 수호와 묘제 때 재숙(齋宿)을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경사재(敬思齋), 조선 후기 유학자인 배만평(裵萬平)[1700~?]을 추모하는 동산재(東山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