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18
한자 朴玉連
영어공식명칭 Bak Okry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박옥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8년 11월 - 박옥련 소녀회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29년 11월 3일 - 박옥련 광주학생운동 참여 및 부상당한 학생들 치료
활동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박옥련 대통령 표창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박옥련 건국훈장 애족장 수상
몰년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 박옥련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21년 - 국가보훈처 2021년 5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사정
학교|수학지 전남여자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158번길 8[장동 39-12]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소녀회 회원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

[개설]

박옥련(朴玉連)[1914~2004]은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사정(社町)[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8년 11월 초순경 소녀회(小女會)를 조직하였으며,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때에는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하였다. 1930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박옥련은 1928년 11월 초순경 장매성(張梅性)의 주도 아래 전라남도 광주읍 내에 있는 공립사범학교 뒤편 높은 곳에서 남협협(南俠俠), 고순례(高順禮), 장경례(張慶禮) 등과 모여서 '여성을 남성의 억압으로부터, 무산대중을 자본계급의 압박으로부터 각각 해방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에 서로 찬성하고 소녀회를 만들었다. 소녀회는 사업의 일환으로 회원 확보에 노력하는 한편, 매월 1회 월례 연구회를 통하여 사회 모순을 연구하고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한편, 소녀회성진회(醒進會)를 계승하여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항일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1929년 6월에 결성된 독서회(讀書會) 중앙본부와도 긴밀히 연락하였다. 독서회 중앙본부가 회원의 친목 및 재정지원을 위해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 각 학교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게 했는데, 이때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소녀회가 주동이 되어 자본금 30원을 출자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 때에는 소녀회가 앞장서서 가두시위 도중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하며, 식수 공급을 하고 돌멩이를 날라다 주었다. 1930년 1월 15일 박옥련은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4년 11월 21일 광주보훈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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