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있는 고개는 다음과 같다. 기당재는 문학 초등학교 북쪽에서 승학산을 넘어 주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에 번개가 치면 비가 온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대처닛 고개는 학익동에서 문학동으로 넘어오는 데 있는 고개로, 본 이름은 도천 고개이다. 대처닛 고개의 서쪽 아래에 도천단(禱天壇)이 있어...
-
초기 국가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였다. 첫째 왕조에 의한 구분, 둘째 시간 길이[遠近]에 의한 구분, 셋째 사회 구조·성격의 발전 과정에 의한 구분이다. 이 가운데, 시간의 길이에 따른 시대 구분, 즉 ‘3분법’으로 고대·중세·근대 시대 구분의 기준을 삼는 방법은 원근을...
-
신라ㆍ고려ㆍ조선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를 포함한 지방 제도. 군현제는 한반도에 일찍부터 전해져 『삼국사기(三國史記)』 기록에는 초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주변 소국을 점령할 때마다 군현(郡縣)을 설치한 것으로 나오나, 일반적으로 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통상 한국에 군현제의 등장은 신라 지증왕(智證王)[437~514] 때 주요 군사 지역에 주(州)를 두고 그 장관으로 군주(軍...
-
산(山)은 지표면이 주위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을 말한다. 대부분의 산들은 독립적으로 혼자 우뚝 솟지 않고 여러 산들이 연이어져 맥(脈)을 이루며 줄지어 있다. 한반도의 중서부 해안에 위치한 인천은 높은 산지가 적어 구릉지나 평지가 주로 전개돼 있으며 큰 하천이 발달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 인천광역시의 산지는 대체로 남북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인천광역시를 남북 방향으로...
-
삼한(三韓)의 하나로, 기원전 1세기~기원후 3세기경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포함해 한강 유역과 지금의 충청도·전라도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 집단의 통칭.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에는 마한(馬韓) 지역에 위치한 54개 소국의 명칭이 열기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家)였다고 한다.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곳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를 포함한 인천 지역의 고구려 때 지명. 통일 신라 한주 소성현(邵城縣)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다른 기록에는 미추(弥鄒, 彌鄒) 혹은 미추홀(彌鄒忽)이라고도 나온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주몽(朱蒙)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류(孺留)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는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 경기장 인근에서 발견된 백제 토기 산포지. 인하 대학교에서 1999년에 실시한 문학산 일대 문화 유적 지표 조사와 2000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백제 토기 산포지이다. 두 건의 조사에서 모두 12점의 백제 토기가 출토되었다. 백제 토기가 수습된 구릉의 동쪽 면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자연 환경과 연관하여 볼 때 백제인들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문학 산성의 건립 연대는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고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잘 알 수 없다. 다만, 문학 산성 안팎에서 삼국 시대 백제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으며 문학산 동쪽 구릉 지대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 유적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문학산 일대에 청동기 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확실하며, 문학산 주변에서 초기 백...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전해지는 백제 건국 신화에 대한 설화. 비류와 온조는 각각 미추홀과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하지만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비류는 땅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말라 살기에 적당치 않았다. 비류는 비류국을 세웠으나 13년 만에 멸망하여 십제에 병합되었다. 1999년 8월에 인하 대학교 국문학과 설화 채집반이 문학산 일대의 전설과 민담의 수집을 했다. 당시 지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사진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옛 인천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그 기원은 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교동과 문학동을 중심으로 인천도호부 관아와 인천 향교가 있던 곳으로 선비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문화·예술은 상당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문화유산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은 문화유산 활성화를 위하여 문화재청과 인천광역시청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미추홀구의 사업명은 생생 문화재 사업과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으로 생생 문화재 사업은 2013~2019년까지 7년간,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은 2014~2019년까지 6년간 선정되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유형...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상징하는 마스코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역사적 지명인 미추홀 왕국의 주인공 비류를 모티프로 캐릭터화하였다. 미추홀을 사랑하여 왕국을 세우고자 했던 비류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지키는 수호신 마스코트 ‘미추’로 설정하여 2000년 5월 1일 제10회 구민의 날을 기념하여 공포하였다. 미추는 역사와 현재를 통해 인천의 구심점으로서 도심의 새롭고 깨끗한 이미지를...
