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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790
한자 高從厚
영어공식명칭 Ko Jonghoo
이칭/별칭 도충(道沖),준봉(隼峯),부봉(阜峯),복수의병장(復讐義兵將)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홍창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4년연표보기 - 고종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0년 - 고종후 진사 입격
활동 시기/일시 1577년 - 고종후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88년 - 고종후 임피현령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고종후 지제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593년연표보기 - 고종후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01년 - 고종후 포충사 배향
추모 시기/일시 1688년 - 고종후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경연 춘추관 성균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 증직
추모 시기/일시 1711년 - 고종후 효열(孝烈) 시호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86년 - 고종후 부조(不祧)를 명 받음
묘소|단소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
사당|배향지 포충사(褒忠祠) -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 775]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창열사(彰烈祠)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본성동 415]
성격 문관|의병장
성별
본관 장흥(長興)
대표 관직 성균관전적|예조좌랑|지제교|임피현령

[정의]

조선 전기 광주 지역 출신으로 성균관전적, 예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가계]

고종후(高從厚)[1554~1593]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도충(道沖), 호는 준봉(隼峯)이다. 할아버지는 고맹영(高孟英), 아버지는 충렬공(忠烈公) 고경명(高敬命), 어머니는 김백균(金百鈞)의 딸 울산김씨(蔚山金氏)이다. 첫째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이고 둘째 부인은 고성이씨(固城李氏)이다. 고종후의령남씨와의 사이에 2녀, 고성이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고종후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순정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움직임에 법도가 있어 게으름이 없었다. 문장과 서예에 능통하였던 고종후는 1570년(선조 3) 진사에 입격하고, 24세가 되는 1577년(선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종후는 1588년(선조 21) 임피현령(臨陂縣令)으로 임명되었으나 당시 사람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얼마 뒤 파직되었는데, 이는 1589년(선조 22)에 일어난 정여립(鄭汝立)의 난으로 인해 호남 지역 사람들이 피해를 본 것과 관련 있는 것 같다. 1591년 고종후는 지제교(知製敎)가 되었는데,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의하면 명망과 의론이 가볍다 하여 사헌부(司憲府)로부터 파직당하고 광주 지역으로 내려왔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종후는 아버지 고경명, 동생 고인후와 함께 거의하여 주로 병력 및 군량 모집과 관련한 일을 맡았다. 금산전투에서 아버지와 동생이 사망하자 1593년(선조 26) 스스로 복수의병장(復讐義兵將)이라 칭하며 약 1천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였다[2차 진주성 전투]. 일본의 10만 대군에 맞서 약 9일간 항전하다가 전세가 기울자, 고종후는 김천일(金千鎰),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진주성 촉석루에 올라 남강에 투신하여 전사하였다.

[학문과 저술]

고종후의 아버지 고경명고봉 기대승의 문인이었다. 그러므로 고경명의 장남인 고종후 역시 기대승의 학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묘소]

고종후의 묘소는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의 발산고개에 있다.

[상훈과 추모]

고종후는 1711년(숙종 37) 효열(孝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 775]에 있는 포충사(褒忠祠)는 의병장 고경명을 비롯하여 고경명의 두 아들 고인후·고종후 및 유팽로와 안영을 배향한 사우로, 1974년 5월 22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본성동 415]에 있는 창열사(彰烈祠)는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김시민, 김천일을 비롯하여 황진·최경회·장윤·유복립과 함께 고종후가 배향된 사우(祠宇)로,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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