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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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原州李氏 |
영어공식명칭 | Wonju Yissi|Wonju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길 |
[정의]
이반계(李攀桂)[? - 1392]를 분적 시조로 하고, 이여공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원주이씨(原州李氏)의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고려 문종 대에 병부 상서를 지냈으며, 공을 세워 경흥군(慶興君)에 봉해졌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이신우를 시조로 받들고 경주 이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원주로 삼게 되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도공파(版圖公派), 월성군파(月城君派), 대장군공파(大將軍公派), 시랑공파(侍郞公派) 등 크게 네 계통으로 세계를 잇고 있다.
[입향 경위]
원주이씨로 무주에 처음 이주한 이여공(李汝恭)은 대제학(大提學) 이이(李耳)의 5세손이며, 병조 판서를 지낸 이천익(李天翊)의 증손이다. 1448년(세종 30) 함길도(咸吉道)에 종군(從軍)하여 높은 뜻을 세우고 병조 참의에 올랐다. 그런데, 뜻한 바 있어 벼슬을 그만두고 두 아들과 함께 무주로 들어왔다. 큰아들 이성로(李成路)는 진잠 현감(鎭岑縣監)을 지냈고, 작은 아들 이성도(李成道)는 도사(都事)였다. 자손들은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대대로 살았다.
이이(李耳)의 자는 안지(安之)이며, 호는 송우(松愚)로 고려 후기에 대제학을 지냈다. 포은(圖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에게 수학(受學)하여 학문이 높았으며, 절의를 숭상하였다. 조선 태종은 등극하기 전부터 이이를 등용하려고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신하로서의 예(禮)를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천익은 자가 거원(擧遠)이며, 호는 만포(晩圖)로 효성이 극진하였고, 학문이 뛰어났다. 1411년(태종 11)에 문과에 합격하여 병조 판서를 지냈다.
[현황]
2015년 무주군에서 간행한 『통계 연보』에 의하면, 무주군에 거주하는 이씨는 모두 3,518명인데, 그중에서 원주이씨는 178명이다.
[관련 유적]
무주 지역의 원주이씨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적은 세덕사(世德祠)이다.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원철목[토옥동(吐玉洞)] 마을에 있는 세덕사는 1632년(인조 10)에 건립된 원주이씨 세사(世祠)로, 고려 말 이후 원주이씨 문중 오현(五賢)을 배향하고 있다. 배향 인물은 대제학 송우 이이, 직장(直長) 우송(又松) 이유분(李有芬), 병조 판서 만포 이천익, 호조 참판 청은재(淸隱齋) 이각(李慤), 평안 병사(平安兵使) 송오당(松吾堂) 이계원(李繼原)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