-
비류가 도읍지로 정했던 지역. 백제의 시조인 온조와 그의 형인 비류는 고구려로부터 남하하였는데, 형인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고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비류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은 초기 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미추홀의 위치는 일반적으로 지금의 인천광역시로 비정되고 미추홀의 중심 유적으로 믿어지는 것이 문학 산성이다. 하지만 문학 산성은...
-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포함되었던 고대 국가. 678년간 존속한 백제의 역사는 시조 온조왕에서 사반왕까지의 소국-소국 연맹 시기, 고이왕에서 계왕까지의 5부 체제 시기, 근초고왕 이후의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가 갖추어진 이후 백제의 역사 전개는 한성 시대(漢城時代) 전기[근초고왕~아신왕],...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 불교는 삼국 시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신앙과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면서 발전하였다. 삼국 중 불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전진(前秦)의 순도(順道)에 의해 불교가 공인되었다. 그러나 이미 유학이 유입되고 교육 기관인 태학이 성립되어 있어 불교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
고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근거지로 삼았던 백제 시조인 온조왕(溫祚王)의 형. 『삼국사기』에 따르면 비류가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가 없어서 다시 위례에 돌아와 보니 도읍은 안정되고 백성들도 평안하므로 마침내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다가 죽었고,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에 귀부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추측할 수 있다....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과 학익동에서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으로 이어지는 고개. 사모지 고개는 백제 시대에는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도 이 고개를 넘어 능허대(凌虛臺) 한나루에서 배를 탔다고 전해지는 만큼 인천 일대에서 주요한 교통로였다. 사모지 고개는 삼호현(三呼峴)에서 비롯한 것이다. 4세기경 전성기를 이룬 백제(百濟)의 근초고왕(近肖古王)은 영토 전쟁 중에 고구려(高句麗)의...
-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백제, 신라가 중국으로 가기 위해 이용했던 서해의 항로. 백제가 중국과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근초고왕 때의 일이다. 백제는 372년(근초고왕 27)과 그 이듬해에 중국의 진(晋)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이는 백제가 근초고왕 대에 이르러 마한의 잔여 세력을 복속하고 한반도 서남부의 대표적 세력으로 자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공식적인 외교 관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알찬 박물관이 여럿 있다. 박물관은 그 나라와 그 지역의 정치, 문화, 사회, 생활사와 관련된 유물과 자료 등이 결집되어 있는 곳이다. 오늘날의 박물관은 본래의 기능 외에도 교육, 문화 예술 공연 등 교육과 문화 예술의 중심지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다양한 테마 박물관이 있다. 인천광역시민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
-
고대 초기 국가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포함하는 미추홀(彌鄒忽) 지역에 터를 잡은 백제 건국 시조 비류(沸流)·온조(溫祚)의 어머니. 소서노(召西奴)는 백제를 건국한 비류(沸流)와 온조(溫祚)의 어머니로 건국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2008년 간행된 『역사 속의 인천 여성』에서 소서노는 177명의 인천 여성 중 한 명으로 뽑혔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의 시...
-
선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역사적 내력.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는 인천 일대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곳 중 하나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27년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옛 소년 교도소 서쪽 언덕 위에서 조선 총독부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고인돌을 통해 이미 선사 시대부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출신이거나 연고를 둔 자로서 남편을 잘 섬기고 절개를 지킨 여자. 열녀(烈女)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貞操)를 지켰거나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守節)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열부(烈婦), 절부(節婦), 절녀(節女), 정녀(貞女)로도 불린다. 열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 진평왕 때의 설씨녀(薛氏女) 이야기, 백제 개루왕...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궤에 따라 말[馬]을 옮겨가며 승부를 겨루는 놀이. 윷놀이는 한국인의 놀이 중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놀이로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궤에 따라 말을 옮겨가며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이 놀이는 주로 겨울철에 많이 행하는데, 특히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대보름날까지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산괴(山塊)의 동쪽 끝 비탈면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 유적. 인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문학 경기장역에서 하차하면 인천 문학 경기장[인천 월드컵 경기장]이 나오는데 주경기장이 바로 ‘도랑 모양’[구상(溝狀)]의 유구가 있던 터이다. 유적의 위치는 행정 구역상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 산5-1번지에 해당한다. 인천광역시의 미추홀구와 연수구의 경계를 이루는...
