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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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鎭達 |
영어음역 | Ha Jindal |
이칭/별칭 | 영서(英瑞),역헌(櫟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수덕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영서(英瑞), 호는 역헌(櫟軒). 부친은 하해호(河海浩)이며, 생부(生父)는 하수호(河壽浩)이다.
[생애]
하진달(河鎭達)은 1778년 진주 단목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특해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았으며, 부모를 섬기는 데는 얼굴빛을 밝게 하고 정성을 다하였다. 훗날 부모상을 다해서는 자식의 예를 다하기도 했다. 선조들의 유업을 후세에 알리는 일에 남다른 관심과 정성을 기울였다. 한평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진달이 세상을 떠나자 선비들은 한목소리로 “세상에 쓰일만한 재주를 가졌는데, 쓰이지 못해 안타깝다.”라고 했다.
[활동사항]
고려 충절신 시랑공 하공진(河拱辰)으로부터 고조, 증조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남긴 글이나 행적 등을 역사책과 야사책 등에서 일일이 찾아 빠진 것을 보충하여 『추모록(追慕錄)』 4권을 완성했다. 6대조 창주(滄洲) 하증(河憕)을 모신 임천서원(臨川書院)이 피폐해지자 서원에 모신 선현의 문중들과 상의하여 강당을 중건하고 문과 누각을 만들었다.
또 선조인 호정(浩亭) 하륜(河崙)의 유업을 기리는 일에 남다른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 전쟁의 와중에 불타버린 하륜의 문집인 『호정집(浩亭集)』을 다시 편찬했으며 하륜의 학덕을 기려 세운 재실인 오방재(梧坊齋)를 중건하기도 했다. 하륜이 지은 촉석루, 봉명루, 진주객사 기문이 걸려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이를 제작해 다시 원위치에 걸고 「촉석루중현하문충공구기감음(矗石樓重懸河文忠公舊記感吟)」·「봉명루중현하문충공구기감음(鳳鳴樓重懸河文忠公舊記感吟)」·「객사중현하문충공구기감음(客舍重懸河文忠公舊記感吟)」 등의 시를 지었다.
[학문과 사상]
오방재와 검암서숙(黔巖書塾) 등을 중건해 후학들을 가르치며 학문 정진에 힘을 기울였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학문의 깊이가 있었으며, 소문을 듣고 오방재로 찾아오는 후학들이 많았다고 한다.
[저술]
문집으로 『역헌집(櫟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