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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독교청년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776
한자 光州基督敎靑年會
영어공식명칭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of Gwangju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손영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 7월연표보기 - 광주기독교청년회 설립
최초 설립지 광주기독교청년회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지도보기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최병준(崔丙俊)

[정의]

1920년 7월 광주광역시에서 창립된 기독교계 청년 단체.

[개설]

1920년대 전국적으로 청년단체가 급속하게 확산되자 광주 지역에서도 중앙교회, 금정교회, 양림교회, 향사리교회의 교인을 기반으로 광주기독교청년회가 결성되었다.

[설립 목적]

일제강점기에 민족을 위한 기독교 운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기독교 청년들 사이에서 생겨나면서 광주기독교청년회는 창립되었다.

[변천]

1920년 7월 광주기독교청년회가 창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광주기독교청년회는 여러 단체와 연대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식민통치라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최병준(崔丙俊), 황상호(黃尙鎬), 김철(金哲), 최흥종(崔興琮) 등은 광주기독교청년회의 주요 간부로 활동하는 한편 다른 단체의 간부로도 활동하였다. 광주기독교청년회의 지도적 인물인 최흥종김철과 함께 3.1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 광주회장을 맡았다. 더불어 나병퇴치운동에 앞장 선 최흥종윌슨(R. M. Wilson)과 함께 나환자수용소, 진료소, 예배처소를 마련하였고 소록도의 나환자 시설과 병원이 확장되도록 나병치료사업인 구라사업(救癩事業)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어서 최흥종은 1920년 7월 광주기독교청년회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광주기독교청년회의 2대 회장은 황상호였다. 황상호3.1운동 당시 광주제중병원의 회계원이었고, 『조선독립광주신문』을 발행하여 광주 지역민의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던 인물이다.

광주기독교청년회의 활동 사항을 보자면, 1922년 9월 28일부터 숭일학교에 노동야학을 개설했으며, 1924년 여름에는 무산자 자녀 교육을 위한 하기아동학교를 운영하였다. 광주 4곳의 교회에 설치된 하기아동학교에는 약 300여 명의 아동이 수업에 참여하였다. 또한 광주기독교청년회는 문화진흥 사업에도 적극 활동했는데 1922년 8월에는 소인극단을 조직하여 지방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하였다. 청년단체의 변화에 맞춰 광주기독교청년회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선교와 계몽을 위해 농촌사업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이에 1925년 농촌부를 설치하고 농촌교화와 문맹퇴치, 산업장려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에 의해 광주기독교청년회는 이른바 사망신고서를 내고 사회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지도부들은 투옥되거나 광주를 떠나 만주 지역 등으로 이동하였다.

[의의와 평가]

광주기독교청년회는 일제강점기에 기독교 선교뿐만 아니라 노동단체와 농민단체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광주 지역의 사회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이런 점에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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