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48 |
---|---|
한자 | 孝懿王后 |
영어음역 | Hyouiwanghu |
영어의미역 | Queen Hyoui |
이칭/별칭 | 효의(孝懿),예경 자수(睿敬慈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청풍 출신으로, 조선 시대 제22대 왕인 정조의 비.
[가계]
본관은 청풍(淸風). 아버지는 좌참찬 김시묵(金時默)[1722~1772]이고, 어머니는 당성부부인(唐城府夫人) 남양 홍씨(南陽洪氏)로 찬성에 증직된 홍상언(洪尙彦)의 딸이다. 김시묵은 딸이 왕비로 진봉(進封)되면서 영의정과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에 추증되었다.
[활동 사항]
효의왕후(孝懿王后)[1753~1821]는 1753년(영조 29) 12월 13일 해시(亥時)에 가회방(嘉會坊)의 사저에서 출생하였다. 왕후는 태어나서부터 순수하고 돈후(敦厚)하였고, 성장하면서 효성과 공손함이 더욱 독실하여 어른들이 가르치는 말씀을 순종하였으므로, 그 행실이 자연히 법도에 맞았다고 한다.
1762년(영조 38) 10세 때 세손빈(世孫嬪)에 책봉되었고, 정조[1752~1800, 재위 1776~1800]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1735~1815]를 잘 섬겨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슬하에 소생이 없어 1790년(정조 14) 수빈(綏嬪) 박씨가 아들을 낳자 왕세자로 삼았다. 천성이 공손하고 온후하여 60세가 넘어서도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와 혜경궁 홍씨를 공양하여 칭송을 받았다.
일생을 검소하게 지냈으며, 수차에 걸쳐 존호(尊號)를 올렸으나 모두 거절하였고, 1820년(순조 20) 68세가 되어 여러 대신들이 하수연(賀壽宴)을 베풀고자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1821년(순조 21) 초봄부터 몸이 불편하다가 한 달이 지나자 점차 병세가 악화되어, 3월 9일 기미(己未)에 창경궁 자경전(慈慶殿)에서 69세로 승하하였다.
[묘소]
능은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1번지에 정조와 합장한 건릉(健陵)이다. 건릉은 정조의 아버지로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사도세자]와 헌경왕후(獻敬王后) 홍씨의 합장묘인 융릉(隆陵)과 함께 있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왕비의 승하 이후 신하들이 효의(孝懿)의 시호와 예경자수(睿敬慈粹)의 휘호(徽號)를 올리고, 건릉(健陵)에 합장할 것을 의논하였다. 『순조실록(純祖實錄)』에 효의왕후의 애책문(哀冊文), 효의왕후의 행장(行狀), 천릉지문(遷陵誌文), 천릉표석음기(遷陵表石陰記)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