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거쳐 연수구 동춘동의 외암도 사거리와 부평구 부평동의 굴다리 오거리를 잇는 도로. 경원 대로는 인천광역시의 부평구, 남동구, 미추홀구 및 연수구를 S자 형태로 지나는 전체 길이 약 14.45㎞의 도로로, 인천의 주요 대로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의 굴다리 오거리에서 출발하여 산곡동과 십정동을 지나 남동구 간석동으로 이어지며, 미추홀구에서 주안동,...
-
고려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로 인해 붙여진 인천 지역의 옛 명칭. 경원군(慶源郡)은 인천의 옛 명칭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에 근거를 두고 있던 인주 이씨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이허겸(李許謙)의 손자인 이자연(李子淵) 때의 일이었다. 이자연의 세 딸이 모두 문종(文宗)의 비로 뽑히면...
-
초기 국가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였다. 첫째 왕조에 의한 구분, 둘째 시간 길이[遠近]에 의한 구분, 셋째 사회 구조·성격의 발전 과정에 의한 구분이다. 이 가운데, 시간의 길이에 따른 시대 구분, 즉 ‘3분법’으로 고대·중세·근대 시대 구분의 기준을 삼는 방법은 원근을...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9세기 말 신라의 국력이 쇠약해져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하였고 이는 곧 후삼국의 정립으로 이어진다. 이 중 태봉을 세운 궁예(弓裔)[857(?)~918, 재위 901~918]의 장수로 있던 왕건(王建)[877~943, 재위 918~943]이 궁예를 몰아내고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
신라ㆍ고려ㆍ조선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를 포함한 지방 제도. 군현제는 한반도에 일찍부터 전해져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에는 초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주변 소국을 점령할 때마다 군현(郡縣)을 설치한 것으로 나오나, 일반적으로 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통상 한국에 군현제의 등장은 신라 지증왕(智證王)[437~514] 때 주요 군사 지역에 주(州)를 두고 그 장관으로 군주(軍...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고구려 때 지명. 통일 신라 한주 소성현(邵城縣)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다른 기록에는 미추(弥鄒, 彌鄒) 혹은 미추홀(彌鄒忽)이라고도 나온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주몽(朱蒙)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류(孺留)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는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
비류가 도읍지로 정했던 지역.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그의 형인 비류는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였는데, 형인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고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추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고 미추홀의 중심 유적으로 믿어지는 것이 문학 산성이다. 하지만 문학 산성은...
-
신라 때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한주(漢州)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으나, 진흥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 소성현(邵城縣)으로 개칭되었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九州)로 개편하였고 5소경(五小京)을 정비하였다. 신문왕의 지방 제도...
-
선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역사적 내력.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 일대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27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옛 소년 교도소 서쪽 언덕 위에서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고인돌을 통해 이미 선사 시대부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신라 때 한주(漢州)에 속한 군의 하나. 율진군은 본래 고구려 율목군(栗木郡)이었는데,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며, 영현은 곡양현(穀壤縣), 공암현(孔巖縣), 소성현이다. 율목군은 동사힐(冬斯肹)이라고도 하였다. 현재의 경기도 과천시이다. 통일 이후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685년(신문왕 5) 신라는 전국을 9주로 개편하였고 5소...
-
고려 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를 세거지로 하는 인천 이씨(仁川 李氏)를 귀족의 반열에 올린 중시조. 인천 이씨[인주 이씨(仁州 李氏)]의 중시조이다. 나중에 반란을 일으킨 이자의(李資義)와 이자겸(李資謙)은 이허겸(李許謙)의 현손(玄孫)이다. 인주 이씨는 본래 김해 허씨였으나 그의 6대조인 허기(許奇)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피난하는 현종을 호종한 공으...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인문 지리는 특정 지역의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들이 생활하며 만들어 낸 여러 가지 현상들이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나누어 만든 위치와 면적, 행정 구역의 변화, 인구 변화, 경제, 사회, 교통, 문화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區)로, 동쪽으로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쪽으로는 인...
-
고려 시대 인천광역시 지역의 옛 이름. 인주(仁州)는 인천의 옛 이름으로, 고려 인종 때 어머니 순덕 왕후(順德王后)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과거 숙종 때 소성현(邵城縣)을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킨 것을 다시 승격시킨 것이었다. 이후 인주라는 명칭은 이자연(李子淵)[1003~1061], 이자겸(李資謙)[?~1126] 등 고려 전기 외척으로서 세도를 휘두른 이른바 인주 이씨(仁州李...
-
이허겸(李許謙)을 시조(始祖)로 하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세거 성씨. 인천 이씨(仁川 李氏)는 이허겸을 시조로 하여 고려 시대부터 인천광역시 지역에 세거하던 성씨이다. 고려 시대 문종(文宗)에서 인종(仁宗)까지 7대에 걸쳐 5명의 태후(太后)와 5명의 왕후(王后)를 배출하여 인천의 읍호(邑號) 승강(昇降)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세조(世祖)...
-
1993년에 이훈익이 쓴 향토지. 인천 지역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지명 변천이 심했던 곳이다. 특히 조선 후기 수동적인 개항 이후 외래문화가 들어와 한바탕 큰 변화를 겪었고, 지명 변천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큰 계기는 1914년 일제에 의해 추진된 지방 행정구역 개편이었다. 일제가 전국적으로 자연 촌락 이름을 한자화하면서 유래에 대한 고찰 없이 즉흥적으로 훈차(訓借), 음차(...
-
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
조선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의 지방 관아 또는 행정 구역 이름. 고려 시대 수주(水州)의 한 속현이었던 소성현은 인주 이씨가 왕실의 외척이 되면서 비로소 인주(仁州)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고려 말에 이르면 경원부(慶源府)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경원부는 1392년(공양왕 2)에 경기도를 확장하고 좌도와 우도로 도를 나눌 때, 양광도(楊廣道)에서 경기로 편...
-
신라 말, 고려 초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해당하는 지역의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제도의 정비와 기구의 확대로 왕권의 통치권을 강화하던 왕실도 신라 중대 말에 이르러서는 진골 귀족 세력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경덕왕 대에 전국 주·군·현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고, 당나라 제도를 기준으로 하여 각 관서의 관서명과 관직명을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