-
인천광역시의 서남부에 위치한 구. 구(區)는 서울특별시, 5대 광역시 및 인구 5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설치되는 하부 행정 구역으로, 국가가 위임한 사무를 처리하는 보통 행정 구역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는 도화동(道禾洞), 숭의동(崇義洞), 용현동(龍現洞), 학익동(鶴翼洞), 주안동(朱安洞), 관교동(官校洞), 문학동...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제기를 가지고 발로 차는 놀이. 제기차기는 엽전이나 쇠붙이에 얇고 질긴 종이나 천을 접어서 만든 제기를 발로 차며 노는 놀이로 주로 겨울철에 많이 하였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주로 하였는데, 놀이의 방법은 단순히 발로 차는 방법부터 손과 발 등을 이용하여 즐기는 방법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제기차기는 고대의 공차기인 축국(蹴鞠)의 발달 과정에서 분리되었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儀禮).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면 제례는 사시제(四時祭), 시조제(始祖祭), 선조제(先祖祭), 예제(禰祭), 기일제(忌日祭), 묘제(墓祭)로 구분된다. 사시제는 4계절의 중월(仲月)[각 계절의 가운데,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4대 조상까지를 정침(正寢)[제사를 지내는 몸채의 방]에서, 기일제는 4대 조상...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철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어 쓴 시대. 고고학에서의 시대 구분은 19세기 덴마크 국립 박물관의 C. J. 톰센[1788~1865]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1836년에 간행된 덴마크 국립 박물관 안내 책자에서 무기와 도구를 만드는 데에 사용된 도구에 따라 돌, 청동, 철의 순서로 계승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후 그의 제자인 V. 보르사에[1821~1885...
-
19세기에 제작된,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수록된 지도책.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靑邱圖)』의 이본은 현재까지 9종이 알려져 있는데, 『청구 요람(靑丘要覽)』도 그중 하나이다. 남북으로 총 29층, 동서로는 22판으로 구분되어 있다. 『청구 요람』에는 김정호의 ‘청구도 범례(靑邱圖凡例)’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본 지도책과 대부분 동일하여 최한기(崔漢綺)가 소장하고 있...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예전 신석기 시대를 뒤이어 청동기를 사용한 시대. 청동기 시대는 본격적인 농경 사회의 시작, 민무늬 토기의 등장, 간석기의 본격적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다른 지역의 청동기 시대와는 달리,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 후반부가 되어서야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인천에서 청동기 시대 유적 조사는 문학산 일대의 고인돌에 대한 수습 조사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땅에 관한 이론. 풍수지리는 한국의 공간적인 전통문화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뿌리가 깊고, 문화 경관의 입지나 주거지 선정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미쳐 왔다. 자연 환경의 질서와 이치를 생명의 원리로 인식하고 이를 논리 정연한 학문적 체계로 이해하며, 땅에 대한 이치를 분석·평가해 이를 과학으로 정립하려는 견해가 바로 풍수지리이다. 풍수라는 단어는 장풍득수(藏風得...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도화 인터체인지 교차로에서 출발하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제2 경인 고속 도로 교차점을 경유하여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능허 대로 교차점까지를 연결하는 도로. 옛 백제 사신이 중국과 통교하기 위해 출발하던 한나루를 기념하기 위해 한나루로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나루로는 연장 6,100m, 왕복 4차선 도로이다. 한나루로의 건립 경위 및 완공일 등은...
-
신라 시대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조직. 원래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을 포함하는 한산주 지역은 백제의 초기 도읍지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 권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475년(개로왕 21) 백제 수도의 함락에 따라 고구려가 이곳에 한산군을 설치하였다. 그 후 551년에 백제 성왕(聖王)이 다시 이 지역을 회복하였으나,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