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04 |
---|---|
한자 | 月浦里琴池慶州鄭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집성촌 | 월포리 금지 경주 정씨 집성촌 -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 |
---|---|
성격 | 동족 마을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상전면 월포리에 있는 경주 정씨 집성촌.
[명칭 유래]
월포리는 본래 진안군 탄전면 지역으로 성주봉 밑 단밭에 있으며, 앞으로 금강의 흐르는 모양이 반달처럼 생겨 월포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쟁토리(爭土里), 대구평(大丘坪), 양지리(陽地里), 금단리(琴丹里), 항동(項洞), 신흥리(新興里)를 병합, 월포리라 하여 상전면에 편입되었다. 용담댐 건설로 금지와 양지만 남고 나머지 마을은 수몰되었다.
금지 마을은 금단이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시대엔 도읍지였으며, 지금도 사창(社倉)골, 말마장, 장자골 등의 골짜기 이름이 있다. 마을 주위의 산이 흡사 거문고의 형국과 같다고 하여 검단이라고도 불렸고, 밭이 많다고 하여 한때는 하담밭이라고도 부르다가 1942년 저수지가 생기면서 금지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금지 마을은 1500년경 경주 정씨가 거문고 금자가 들어있는 곳을 찾아 들어온 뒤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자연 환경]
높이 260m에 위치한 금지 마을은 마을 뒤고 높이 500m 내외의 머구재를 비롯한 능선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무재골에서 발원한 작은 개울이 흘러 용담호로 합수한다. 마을 앞 개울을 중심으로 전답이 넓게 펼쳐져 있다.
[현황]
금지 마을은 1960년대만 해도 79가구나 되는 마을이었으며, 이농 현상과 용담댐 건설로 마을 일부가 수몰되면서 2011년 기준으로 41가구만이 남아 있다. 근래에 들어서 집성촌의 성격이 약해지기를 하였지만 여전히 경주 정씨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