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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817
한자 建國準備委員會光州支部
영어공식명칭 The Committee for Prep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Gwang-ju bureau
이칭/별칭 건준 광주지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연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8월연표보기 -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설립
최초 설립지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 전라남도 광주시
성격 사회단체

[정의]

1945년 광주광역시에서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 소속 지부.

[설립 목적]

광복 직후 전라남도 광주시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가 이미 결성되어 있었다. 당시 광주는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곳이어서 지역 지부의 필요성이 적었다. 하지만 점차 각 지역별 건국준비위원회가 세워지면서 전라남도 광주시만의 건국준비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여겨지게 되어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늦게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가 설립되었다.

[변천]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의 설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광복 직후인 8월 19일 즈음이라는 설과 약간 늦은 시기인 8월 30일 즈음이라는 설이 있는데, 다수의 기록은 8월 30일로 서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전라남도 광주시 지역에서 ‘광주시민해방축하대회’와 같은 집회가 계속되면서 이를 주도적으로 진행할 주체가 필요하여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설립에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위원 선출 문제를 두고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선출할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논의한 끝에, 광주 지역에서는 선거를 통해 위원을 선출하기로 하였다. 선거권은 일제 강점기부터 각 가구 당 1장 씩 갖고 있던 쌀 배급권을 기준으로 하였다. 그 결과 위원장 양장주(梁長柱), 부위원장 서우석(徐禹錫), 노동부장 이기홍(李基弘), 선전부장 이익우, 후생부장 노종갑, 농민부장 윤석원, 그 외 박영종(朴永鍾), 최한영(崔漢泳), 장재성(張載性) 등이 선출되었다.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는 이후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면서 1945년 9월 광주인민위원회로 변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는 활동의 많은 부분을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와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활동은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집회, 행사를 주최하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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