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592 |
---|---|
한자 | 論山本堂 |
영어의미역 | Nonsan Catholic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조성제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논산부창동성당의 전신.
[개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도 논산 지역 천주교 신자들은 많은 순교를 당하였고, 김수환 추기경의 조부인 김보현이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논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논산 일대에는 일찍부터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옹기점을 운영하거나 화전을 일구며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가꾸어 나가기 시작하여 1884년경에는 삼산공소(성동면 삼산리)와 강경공소(강경읍)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어 1887년에는 갈매울(가야곡면 목곡리), 곰밭(은진면 토양리), 새룰(광석면 사월리), 석교동(성동면 원봉리), 움뜸(현 강경성당 사제관 터) 등지에 6개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이들 공소의 신자 수는 350여 명에 달하였다.
1888년에는 양촌(가야곡면 양촌리), 대하리(성동면 삼산리), 가지매(채운면 심암리) 등 3개 공소가 설립되면서 논산 전역으로 복음이 확대되었다. 그 후 이 공소들은 1893년에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 비에모 신부가 설립한 되재본당(현 고산성당)과 1897년에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베르모렐 신부가 설립한 나바위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변천]
1911년 4월 8일 교황 비오 10세의 소칙서를 통해 조선 대목구로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분리시켜 대구 대목구를 설정하고 조선 대목구를 서울 대목구로 개칭하였다. 이 때 대구 대목구 나바위(화산)본당에서 분리되어 서울 대목구 논산본당이 1921년 6월 말에 설립되었으며 초대 신부로는 황혜중(루블레 헨리코, Henri Philippe Rouvlet) 신부가 임명되었다. 당시 논산의 신자 수는 1,110명이었으며, 공소 수는 15개에 달했다.
1922년 논산시 부창동에 논산본당 부지를 매입하여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1923년 제2대 줄리앙 공베르 신부가 부임하였으며 237.96㎡ 규모의 성당 건물을 신축하였다. 1931년 10월 20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김순초 베다 수녀 외 2명이 파견되었다. 1942년 제3대 박고안 프란치스코 신부가 부임하였다. 1943년 제4대 신원식 루카 주임신부가 부임하였다. 1944년 제5대 황정수 요셉 신부가 부임하였다. 1944년 제6대 조인원 빈첸시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1945년 강경본당이 분당되고, 대건중등강습소를 설립하였으며, 1947년 2월에는 대건중학교로 승격 인가를 받았다. 1948년 제7대 한유리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1949년 제8대 성재덕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1954년 6·25전쟁 때 불타버린 사제관을 신축한 데 이어 1957년 3월 3일 천주교 대전교구에서 가장 먼저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천주의 모후 쁘레시디움), 1959년 3월 12일 천주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합쳐 루르드의 성모 꾸리아를 조직하였다. 1957년 12월에는 음성 나환자들을 위한 양생원(현 성광원)을 광석면에 설립하였다.
1958년 1월에는 마산리본당(현 연무성당)을 분리하였다. 1960년경에는 천지의 모후 루르드 동굴을 논산본당 경내에 조성했으며, 1960년 11월 논산대건중학교와 논산대건고등학교가 신축 교사를 지어 이전하자 비어 있는 목조 2층 건물에 여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1961년 12월 19일 해성여자중학교와 해성여자고등학교(현 쌘뽈여자중학교·쌘뽈여자고등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고 1962년 3월 10일 개교하여 운영권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인계하였다.
1961년 10월 11일에는 현재의 783.29㎡ 규모의 성당 건물을 준공하였다. 1970년에는 132.2㎡ 규모의 관사를 신축하여 임시 사제관으로 사용하였으며, 1975년 10월 1일에는 중앙본당(현 논산대교동성당)이 분리되면서 논산본당에서 논산부창동성당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논산본당 신자 수를 보면, 1922년 1,110명, 1949년 1,672명, 1955년 2,535명, 1961년 2,972명, 1966년 4,252명, 1971년 5,275명이었으며 그리고 논산부창동성당으로 변경되기 직전인 1975년에는 2,545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논산본당이 설립된 이후부터 논산부창동성당으로 변경되기 직전까지 역임했던 역대 주임 신부는 초대 루블레 헨리코(1921. 6~1923. 5), 제2대 줄리앙 공베르(1923. 5~1942), 제3대 박고안 프란치스코(1942~1943), 제4대 신원식 루카(1943~1944), 제5대 황정수 요셉(1944), 제6대 조인원 빈첸시오(1944~1948), 제7대 베르트랑 율리오(1948~1949. 5), 제8대 생제 베드로(1949. 5~1962. 2), 제9대 로페페 베드로(1962. 2~1964), 제10대 손만재 요한(1964~1970), 제11대 김영곤 필립보(1970~1975. 9), 제12대 유성숙 루도비코(1975. 9~1977. 10)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