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
유전을 시조로 하고, 유신주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강릉유씨(江陵劉氏)의 시조 유전(劉荃)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40세손이다. 중국 송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참소를 입어 1082년(문종 36)에 동료 학사 7명과 고려에 들어와 경주 기계현(杞溪縣)에 정착하였다. 유전의 세 아들이 각기 본관을 달리한다. 첫째 유견규(劉堅規)의...
-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강주(降州)는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초기 제정된 이름이다. 995년(성종 14)에 지방관으로 자사(刺史)를 파견하였고, 1005년(목종 8)에 그것이 폐지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청주목에 소속되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1, 청주목(淸州牧)조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
-
충청북도 진천군의 건물, 구조물 등을 쌓아 만드는 일 또는 사람이나 물품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을 머물다 마지막에 임하는 행위 모두가 건축물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인간 대부분은 평생을 낮에는 사무실에서 밤에는 주택에서 머문다. 이 모든 곳이 건축물이다. 예부터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불리는 진천은 충청북도 중부에 자리 잡고 있다. 고구려시대에...
-
소벌도리를 시조로 하고, 최천주·최건주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최씨의 대종(大宗)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신라 6촌 중 고허촌(古墟村)[지금의 경주 중심부]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이며 신라의 석학(碩學)인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최치원·최승우(崔承祐)·최언위(崔彦僞) 등 세 사람은 ‘삼최(...
-
918년부터 1392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고려는 건국 후 후백제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특히 고려와 후백제와의 대결은 양국의 접경지대인 보은·회인·문의·청주·제천·충주 일대의 충청북도 지역과 상주·김천·성주 등지의 경상북...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진암리 사곡마을에 있는 벼랑. 구정벼루는 구정과 벼루로 나뉜다. 구정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은데, 구정벼루를 비롯하여 구정골·구정들·구정목·구정봉 등에서 보듯 지명의 전부 요소로 비교적 적극적으로 쓰인다. 뜻은 대체로 아홉 개의 샘[九井], 아홉 개의 정자[九亭], 구정[좌우 양쪽에 폭이 넓은 줄을 걸고 한쪽에 열여덟 사람씩 두 줄로 메는...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진암리에서 구정승 벼루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주민 최상주[남, 56]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97년 서원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출간한 『진천의 민속』에 수록하였다.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진암리에 구정승 벼루라는 곳이 있다. 진암리에는 우뚝 솟은 9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곳에...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장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망북정(望北亭)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서 진천읍으로 가는 도로변의 월호마을[다람비마을] 끝자락의 널찍한 바위 위에 걸쳐 있다. 망북정은 조선 성종 때 숭의전참봉(崇義殿参奉)을 지낸 김자(金磁)가 사직한 뒤 낙향하여 처음 지었다. 정자 내부에는 안형렬(安亨烈)이 쓴 망북정 중건기가 걸려 있는데...
-
조선 전기 문신 이승소가 진천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이승소(李承召)[1442~1484]는 조선 성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문신이자 학자로, 신숙주(申叔舟) 등과 함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펴내기도 하였다. 「산 형세 돌고 돌아」는 이승소가 진천현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한시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혼자서 책상...
-
고려 성종 때 별호로 제정된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옛 이름. 신라 말에 진천 지방의 유명한 산으로 상산(常山)이 있었고, 이 산에 세워진 사찰이 상산사였다. 진천의 명칭이 통일신라 이래로 자주 바뀌었고, 특히 후삼국시대에 들어서도 두 차례나 바뀌었음을 볼 때 당시 진천의 명산인 상산이 이 지역의 명칭으로 병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말부터 불려오던 ‘상산’이라는 지명...
-
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해 온 유력 성씨. 진천군의 성씨 내력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이다. 진천현의 토성(土姓)으로 한(韓)·임(林)·송(宋)·심(沈)·유(庾)·미(彌)·고(高)·양(梁)·하(河)·장(張) 등 10개 성씨가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씨조에도 같...
-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
-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
변안렬을 시조로 하고, 변상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원주변씨(原州邊氏)는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따라 입국한 무신 변안렬(邊安烈)을 시조로 하고, 조선 성종 때 변상(邊詳)이 진천군 진천읍 상신리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변안렬은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를 배종하고 귀국하여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을 격퇴시켜 이등공...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중원도는 995년(성종 14)에 설치된 10도(道) 가운데 하나로, 고려시대 진천이 소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지방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를 통하여 중앙 집권화를 굳히려는 목적에서 제정되었다. 고려는 후삼국 통일 이후 국가체제 정비에 나서게 되었고, 그 결과 983년(성종 2)에 12목(牧)을 설치하였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진천군 관할 행정 기관. 진천군청은 진천군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고구려시대에 금물노군(今勿奴郡), 만노군(萬弩郡), 수지(首知), 신지(新知)라 했으며 통일신라 때에는 흑양군(黑壤郡)이라 고치고 그 후 황양군(黃壤郡)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이르러 강주(降州)라 한 후 다시 진주(鎭州)라 개칭하고 성종...
-
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하고 있는 유력 성씨들의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으로의 상속제도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
황충준·황석기·황양충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창원황씨(昌原黃氏)는 본관을 같이하면서도 계보를 달리하는 세 파가 있다. 고려조에서 문하시중을 지낸 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고 후손 황신(黃信)을 1세조로 하는 이른바 토황(土黃)으로 일컬어지는 시중공파(侍中公派), 공희공(恭僖公)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는 이른바 당황(唐黃)이라고 일컬어...
-
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속해 있던 행정 구역. 청주(淸州)는 919년(태조 2)에 청주로 이름 붙여졌고 983년(성종 2)에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했을 때 청주가 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 후 1018년(현종 9) 8목으로 정리되었을 때도 청주목(淸州牧)은 충청권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신라 말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 호족이라 불리는...
-
손순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평해손씨(平海孫氏)는 밀양손씨(密陽孫氏)·경주손씨(慶州孫氏)와 동원으로, 시조는 손순(孫順)이다. 손순의 손자 손익담(孫翼淡)은 평해군(平海君)에 봉해졌고, 손익담의 19세손인 손인량(孫仁亮)이 고려 원종 때 평장사로 임연(林衍)의 난을 평정하고 기성후(箕城候)에 봉해졌다. 기성은 평해의 옛 이름이므로, 후손들이...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권력, 즉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행정은 국민 또는 주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 외에도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사회 간접 시설의 제공, 학교·도서관·공원 등 문화 시설의 확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