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파리
-
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면. 고군면(古郡面)은 오래된 군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백제 때 고군면 고성리에 진도군의 관부를 두었고, 고려 때도 고성리에 진도군의 치부를 두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촌락이 형성되었다. 백제시대 현재의 진도군 고군면 일대는 인진도군(因珍島郡)으로 진도에서 유일한 군이었다. 667년부터 687년에 걸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진도군은 진도현으로 격하되어 무...
-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용장마을에서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며, 용장마을 이장인 곽재설(남, 64세) 씨와의 직접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관청골[골] 삼별초 당시 삼별초군의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구서당터[鄕校] 진등 지나서 있는데, 옛날에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노시난골[골] 고려장이 있었다고...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속하는 행정리. 이 마을의 주민은 본래 죽리(竹里)라는 마을에서 거주하였는데, 인근 밤나무골이란 곳에 하율리가 있어서 두 마을의 세력다툼으로 죽리마을은 현 내동으로 자리를 잡고, 밤나무골의 하율리는 과거 바다 만 건너편인 현 하율리로 이사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진도 용장성 산릉과 연결되는 제봉[150m] 남쪽 산록에 배산임수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속하는 행정리. 길옆에 논이라는 의미가 한자화하여 도론으로 변한 것이다. 진도 용장성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바로 밑에 있는 마을로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 최초로 경주이씨가 입촌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계안산암질 화...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속한 행정리. 고려조에 현재 향동 일대에 목장이 있었는데 역에서 사육하는 말을 마산리 해안에서 육지로 반출하였기로 거기를 ‘마재보(馬載步)’라 했다는 연유로 마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형성은 백제 말부터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리, 마산리, 황조리 일부와 고일면의 오상리, 원포...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위치한 나루. 벽파나루는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진도에서 가장 번창했던 나루로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와 해남군 황산면 옥동 삼지원(三持院) 사이 2.8㎞를 연결하고 있다.『옥주지(沃州志)』에 의하면 벽파나루에서 해남군 화산(花山), 영암군 송지(松枝), 제주도 등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1272년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항전할 때 벽파나...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벽파정(碧波亭)이 있었으므로 벽파정 또는 벽정(碧亭), 벽동(碧洞)이라 하였다. 벽파적이 벽파장으로 와전되었으며, 뱀파장, 별파장 등도 모두 벽파정의 와전이다. 벽파는 해변의 벽도를 미화해서 붙인 이름이고, 벽파항이라고도 한다. 1500년경 형성되어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벽파마을에서 매년 설날, 정월 대보름, 추석에 당집의 당할아버지께 올리는 마을제사. 벽파리는 본래 전라남도 진도군 고일면 지역으로서, 벽파정이 있어서 벽파정, 또는 벽정이라 불렸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동리, 벽동리와 군일면의 용장리를 병합하여 벽파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고,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항구. 벽파항은 진도군과 해남군을 연결하는 항구이다.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 있는 울돌목은 진도군과 육지를 연결하는 가장 가까운 해협이다. 그러나 울돌목은 조류 속도가 빨라 육지와의 연결 항로로 부적합하였다. 그래서 벽파항은 진도대교(珍島大橋)가 건설되기 전까지 진도군과 해남군을 연결하는 가장 번창한 항구였다. 벽파리는 해변에 핀 벽도(碧桃)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분토가 나므로 분톳골 또는 분토라 하였다. 현풍곽씨 목사공파 후손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사리, 동산리, 일부와 군이면의 월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분토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의 고두산(高頭山)[252m]이 동서로 걸쳐 있으며, 동쪽은 철천산[1...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에 속한 행정리. 1789년 호구총수기록에는 상가흥(上嘉興)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때 가흥현의 위쪽 마을 이란 뜻이다. 상가마을은 1437년 양경군수가 진도군수가 되어 설군 작업을 할 때 따라온 조카 양진회(梁進淮)가 설촌했다고 전해온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가리를 병합하여 송산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연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벽파리의 행정리인 연동리 마을 앞 논과 밭, 민가에 10여 기가 흩어져 있다. 양명희씨 집 안에 두께가 300㎝가 넘는 거석이 놓여 있는데, 일명 ‘천지바위’라고도 부른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조사·보고되었다. 일부 덮개돌이 파괴되고 아래쪽이 매몰되어 있어 확실한 형식을 알 수 없으며, 전체...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의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1574년에 형성된 마을에 대한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검산곶에서 유래한 ‘검사골’이 고유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예전에 마을 남쪽에 있는 연동저수지에 연꽃이 많아서 연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574년에 형성된 것으로 보며, 마을의 입향조는 밀약박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망바우 쪽 마을 앞에 수백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어 오류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청해진에 근거하였을 때 마을 동쪽 소바우에 갈영월이라는 사람이 장보고 명을 받아 최초로 입주하였다는 것과 삼별초가 제주도로 쫓겨 간 뒤 진부리의 8세대는 수산물의 소득으로는 생활이 곤란하다 하여 고래나 동아새 등에...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오하리가 있는 오산리의 오산이라는 말이 오산(烏山)하는데서 동음으로 썼을 것이고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다섯 오자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오상리의 위 상(上)자는 마을이 커서 오상리와 오하리 둘로 나뉘면서 윗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고인돌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1400년쯤에 창녕조씨인 충신이...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용장산 밑이 되므로 용장골 또는 용장이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장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군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선황산이 있으며, 남쪽에는 상봉, 일출봉 등이 있다. 농경지의 농업용수로 용장저수지의 물을 이용하고 있다. 군내면의 동부에 있으...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지수리의 확실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한자어로 진도의 명주인 홍주를 만드는 지초 지(芝)와 물 수(水)를 의미한다. 본래 지수리가 속한 오산리는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수리, 오상리, 오하리의 각 일부와 고이면의 고성리, 황조리의 각...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송산리(松山里)와 세등리(細登里)를 나누는 고갯길. 챙재 동쪽과 서쪽에는 구릉이 펼쳐져 있으며, 동쪽으로 철천산이 위치한다. 남쪽과 북쪽으로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읍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고개였으나 2003년 진도터널이 뚫린 후에는 이용이 줄었다. 챙재에서는 18번 국도와 801번 지방도로가 만난다. 챙재에서 진도읍까지는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