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동 가마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516
한자 中山洞-
영어공식명칭 Jungsan-dong Kiln Site
이칭/별칭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 671-1|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산 48-1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장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11월 1일 - 중산동 가마터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차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12월 31일 - 중산동 가마터 영남문화재연구원 1차 발굴 조사 종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 9월 20일 - 중산동 가마터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차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10월 31일 - 중산동 가마터 영남문화재연구원 2차 발굴 조사 종료
소재지 중산동 가마터 -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 671-1|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산 48-1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성격 가마터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과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걸쳐 있는 삼국 시대 가마터.

[개설]

중산동 가마터는 삼국 시대 토기 생산 유적이다. 중산동 고분군에 인접해 있는 관계로 ‘중산동 가마터’로 부르기도 하며, 지적도상 행정 구역에 따라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유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변천]

중산동 가마터는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토기 생산이 이루어진 공방으로 추정된다.

[위치]

중산동 가마터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과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의 경계 지점에 있는 해발 고도 90m 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한다. 남쪽으로 성암산, 안산 등의 산지가 있고, 남부 산지의 북록에는 여러 갈래의 능선과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서쪽으로 욱수천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 금호강의 지류인 남천에 합류하며, 안산과 성암산 사이의 계곡부에서 흘러내린 유수에 의해 시지 선상지가 형성되어 있다. 용수 확보가 용이한 데다가 화목을 다량으로 구할 수 있어 가마 운영에 유리한 조건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중산동 가마터는 1976년부터 학계에 알려졌으며, 발굴 조사는 영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차례 이루어졌다. 1차 발굴 조사는 시지택지개발지구의 남쪽 경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구 삼덕동~시지택지간 도로 건설계획’에 따라 1998년 11월 1일부터 1998년 12월 31일까지 실시하였다. 이후 노인 전문 병원 신축 계획과 관련하여 2000년 9월 20일부터 2001년 10월 31일까지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2차 발굴 조사에서 구릉 전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 3동, 삼국 시대 토기 가마 38기, 토기 가마와 관련된 수혈 유구·폐기장·구상 유구 73기, 삼국 시대 돌방무덤 18기, 돌덧널무덤 3기, 움무덤 1기,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 457기, 조선 시대 독널무덤 2기, 매납 유구 2기 등 총 597기가 조사되었고, 2,22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가마가 2~3기씩 군집을 이룬 것으로 보아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중산동 가마터에서 가마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동남쪽 사면 일대의 토기 가마 5기가 지하에 원상으로 보존되어 있다. 상태가 양호한 토기 가마 1기는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중산동 가마터는 삼국 시대 경산 지역 토기 생산과 관련한 중요한 연구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중산동 가마터에서 출토된 토기류와 같은 형식의 자료가 경상북도 경산시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대구광역시 시지지구 마을 터,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 고분군,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고분군 등에서도 출토된다. 삼국 시대 경산 지역 토기 생산 및 공급망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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